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향녀’와 ‘호로자’의 민족적 의미는 무엇인가 (1)
한국사회문제연구소장/박사
조상진
한국의 경제성장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를 무시할 수 없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인하여 군인과 경찰, 민간인 총 100여만 명의 한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당시에 인구의 증가가 우선적이었다. 따라서 한 가정에서 자녀들이 많이 출생하게 되었고 그 결과 경제 재건의 역군으로서 베이비붐 세대가 성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대들이 어렸을 적에는 동네에서 떠도는 또 다른 유행어를 들으면서 자랐다. 여성에 대한 비하로서 ‘화냥년’ 그리고 남성에 대한 욕설로서 ‘호로자식’ 이라는 용어이었다. 당시에 사람들 대부분은 그 말의 진의를 잘 알 수 없었고 단순히 욕설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 조선의 한 맺힌 민족적 사연이 들어 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로서 다시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조선 중기 1636년 12월 겨울에 병자호란이 발생한다. 한반도 북방의 여진족 오랑캐인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였다. 당시 인조 왕은 제대로 대항 한번 못해보고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 추운 날씨에 47일간 버티다가 결국 청나라에 항복한다. 청 황제 홍타이지 앞에서 인조 왕은 무릎을 꿇고 3번 절하고 9번 이마를 맨땅에 찧는 ‘3배구고두례’ 라는 최악의 민족적 치욕을 당하였다.
청 황제는 조선에 대한 1차 1627년 정묘호란 당시 맺었던 ‘형제관계’에 이어서, 이제는 ‘군신관계’로 격상하고 2차 침략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 대신 젊은 남녀 50만 명을 포로로 청나라에 끌고 갔다. 끌려간 조선의 남성들은 노예시장에서 노비로 팔려 나갔고, 특히 여성들은 첩으로 팔려서 갖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 국왕은 물론 양반 사대부들은 이러한 사태를 외면하거나 무력할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초를 겪다가 천운을 얻어, 일부 여성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양반 가정의 딸이나 며느리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음에도, 해당 가문에서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오랑캐에게 몸을 더렵혔으니 가문의 명예상 허용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또다시 비참한 신세가 된 여인들은 환향녀가 아닌 ‘화양년’으로, 등에 업고 데려온 자식은 오랑캐 포로의 자식이라는 호로자를 ‘호로새끼’라고 멸시했던 것이다.
그러면 청나라는 어떠한 연유로서 조선을 두 번씩이나 침략한 것일까. 이 대목에서 한국 역사 기록의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청은 현재의 만주 지역을 주 무대로 터를 잡아 온 여진족이다. 북방의 춥고 넓은 초원지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결한 학문의 추구보다는 당면한 현실 문제가 더욱 우선한 사회인 것이다.
중국 역사서 금사(金史)에 의하면, 북방 여진족의 시조는 함보(函普)이고 한반도 신라에서 건너온 인물이라 전하고 있다. 함보의 후손인 아골타는 1115년 금(金)나라를 건국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한다. 따라서 금(金)이라는 문자는 신라의 김씨 후손임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