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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묘법연화경.일일법문:이 당시에 일월등명부처님이...

작성자보운법사|작성시간15.01.10|조회수9 목록 댓글 1

-법화경유통회-

 

묘법연화경.일일법문:이 당시에 일월등명부처님이...

 

이 당시(當時)에 일월등명(日月燈明)부처님이 대승경전(大乘經典)을 연설(演說)하시니, 경명(經名)이 무량의경(無量義經)이고, 보살(菩薩)을 교화(敎化)하는 법문(法門)이며, 제불(諸佛)이 보호(保護)하고 염려(念慮)하는 것이었습니다.1-107

 

시시 일월등명불 설대승경

是時 日月燈明佛 說大乘經

 

명무량의 교보살법 불소혼념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

 

1-시시(是時)! 앞에서 현재 석가모니부처님이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 이라 말씀하신 것과, 과거 일월등명부처님이 지금의 글에서 (爲諸菩薩 說大乘經 名無量義 敎菩薩法 佛所護念)이라 하신 말씀과, 조금도 차이가 없음을 문수보살이 다시 말씀하시어, 미륵보살이 질문하신 부분에 대해 제불(諸佛)의 경전과 설법이 동일(同一)함을 증명하신 것이다.

 

2-과거의 제불(諸佛)과 현재의 제불과 미래의 제불 역시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그 가르침인 경전을 연설하시는 순위는 이렇게 차이가 없음을 알 수가 있다.

 

3-지금 현재 석가모니불과 과거 아미타불과 미래 미륵불이며, 모든 부처님에게는 경전의 연설이 동일하시며, 지금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모든 사람 역시 미래 세상에 불도(佛道)를 이루면, 무량의경(無量義經)의 연설을 마치고서 곧바로 법화경을 연설하게 된다.

 

4-()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이고, ()는 일시(一時)이고, ()은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이고, ()은 대승(大乘)이고, ()은 무량의경(無量義經)이고, ()는 보살법(菩薩法)이다. 여기까지를 설법시처(說法時處)라 한다.

 

5-지금 법화경을 읽고 있다면 이를 법화경의 시시(是時)의 경계(境界)라 하고, 만약 복과 공덕이 얇으면 법화경의 시시(是時)의 경계에 들어올 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6-생사하는 중생은 육교(六敎)의 생사문(生死門)을 사승석(四乘釋)을 가지고 시시(是時)의 경계에 들어가고, 소승의 성문과 연각은 이교(二敎)의 해탈문(解脫門)을 삼승석(三乘釋)을 가지고 시시(是時)의 경계에 들어가고, 방등과 반야와 화엄과 법화는 사교(四敎)의 보살문(菩薩門)을 이승석(二乘釋)을 가지고 시시(是時)의 경계에 들어가고, 원교의 소승근기와 보살근기와 여래근기는 일교(一敎)의 법화문(法華門)을 일승석(一乘釋)을 가지고 시시(是時)의 경계에 들어간다.

 

7-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 일월등명(日月燈明)은 방편의 이름이고 불()은 수행과(修行果)의 명칭이다. 한 분의 부처님에게는 무량한 방편의 이름이 있지만 수행과의 명칭은 하나뿐임을 알아야한다.

 

8-따라서 일월등명불. 일월등명여래. 일월등명응공. 일월등명정변지.... 일월등명세존... 云云 여기서 일월등명(日月燈明)은 방편의 명칭이고, 뒤에 불()과 여래(如來)와 응공(應供)과 세존(世尊) 등은, 모든 부처님에게 붙여지는 명칭(名稱)이다.

 

9-만약 일월등명불(日月燈明佛)이 타방세계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 불릴 수도 있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 불릴 수도 있다. 또 아미타불 역시 타방세계에서 일월등명불이 석가모니불이라 불릴 수도 있음은 모두 방편의 불명(佛名)임을 알아야한다.

 

10-부처님과 보살과 중생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지는 이름일 뿐이다. 생사경계(生死境界)가 진리인줄을 알기 때문에 중생(衆生)이라 하고, 사홍서원(四弘誓願)이 진리인줄을 알기 때문에 보살(菩薩)이라 하고,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이 진리인줄을 알기 때문에 여래(如來)라 할뿐이다.

 

11-따라서 중생이 생각을 바꾸면, 부처님이든 보살이든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생각을 바꾼다함은 어떤 경전을 지니고 읽고 외우는가에 달린 것일 뿐이다.

 

12-부처님과 보살이 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되는 경전과 보살이 되는 경전을 만나기기 어려울 뿐이다.

 

13-이렇게 어려운 여래경(如來經)인 법화경을 만나 놓고도, 허접한 보살경(菩薩經)에 미쳐서 버리지 못함은, 마치 중생이 생사(生死)에 미쳐 진리를 구하지 않고 윤회를 하는 것과 같고, 보살(菩薩)이 사홍서원(四弘誓願)에 미쳐서 불도(佛道)를 이룰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14-부처님이 말씀하신 사홍서원(四弘誓願)은 중생을 가엾게 여겨 보살(菩薩)이라도 되게 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부처님의 본래의 생각은 불도(佛道)를 이루게 하려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15-소승(小乘)의 근기는 온갖 계율을 말해주어야 진리인 줄을 알고, 중승(中乘)의 근기는 온갖 보살의 법문을 말해주어야 진리인 줄을 알고, 대승(大乘)의 근기는 법화경을 말해주어야 진리인 줄을 안다.

 

16-일월등명불이 부처님이 된 처지에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의 법화경의 서품(序品)에 등장하심은, 어떻게 하든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중생을 불도(佛道)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시니, 제불(諸佛)이 이렇게 법화경을 유통(流通)함에 있어 불신(佛身)의 직분도 버리고, 잠시도 불사(佛事)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17-따라서 법화경의 유통(流通)이 원교(圓敎)의 묘각(妙覺)을 닦는 마지막 수행단계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법화경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법화경을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8-사람이 하루 중에 10시간 일을 한다면, 출근하는 시간과 퇴근하는 시간을 합친 것을 말한다. 만약 이렇게 하루 중에 10분만 법화경을 읽거나 외우거나 또는 남에게 말해줄 경우, 상승근기(上乘根機)는 금생(今生)에 몽중불도(夢中佛道)를 이루고, 중승근기(中乘根機)는 차생(次生)에 몽중불도를 이루고, 가장 둔한 하승근기(下乘根機)는 삼생(三生)에 반드시 몽중불도를 이루게 된다.

 

19-삶을 살아가는 마당에 하루 10시간 중에 100분의 110분의 시간을 내어, 만약 출근 중이든 퇴근 중이든 또는 심지어 잠자기 전이든 10분의 시간을 활용해 법화경을 읽거나 외워 불도(佛道)를 이룬다면 얼마나 큰 이익이 되지 않으랴!

 

20-이 외에 불도(佛道)를 이루기 위해, 무수한 고행과 노력과 생사를 거는 모험 등을 가지고, 불도(佛道)를 이룬다고 하는 무리는 모두 마계(魔界)의 권속임을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마왕(魔王)은 중생이 불도(佛道)를 이루려고 하는 일을 가장 싫어하고, 또 가장 많이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21-설대승경(說大乘經)! ()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는 믿음이고, ()은 가르침이고, ()은 글이니 문자를 가리킨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문자의 가르침에 큰 믿음을 내는 것, 이것을 가리켜 설대승경(說大乘經)이라 한다.

 

22-이 외에 문자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무리는, 마치 학생이 스승님이 말씀하신 교재를 열심히 읽고 외우지 않은 채,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과 같고,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은 채, 추수를 하려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무리들의 가르침을 가지고 선지식(善知識)으로 삼게 되면, 결국에 얻어지는 이익이란 조금도 없고 도리어 삼업(三業)의 죄를 짓게 됩니다.

 

23-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법화경을 대하길 마치 부처님을 대하듯 하고, 법화경에 공양을 드리라.”하셨으니, 이는 바로 법화경의 문자가 바로 부처님임을 드러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24-하근기(下根機)는 문자가 검은 글로 보이고, 중근기(中根機)는 문자가 깨닫는 도구로 보이지만, 상근기(上根機)는 문자가 불신(佛身)의 법신사리(法身舍利)임을 안다. 따라서 하근기는 법화경을 연설함에 있어 그냥 한글을 읽고 내려오거나, 제 인생 얘기를 하다 내려오고, 중근기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법문을 연설하고, 상근기는 오로지 법문을 만을 연설한다.

 

25-명무량의(名無量義)! 경전의 순위를 정하는 일은 중생의 근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출현해 여러 종류의 경전을 연설하심 역시 방편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제불(諸佛)은 방편의 법문을 가지고 먼저 중생을 제도한 다음에, 불도(佛道)에 이르는 법문을 연설하느니라.”하시었다.

 

26-법화경 다음 열반경이고 다음 무량의경이고 다음 화엄경이고 다음 여러 대승경전이고 다음 소승경전이 경전의 순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27-교보살법(敎菩薩法)! 여기서는 무량의경이 원교(圓敎)의 보살을 가리키는 법문이나, 만약 법화경에서 보면 원교 내에 방편경전(方便經典)에 속함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법화경의 서품(序品)에서 무량의경(無量義經)이 나왔고, 무량의경의 설법이 끝나자 부처님이 바로 법화경을 연설하셨기 때문이다.

 

28-따라서 우리 법화경의 사람들은 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 중에 무량의경과 불설보현보살행법경을 가지고 법화경과 함께 하게 되면, 방편의 경전을 가지고 진실의 경전이 법화경과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니, 법화경의 사람들은 오로지 법화경만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29-어떤 사람은 법화경을 맨 앞에 무량의경을 중간에 보현경을 맨 뒤에 두거나, 또는 어떤 사람은 무량의경을 맨 앞에 중간에 법화경을 맨 뒤에 보현경을 두거나... 云云 하는데, 이는 마치 왕을 모시면서 신하를 왕좌(王佐)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30-불소호념(佛所護念)! 부처님이 경전을 호념(護念)하는 바에야 어찌 경전을 읽고 외우는 제자를 호념하지 않으시랴! 따라서 지금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사람들은 모두 석가모니부처님의 호념(護念) 안에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게송-

 

불식(佛食)을 가지고 음식으로 삼음은

법화경을 읽고 외워 지혜를 얻음이고,

 

불의(佛衣)를 가지고 옷으로 삼음은

법화경을 읽고 외워 번뇌를 막음이고,

 

불가(佛家)를 가지고 집으로 삼음은

법화경이 있는 곳을 도량으로 삼음이고,

 

불인(佛人)을 가지고 도반으로 삼음은

법화경의 법사를 스승으로 삼음이고,

 

불경(佛經)을 가지고 경전으로 삼음은

법화경만을 진리로 삼음이고,

 

불관(佛觀)을 가지고 묘각으로 삼음은

법화경만이 불도에 이르기 때문이다.

 

-寶雲法師 護念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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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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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여정 | 작성시간 15.01.10 귀하고 귀한 부처님 말씀
    법화경에 합장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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