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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물설계도면

[보물]부산 범어사 대웅전 설계도면 3

작성자godot|작성시간12.06.29|조회수651 목록 댓글 0

 

이미지들을 클릭하면 원본크기의 상세설계도면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정면 주상포 단면 및 앙시

 

정면 주상포 외부 및 내부 입면

 

정면 주간포 단면 및 앙시

 

정면 주간포 외부및 내부 입면

 

공포 입면도

 

대보상부가구

 

고주상부가구

 

주두 소로 첨차

 

대보 퇴보

 

중보 종보

 

평방변위도

 

귀솟음

 

고주1

 

고주2

 

평주

 

기둥상세 및 벽체기울기

 

 

 

- 지정번호 : 보물 제434호
- 소 재 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
- 소 유 자 : 범어사
- 지 정 일 : 1966년 2월 28일
- 규모양식 :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다포계 맞배지붕
- 시 대 : 조선시대 중기


 

이 사찰의 창건 년대는 의상대사(義相大師)와 관련한 2가지 설이 있는데 2가지 모두 신빙성이 적다. 다만 범어사사지(梵魚寺寺誌)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興德王)10년(835) 당시 범어사에는 미륵전(彌勒殿), 대웅전(大雄殿), 비로전(毘盧殿), 천왕신전(天王神殿) 등의 여러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이미 사찰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大雄殿)은 범어사의 주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집이다. 기단(基壇)은 자연지세를 따라 전면은 높고 후면은 낮게 처리하였으며 전면에는 면석(面石)과 갑석(甲石)을 갖추었고 양측면과 배면에서는 장대석 외벌대 기단으로 마감하였는데 기단의 동측 끝 면석에 康熙十九年(1680) 이라는 명문기록(銘文記錄)이 새겨져 있어 임진왜란 이후 중건(重建)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단의 중앙에 놓인 양측 계단 소맷돌의 조각수법은 통도사 대웅전의 금강계단(金剛戒壇)과 유사하다.

 

초석은 자연석 주초(柱礎)와 원형의 층단주좌(層段柱座)가 있는 2가지 형태로 그 위에 8개의 평주와 6개의 고주로 그랭이질하여 축부를 구성하고 건물 내부에는 불벽(佛壁)을 두어 전면(前面) 평주상(平柱上)의 대들보는 내부 불벽 고주에 결구되었으며 양측벽의 내목도리와 중도리 하부에는 전형 다포계 맞배집의 가구법의 특징인 2중 장여를 사용하였다.

 

범어사 대웅전은 사역내에 남아있는 석탑 등 석조물의 조성년대와 연혁에서 기술한 중수 및 보수년대를 종합해볼 때 임진왜란 이후 재건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현재 대웅전 종도리에 있는 상량문(上樑文)과 암막새에서 확인된 순치십오년(順治十五年) 무술(戊戌)(1658)의 명문(銘文), 기단면석(基壇面石)의 각자(刻字), 주심장혀 뺄목에 있는 각종 묵서들의 기록으로 보아 17세기에 중건된 다포맞배집의 전형적인 형태로 보아진다.

 

대웅전의 창호는 전면, 측면, 후면의 사면에 모두 설치되었다. 정면 어칸은 사분합문(四分閤門)이며 좌우 협칸은 삼분합문(三分閤門)으로 궁판을 가진 교살창호로 되어 있다. 양측면에서는 앞쪽으로 외짝의 세살문창호를 달았고 북측면에서는 북서협칸에 양판문을 달아 괘불의 출입에 사용하고 있으며 남측면 후면은 선대만 있고 회벽처리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구성된 다포계의 수법을 따르고 있는데 맞배집의 특성상 전후면에만 포작이 짜여졌고 좌우 협칸에 2조(組), 어칸에는 3조(組)의 포작을 배치하였는데 포간격이 거의 같아 어칸은 협칸보다 공포 하나의 간격만큼 길다. 제공은 초제공에서 5제공까지 있다.

외부의 1, 2, 3제공은 뱃바닥을 평평하게 굴리면서 위로 솟아있는 앙서형(仰舌形)으로 마구리를 직절시켰으나 4제공은 새부리처럼 뾰족해졌고 5제공은 운공(雲工)으로 외목도리의 굴림을 방지하도록 덩굴을 초각한 형상이다.

내부 제공은 4제공까지 교두형이고 5제공은 대량하부에서는 보아지형이며 공간포작(空間包作)에서는 삼분두형(三分頭形)으로 처리하였다. 귀포에서는 주심에서 도리 방향으로 전면에서와 같은 3개의 앙서가 빠져나와 있다.

 

대웅전의 내부가구는 대들보가 전면의 평주와 내부 고주 위에서 끝나고 뒤쪽에는 보를 3중으로 걸치고, 측벽 가구는 2개의 고주에 중종보를 걸쳤다. 가구의 전체적인 짜임은 1고주7량가(一高柱七樑架)이다. 종보 위로는 간단한 판대공을 짜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상부가구는 천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건물의 가구는 간결하고 견실하다.

 

처마는 전후면에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이고 양측면 합각부에는 박공판과 방풍판을 달았다. 안허리와 앙곡은 맞배지붕의 다른 건물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서까래는 장연(長椽), 중연(中椽), 동연(棟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까래 위에 통평고대를 놓고 그 위에 부연을 걸었다.

천장은 우물반자와 빗반자로 되었으며 어칸이 가장 높게 설치되었다. 어칸의 우물반자는 반자틀을 종보 지점에 설치하고, 후불벽 뒤 후면 어칸의 소란대에는 조각을 하지 않았으며 각 반자의 종다라니에는 만개(滿開)한 화판(花瓣)을 달아 화려하게 되었다.

 

닫집은 정면 3칸 중 어칸을 돌출시키고 어칸의 중앙에서 다시 한 번 돌출시킨 중정자형(重丁字形)평면으로 어칸의 양측 기둥 2개만이 불단까지 내려왔고 나머지 기둥들은 용머리나 연화문으로 그 끝을 화려하게 조각하였다. 특히 닫집 내부천정의 장엄장식인 비천상(飛天像) 연화문(蓮花文)등의 조각은 대단히 화려하다.

 

대웅전의 단청은 전체적으로 금단청 되었는데 장혀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강희(康熙)51년(1712)과 그 다음 해에 단청을 개채(改彩)한 기록이 있으나 퇴락이 심하다. 양 측벽에는 단청과 같은 안료로 약사삼존도(藥師三尊圖)와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를 그려 불전의 내부를 석가(釋迦), 약사(藥師), 아미타(阿彌陀) 삼세불(三世佛)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도면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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