색온(色蘊)은 과연 물질인가?
부처님 가르침을 가까이 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용어의 생소함입니다. 부처님 시대가 아닌 우리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미 우리 사고가 우리 시대의 사고에 젖어 있으므로 더욱 힘듭니다. 따라서 어떤 언어로 되었든지 그 용어에 대한 개념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전에 있는 풀이로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전에 있는 풀이는 벌써 오늘날 우리의 사고가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부처님 당시의 용어 쓰임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쓰임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일상 언어 속에 깊은 뜻을 부여하여 설법한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제로 삼은 ‘색온’에서 ‘색’도 빠알리어로는 ‘루빠(rupa)’로서 사전에는 ‘물질, 형상, 모습’ 등으로, ‘색온’은 ‘물질들의 집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불교서적에서도 색온을 ‘물질’로 풀이합니다. 사실 경전을 글자 그대로 보면 ‘물질’로 번역할 여지도 있습니다. 가령 경전에는 “모든 색은 사대[四大(地·水·火·風)]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四大所造]”라고 하거나, 또한 그 속성에 대해 ‘걸림[ ]과 나눔[分]’ 등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물질에 대한 뜻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호에서 언급하였지만, 색온을 물질로 수·상·행·식 4온을 정신으로 풀이하여 ‘인간은 색온인 물질과 정신인 4온으로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지·수·화·풍인 물질과 고·락인 정신이 모여서 인간과 세상을 만든다’는 적취설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 다른 이유를 언급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여튼 ‘색온이 과연 물질인가’에 대한 의문은 필자만의 의문이 아닙니다. 가령 경전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색수음(색음, 색온)이라고 한다.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 돌, 막대기, 칼, 추위, 더위, 목마름, 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의 모든 독한 벌레, 바람, 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는 걸림이라 한다.”
- 『잡아함경』 권2, 46경
‘목마름’이나 ‘굶주림’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른 어떤 언어로 표현하기에 적당한 것이 떠오르지 않고 철학적인 사고의 깊이도 미천하기에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면서 ‘색온’을 물질로 번역하기보다는 그냥 ‘색온’이라고 사용해 왔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과감하게 물질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근래 몇몇 분들의 글이 색온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대(地大)는 땅(흙)의 본성으로서(땅 자체가 아니라) 단단함·거침·무거움…부드러움·매끄러움·가벼움 등도 포함됩니다. 수대(水大)는 물의 본성으로서 흐름·응집·접착·습함·침투 등의 특성을 지니며, 화대(火大)는 불의 본성으로 열기·따뜻함·차가움·기화·숙성·노쇠·소멸 등의 특성을 지닙니다. … 풍대(風大)는 바람의 본성으로 움직임·지탱·에너지·긴장 등의 특성을 지닙니다.”
- ‘4대 관찰은 실재 통찰의 지름길’, 월간 「불광」 2007년 12월호, 64~65쪽
이는 『구사론』에서 지·수·화·풍 사대를 견고성(堅固性)·습윤성(濕潤性)·온난성(溫暖性)·유동성(流動性)으로 풀이하는 것과 동일한 관점입니다. 즉, 지·수·화·풍을 흙 그 자체, 물 그 자체, 불 그 자체, 바람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의 성질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대와 ‘걸림과 나눔’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도 있습니다.
“4대가 물질이거나 물질적 요소가 그 자체가 아니라 외부의 어떤 것이 우리 감각 기관에 부딪치고 와 닿을 때 만들어지는 개념, 곧 의식작용이라는 붓다의 기본적 규정은 ‘rupa’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rupa’는 빠알리어 ‘rupati’에서 온 것인데, 이것은 ‘장애가 되는’, ‘부딪치는’, ‘부서지는’ 등을 뜻한다. … 혀·몸·눈 등 감각 기관으로 어떤 물질이 와 닿는 것 같은 부딪치는 듯한 감촉되는 느낌, 그 느낌의 기억, 그 기억들이 쌓여서 ‘이것은 색이다, 물질이다’라는 허위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김재영, ‘반야심경’, 「참여불교」 2006년 10·11월호, 36쪽
여기서 4대 또는 색을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개념, 의식작용, 의식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 또 ‘걸림과 나눔’이라는 표현은 물질이 부딪친다거나 나뉜다는 뜻이 아님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일상 언어에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식이 일어날 때 대상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대상 자체를 받아들인다면 눈은 그 대상 자체보다 커야 합니다. 인식이 일어날 때는 ‘어떤 물질이 와 닿는 것 같이’ 인식하는 주체에 인식되는 대상의 의미 내용이 부딪쳐 걸리고 나눠진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이러한 대상의 성질, 의미 내용이 바로 색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