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墓碑銘)은 죽은 사람이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고 한다. 고인은 누웠지만 묘비명은 서서 찾는 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돌에 새긴 고인의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생전의 육성인 듯 생생하다. 그래서 묘비명을 인생을 돌아보는 거울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도가 낳은 시성 타고르도 나처럼 생전에 죽음을 생각했던지 그는 자신의 시집〈키탄질리〉에서 “신이 어느 날 문득 죽음의 광주리를 우리 앞에 내 밀었을 때 우리는 과연 그 광주리에 무엇을 담아 놓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라고 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 생을 마감할 그 때를 대비하여 나의 묘비명에는 무엇을 남길 것이며 그것을 위해 생전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가난한 목동으로 시작했으나 세계적인 강철왕이 된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에는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활용하여 성공한 이가 여기 잠들다”고 쓰여 있고, 영국의 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되어있다. 또〈연애론〉,〈적과흑〉의 작가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의 묘비에는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동안 위대했던 인간은 죽으면 두 배로 위대해 진다’는 말이 있다. 내 스스로 지어보는 묘비명은 생에 대한 엄숙하고, 냉정한 결단과 한없는 외경(畏敬)이 아닐까싶다.
오늘 혹은 당장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과연 어떤 지난날이 가장 아쉬울까. 한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이 마음에 걸릴까? 아닐 것이다.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시도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거나, 시도도 하지 않고 미리 포기해 버린 일들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사업을 하던 나중에 그 사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팔 때 얼마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은 성공할 것이라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을 때 어떤 모습일까를 미리 생각해 본다면 살았을 때 조금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살게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09.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