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을 하면서 그간 트숨의 경험을 떠올리며 또는 떠올려지는 것을 네이버 카페(그로프 숨치료 연구회)에 올린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서야 트숨카페가 다음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글을 다시 올리고 싶은 충동을 참는데 실패했습니다. ^^ 심지어 한꺼번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좀 깁니다.
피상가는 길 1
아내가 꿈을 말한다.
나는 결혼식을 위해서 많은 지인들과 함께 어느 나라에 가게 된다. 그 나라는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인데 거기서 신혼여행 겸 사진을 많이 찍고 올거다. 우리는 거기에 임무가 있는 것 같다. 너무 설레하면서 그 나라에 간다. 모두 함께 굉장히 넓은 들판을 지난다. 난 연신 사진을 찍는다 . 너무 멋있다. 하늘을 보니 연이 띄워져 있다. 큰 천으로 돼 있는 멋있는 연이 띄워져 있다. 나는 하늘에 대고 셔터를 누른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끝내주는 장관이다. 그 연 위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그 나라의 어떤 남자가 타고 있다. 그 남자는 내가 모르는 남자다. 그 남자는 연을 조정하는 전문가처럼 보인다.
아내의 꿈을 듣자마자 나는 아내에게 중요한 꿈이란 것을 안다. 아내는 깃발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그 나라는 네팔인 것 같다고 한다.
그 순간 몇달 전 트숨경험이 떠오른다.
나는 들판에 죽어 있다. 배가 찢어져 창자가 나와 있다. 난 그것을 보고 있다. 고통은 없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기다리고 있다. 그순간 두고 온 아내가 떠오른다. 난 떠날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잠든 사이 떠났다. 아내도 알고 있었으리라 동이 트기전에 떠날 것을.... 아내의 잠든 얼굴을 한 참 보았다. 내가 다른 세상에 가더라도 기억 할 수 있게.....새기고 또 새겼다. 못 돌아 올수도 있다. 전쟁터로 가면 지금의 나는 사라지고 전사로서 행동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로서.... 내가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그것 외에는...나의 삶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맡길 뿐이다. 슬픔이 몰려온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꼭 아내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번 만이라도 눈을 마주치고 만질 수 있다면.... 작별의 인사라도 할 수 있다면.... 창자가 터져 흘러나온 채 홀로 누워 있는... 이 외로움....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난 그럴수 없다. 애통하다. 그순간 어떤 여인이 나타나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슬픔은 더욱 깊어져 밑바닥에서부터 눈물이 흐른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나는 느끼고 보고 있다. 여인은 사라지고 두 스님이 나타난다. 스님은 흘러나온 창자를 고히 뱃속으로 다시 넣고 염불을 하면서 한땀 한땀 정성스레 나의 찢어진 피부를 꿰맨다. 마치 만다라를 그리는 것처럼 나의 몸을 그린다.
나눔시간에 이것을 말했다. (그때에는 이렇게 상세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말하면서 뭔가가 느껴지는데 여러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어 하나의 감정으로 말할 순 없었다. 그러나 나의 입에서는 수치스럽다고 말한다. 나의 몸이 너덜너덜 해진채 겨우 꿰매어져 유지하는 것 같았다. 아리는 나를 눕히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몸에 손을 올리게 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심지어 몸에 닿는 것이 생소하여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게 시간은 흘러갔다. 지나고 나니 마치 수혈을 받은 것 같아 감사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수치스럽다고 말한적이 있었던가? 나 자신에게도 잘 말하지 않던 것을... 수치스러워 하는 나를 더 수치스러워 했기에... 그러나 수치를 드러낸 만큼 피가 도는 것 같다. 들어준 이들이 있어서...
이것이 내가 트숨에서 경험한 일면을 언어로 옮겨 본 것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
트숨 때 본 스님들은 10년전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을 하던 중 지나친 어떤 절의 스님들이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여기는 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그 절에 가보고 싶다고 마음에 두고 있던 터였다.
그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꿈을 꿨다.
이제 내가 어떤 반응을 할 지 선택할 일만 남았다.
트숨이 안내해도 반응은 오롯이 내가 하는 것
나와 아내는 10년전 갔던 그 길을 다시 가기로 한다.
피상에 있는 그 절로....
피상가는 길 2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하루 묵고, 베시사하르까지 미니버스로 종일 달려와 거기서 하룻밤을 묵은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틀째에 바훈단다에 도착했다. 피상까지는 4~5일 정도 더 걸어야 한다.
바훈단다 게스트하우스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여기 주인 내외는 우리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데, 얼마나 살갑게 대하는지 시터 같다.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착착 잘 맞춰준다. (밥먹고 있을 때도 우리가 뭐 필요할까봐 옆에서 떠나지 않는다.)
밤에 자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마을의 불빛이 마치 별처럼 보여 밤하늘의 별과 경계 없이 어우러진다. 트숨에서 보았던 장면이 다시 펼쳐지는 것 같다.
뱃속에서 뭔가가 꿈틀댄다. 갑자기 경련처럼 떨리다가도 근육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마치 뱀처럼 움직이게 한다. 힘도 많이 빠진 상태라 몸을 내려놓은 채 그대로 두었다. 그 움직임들은 배 위아래를 오가는데 가슴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억지로 가슴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뱀처럼 움직이는 에너지를 무심히 내버려두고 있을 때 아리가 와서 배에다 손을 댄다. 강하지 않은 압력으로 배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따라간다. 아리의 손이 닿자 마치 뱀이 반응하듯 더 활발히 움직인다. 아리의 다른 손이 가슴에 닿는다. 그때 아랫배의 움직임이 가슴을 순간 통과하는 듯하다.
그 순간 내 앞에 어떤 공간이 열린다. 그동안 깜깜한 벽처럼 느껴지던 장면이 마치 극장처럼 3차원 공간으로 펼쳐지고, 청룡열차처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리드미컬하게 아래로 내려갔다가 옆으로 움직이며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추더니 아름다운 밤하늘이 펼쳐진다. 감동과 슬픔의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간다. 별들이 밤하늘을 촘촘히 메우고, 색깔이 선명한 은하수도 보인다. 나는 신기해서 눈을 떠 보았다. 눈을 떠도 보이는 장면에는 변함이 없다. 너무 생생해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아 허공에 손사래도 쳐 본다. 저 멀리 별이,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깊이 깔려있던 그리움이 아래에서부터 확 올라와 눈물로 흘러간다. 나는 여기, 세상과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경계, 문지방에 걸쳐 있다. 저 세상의 누군가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쳐 알려주고 싶다. “나 여기 있다. 여기에 살아 있다.” 어느덧 펼쳐졌던 아름다운 장면은 사라지고 아련한 그리움만 남는다.
나눔을 하면서 저 너머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마냥 내가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거기를 찾아 움직여야겠다고…..바닷속 탐색을 위해 숨줄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신호를 보내면 올려줄 것을 믿고 깊이 들어가듯이, 트숨에선 내면여행을 안심하고 갈 수 있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나를 바라보던 별들과 은하수를 떠올리다 문득, 낮이든 밤이든 밝든 어둡든 늘 나와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 나를 깊이 감동시킨다. 이것을 부디 잊지 않기를…. 나에게 다짐한다.
피상 가는 길 3
6일째다. 걷기 시작한 날이 그쯤 된다. 피상까지는 이틀, 어쩌면 사흘. 나는 무엇을 찾으러, 누굴 만나러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걷고 있는 걸까.
‘피상의 절에 도착해도 아무 감흥 없을 거야.’ 늘 그렇듯 조잘대는 목소리가 올라온다.
‘거기까지 가봐야 별거 없어. 네가 본 건 보잘것없는 망상이야. 지금 너는 헛짓을 하고 있어. 어리석기는. 그러니까 네가 비현실적인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정신 차려.’
그 소리를 대범하게 뿌리치지 못한다. 대신 나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얼마나 괜찮은 존재인지를 늘어놓는다. 뭐라도 갖다 붙여 설득하고 눈치를 본다. 그 모습이 애처롭다.
히말라야를 걷는 동안, 나는 쉬지 않고 그 목소리를 듣는다. 책도 SNS도 보지 않으려 하니, 머릿속 소리는 더 또렷해진다. 그 목소리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 건 뭘까. 말 그대로 나를 위한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 비위를 맞추려 할까. 그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피상의 절에 가고 싶은 욕망은 정말 나의 것일까. 법당에 들어가 명상을 하면 나는 만족할까. 아니면 또 다른 집착을 붙잡고 있는 걸까. 스님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실망할까. 만약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에게 무엇이 될까.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모든 시작이 몸, 가슴에서 올라온 울림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울림으로 얼마 전 대구 동화사에 갔었던 적이 있다. 해보지 않아 미련이 남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여 해보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 동화사!
억울하게 돌아가신 삼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아버지가 전설처럼 들려주던 이야기 속의 인물. 좌익운동을 하다 죽임을 당한 삼촌. 그로인해 연달아 할아버지, 큰 삼촌이 돌아가시고,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른채. 전국을 찾아 헤매다가…세월이 한참 지난후 동화사 연못 근처라 전해들어 알게된…나는 지금, 그가 총살당했다고 전해지는 동화사 연못으로 간다. 한 손에는 하얀 국화꽃 한 다발.
트숨의 장면이 겹쳐진다.
숲이다. 경사진 언덕배기. 삼촌은 가슴에 총을 맞고 손이 뒤로 묶인 채 하늘을 보고 쓰러져 있다. 나는 그 옆에 있다. 마치 그 순간 있는 것처럼. 혼자 가지 않게 하려고. 눈을 마주친다. 내가 말한다. ‘삼촌, 제가 여기 있어요. 가는 길 함께하러 왔어요.’ 난 어디로 가는지,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옆에 있다. 슬픔만 가득하다. 이 공간 모두 슬픔으로 채워진다. 한참 후 삼촌이 눈을 감는다. 이제 나는 눈을 뜬다.
아리가, 국화꽃을 들고 동화사에 한 번 가보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어느 날, 마음이 움직였다. 몸을 움직여 홀로 여행을 떠났다.
느즈막한 가을 햇살..동화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작은 연못이 있다. 데크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연못을 다 돌아도 아무 느낌이 없다. 꽃을 놓고 묵념할까 하다, 연못 위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본다. 그 길을 따른다. 숨이 차고 어지럽다. 고산에 오른 것처럼 힘이 빠진다. 이상하다고 느끼며 오르는데, 갑자기 울컥 올라온다. 토하듯이. 바로 여기구나. 가슴을 가라앉히고 보니 계곡 아래 한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가 국화꽃을 놓는다. 바로 그 자리다. 나는 눕고 싶어진다. 경사진 계곡 둔덕의 흙바닥에 몸을 뉜다. 포근하다. 지나치게 편안하다. 향긋하고 묘한 향기가 난다. 국화꽃, 솔나무의 향이 섞여 나를 감싼다. 혼자가 아닌 것 같다. 어둑해질 때까지 누워 있다. 어스름한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삼촌은 잘 있는 것 같다고. 이제 그렇게 애처롭게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일어나려다 문득 떠오른…삼촌이 여기까지 나를 부른 건,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집에 돌아와 보도연맹 사건을 찾아본다. 주민들 증언에 따르면 6·25 때 동화사 입구 계곡에서 많은 이들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연못 근처라 했지만, 내가 누워 있던 바로 그 계곡인 것 같다.
트숨의 경험과 함께, 몸과 가슴이 나를 이끈…삶이 나를 데려가는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한결 가볍다.
피상이 점점 가까워진다.
피상 가는 길 4
드디어 피상에 도착했다.
여덟 날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새해의 첫날을 피상에서 맞이하게 된다.
숙소를 잡자마자 나는 곧장 절로 향한다. 법당 옆 건물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다가가 스님들이 계신지 묻는다. 겨울에는 모두 카트만두로 내려가 지금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당에 들어가 명상을 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얼마든지 괜찮다고 답한다.
나는 법당에 들어가 자리를 깔고 앉는다. 눈을 감고, 내가 오래 상상해왔던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느낀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등 뒤에서 안나푸르나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트숨을 하며 스쳐간 영상 하나, 나는 이곳에 오고 싶어 했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
몰라는 트숨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삶 속에서 소화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아직 그 소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난번 동화사에 갔을 때 그것이 이런 것인가, 조금은 느꼈다.
절에서 명상을 하고 숙소로 내려오며 그날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본다.
대구까지 내려온 김에 고향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경주로 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하룻밤을 묵는다. 다음 날, 왠지 그대로 올라가고 싶지 않아 용담정으로 향한다. 중학생 시절, 절친과 함께 놀러 왔던 곳. 언젠가 다시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그 곳.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주차를 하고 용담정으로 오르는 길, 나도 모르게 주문을 중얼거린다.
至氣今至 願爲大降 지기금지 원위대강
侍天主 造化定 시천주 조화정
永世不忘 萬事知 영세불망 만사지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삼십대에 단학 지도자를 하던 시절, 대구 지역장이던 사형이 모임 때마다 이 주문 수련을 시켰다. 그땐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저 따라 했었는데.
사당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춘다. 문을 열자 수운 최제우 선생의 영정이 보인다. 신발을 벗고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에 오히려 내가 놀란다. 자리를 잡고 앉아 향을 올리고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이 늘 해오던 일처럼 익숙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문을 열고 다시 내려오는 길, 올라오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것 같다. 살짝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하고....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듯도 하다. 그 순간, 트숨에서 보았던 영상 하나가 떠오른다.
옆모습이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구리빛으로 그을린 피부, 다부진 얼굴,
기품과 기상이 서린 기운.
보고 있자니 본받고 싶어진다.
저 선비의 기상을....
짧게 스쳐간 그 영상은 종종 떠올랐었다. 아, 이제 알겠다. 내가 보았던 그 사람은 동학의 선비 중 한 사람이었구나. 오늘, 용담정에 와서야 또렷해진다. 단학과 동학은 본질에서 거의 닮은 철학을 지니고 있다. 천지인과 인내천....
나를 이끄는 힘은 어쩌면 내가 그동안 애써 잊으려 했던 바로 그것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새해 첫날 피상에 있다. 다음 마을에도 큰 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돌아갈 날이 아직 며칠 남아 있다.
그 마을, 나왈에 가보기로 한다.
피상 가는 길 5
피상 윗마을 나왈에 도착했다. 라운딩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안나푸르나를 곁에 두고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으로 걷는다.
전날, 피상 절에서 여름이면 스님들이 춤을 춘다는 어떤 여행자의 리뷰를 읽었다. 스님을 뵙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커졌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함께 춤을 췄을 텐데, 하며.
하늘 아래 마을 나왈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 수 있는 한계고도 3700미터, 삶의 경계에 있는 마을,
나왈에 나는 왔다.
절 옆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자마자 곧장 절로 향한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주인장에게 사찰 관리인에게 연락해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상하게도 단호하고 확신이 있다. 누군가 와서 열어줄 것이라는 확신. 꼭 저 안에 들어가 명상을 할 것 이라는.....
주인장은 직접 동네로 가서 관리인을 데려온다. 그에게 법당에서 명상을 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흔쾌히 괜찮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겹다. 눈빛이 맑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나에게 묻는다.
Answer, perfect? 나는 대답한다.
Not yet. 그는 웃으며 말한다.
Slow, OK.
그때는 몰랐다. 그가 수행자라는 것을....
법당에 들어서니 그는 북 뒤에 앉아 있다. 나는 그저 문만 열어주고 돌아갈 줄 알았다. 관리인으로서...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자리를 잡고 눈을 감는다. 그는 북을 치고 염불을 시작한다. 법당 안에는 그와 나, 단 둘뿐. 마치 나를 위해 염불을 해주는 것 같다. 북소리는 나의 몸을 울리고 그의 염불 소리는 스님들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보았던 장면..... 아! 여기 이 순간이구나!
피상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이제 돌아가려는 순간. 선물처럼 찾아온다. 나의 의지는 피상까지 오게 했고....그 이후는 삶이 마련해준 것....
히말라야 깊은 산속 법당, 울리는 북소리를 타고 고인 눈물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청량한 한 줄기로 뺨을 타고 흐른다.
명상을 마치고 천장을 올려다보니 만다라가 있다. 만다라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까.
그는 매일 하루 두 번 이렇게 예불을 드린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주인장에게 묻는다. 그가 누구냐고. 뭐라 설명하는데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스님이냐고 다시 묻자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다.
그가 던진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Answer, perfect? 그의 질문과 염불 소리를 떠올리며 뒤척이다 잠이 든다.
만다라가 나온다. 나는 생각한다.
‘만다라는 완벽하다. 위아래도 없고 좌우도 없다.
그리고 만다라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돌고 돈다.
완벽하게.’
꿈이다.
잠에서 깨어 얼른 적어본다. 비몽사몽간에 이 문장을 되뇌인다. 어제 그의 화두 같은 질문과 그에 대한 화답 같은 꿈속의 메시지.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장이 떠오른다.
‘너가 만든 세상, 떳떳해라.’
이 문장은 트숨 시터를 하던 중 뜬금없이 들어온 말이다.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속삭이듯. 그러나 선명히게
어쩌면 트숨에서 본 스님과 삼촌, 그리고 그 선비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만다라는 완벽하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세상은 완벽하게 돌아간다. 떳떳하게 살아라. 만다라는 너의 어떤 선택도 완벽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동이 트기를 기다려 다시 법당으로 뛰듯이 올라간다. 전날처럼 그는 북 뒤에 앉아 있다. 그는 북을 치고 염불을 한다. 나는 명상을 한다. 이 순간이 완벽하다고 느낀다. 내 머리 위에는 여전히 만다라가 나를 보고 있다.
법당을 나오며 묻는다. 당신이 올린 염불의 뜻이 무엇이냐고.
그의 첫마디는 present
그렇다. 나는 현재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는 그 뒤로 몇 마디를 더 했지만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전체(whole)에게 감사합니다.
절문을 나서며 그가 말한다.
See you.
나는 대답한다.
See you later.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글을 올리는 지금, 나는 카트만두에 있다. 어제 산에서 열세 시간을 넘게 차로 이동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고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이 여행을 마무리한다. 글을 쓰는 것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도 내겐 거의 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다. 나 자신에게도...
피상과 나왈의 순간들은 꿈결 같다.
마치 저 세상에 다녀온 것처럼...
이제 며칠만 지나면 (이변이 없는 한)
나는 트숨장에 앉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여행을 기다리며...
마음이 급하고, 설렌다.
p.s. 나도 모르게 과장한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아마도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만들어준 노래를 소개합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가사만 살짝 손 본 것뿐)
https://youtu.be/y9xC-kKve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