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혼. soul. 프쉬케)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김성욱 대표 약력]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대학원 석사/박사(수료)
미국 Faith Inter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신학석사)
'한반도에 지저스웨이브가 온다' 외 저서 14권
현재 지저스웨이브 대표
https://youtu.be/YhnAmZBQYd0?si=UVNZHSfc8YK5Z-Hs
[한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회복 얘기하면 ‘이단’이라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
Jesus Wave 6월9일 새노래교회 김성욱대표 기도집회 1부 현장영상
[빌립보서4장6절~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시편51편10절~11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히브리서6장19절]
'우리가 이 소망에 있는 것은 영혼(Soul. 프쉬케)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니'
[히브리서12장1절~2절]
이르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 싼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자'
[로마서14장23절]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요한1서4장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3서1장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Soul. 프쉬케)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https://youtu.be/4jfF7Pvnql4?si=bCHGygQ22aaFpjgv
[영화 '최후의 만찬'] 티저영상!
[시사회에서 먼저 영화를 보신 '인더바이블 교회 이정두 목사님' 영화에 대해서
5월24일 주일예배서 언급해 주신 부분]
*얼마 전에 아내와 함께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초대받아 간게 아니라
누구나 시사회 링크하면 갈 수 있는 거였습니다.
영화 제목은 ''최후의 만찬''!
좋은 영화냐 아니냐 저는 항상 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에
가서 저희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시는 것
그리고 제자 베드로가 하나님말씀을 선포하는 것까지의 내용입니다.
성경내용 그래도 잘 다뤘습니다.
그 안에서의 메시지가 있어서 그것에 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제가 그 영화 속에 첫번째로 주목했던 인물은 '바리새인'였습니다.
그 당시 나라를 빼앗긴 상태였죠.
나라를 빼앗긴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들은 바리새인였습니다.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과
여전히 '자신의 삶'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있는 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부분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헛된 부흥을 꿈꾸고 있었고 또 섞여있었고
또한 그시대 정권에 아부하고 있었고.
지금 무언가와 아주 정확하게 일치를 하죠?
지금 교계의 지도자들이 마치 이와같지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헛된 부흥& 혼합주의&정권에 아부하는 것''
그 시대 나라가 무너져서
낙동강 전선도 무너질까말까하는 상황 속에서도
나라를 향한 마음이 아닌
오로지 자기의 것을 지키려는 자들!
''권력에 결탁 된 목회자의 모습''을 바리새인을 통해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영화 속에서 제가 집중해서 본 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만찬을 베푸실 때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서로 예수님 옆에 앉겠다고 싸우는 장면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을 깊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마태복음23장1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교회의 리더들이 목회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있지는 않은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롯유다가 나무에 목을 매단 장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도망가는 장면
아니, 이렇게 얘기하는 것 '스포'가 되나요? ㅋㅋ
그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ㅎㅎ
*이 영화에서는 가롯유다에 대해 '너 그럴 줄 알았어'가 아닌
''내가 너에게 좀 더 책망하고
옳은 길로 가도록 했어야 했는데''
''우리가 더 기도를 해줬어야 했는데''
라는 베드로가 회개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 첫장면인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그 첫장면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 계셨던 그 자리에 베드로가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모습이 되야하지않을까요
예수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 목자되신 우리 스승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본분이 우리의 삶이 되야하지않는가...
제가 아내와 함께 시사회에서 본 영화 ''최후의 만찬''이
곧 개봉이 된다고 합니다.(6월4일)
여러분들도 이 영화 보시면 좋겠구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화를 봐야 또 이런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고
직접 상영관에 가서 관람하시면서 이 영화를 통해
주님의 마음이 여러분께도 부어졌으면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200도 300도 한다해도
주님의 마음을 모르고 본다면 다 헛방입니다.
성경의 은사가 드러나도 주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그것도 헛방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몰라도 은사가 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열매가 좋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은사를 구하기 전에 능력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부터 알기를 구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땅위에 이뤄지길 기도하는
진짜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화 ‘최후의 만찬’이 고발하는 신념의 위선과 대한민국 정치 현장 : 문화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영화 ‘최후의 만찬’이 고발하는 신념의 위선과 대한민국 정치 현장 /크리스천투데이
[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232] 거울 앞에 선 배신자들
기득권 성전 체제 지키기 위해
진짜 성전 예수님 파괴 가야바
민족과 체제 위한 희생 명분도
진실도 편집 권력 집단 떠올라
가룟 유다도 태생적 괴물 아닌
예수 통제·이용 왜곡된 신앙인
지독한 자기 중심적 생각 산물
베드로는 회개, 유다는 후회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마지막 일주일을 스크린에 담아낸 할리우드 대서사극 영화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 오는 6월 4일 국내 관객들을 찾아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여정을 깊이 있게 조명하며, 다가올 비극 앞에서 두려움과 혼란 속에 흔들리는 제자들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단순히 성경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믿음과 배신, 권력과 광기, 군중심리와 인간 내면의 균열을 압도적인 영상미와 묵직한 정서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성경 블록버스터 영화 ‘최후의 만찬’은 2천 년 전 예루살렘 다락방을 무대로 삼고 있지만, 그 서사가 칼끝처럼 겨누는 종착지는 놀랍도록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현장과 인간의 보편적 내면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종교 영화에 머물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거룩한 명분의 위선’과 ‘자기 우상화가 초래하는 배신의 메커니즘’을 신학과 심리학, 그리고 미장센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예리하게 해부해 낸 탁월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1. ‘넘겨줌(Paradidomi)’의 신학과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재판정
성경은 유다와 가야바의 행위를 단순히 도덕적 변절이 아닌, 그리스어 원어로 ‘파라디도미(Paradidomi, 넘겨주다)’라고 기록합니다. 영화는 유다가 예수를 가야바에게 넘기고, 가야바가 다시 예수를 로마 권력에 넘기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진리를 어떻게 도구화하는지 시각화합니다.
이 구조는 오늘날 한국 정치권이 보여주는 ‘사법과 정의의 고무줄 잣대’와 소름 끼치도록 일치합니다. 가야바의 신학은 ‘공동체를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유익하다’는 철저한 공리주의이자 기득권 수호 논리였습니다. 그는 성전 체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진짜 성전이신 예수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더욱 섬뜩하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악하다고 믿으면서는 결코 배신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선을 위한 선택’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구축합니다.
가야바 역시 ‘민족과 체제를 위한 희생’이라는 거룩한 명분으로 자신의 권력욕과 두려움을 포장했습니다. 진짜 위험한 악은 자신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정의의 수호자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정권을 잡은 주체들의 입맛에 따라 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불의가 되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진실(Truth)조차 얼마든지 편집하고 왜곡하는 현대 정치의 ‘가야바적 메커니즘’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그들은 예수를 넘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혼을 당리당략에 넘겨준 것입니다.
2. ‘내가 만든 메시아’의 붕괴: 유다의 환멸과 대중의 변절 심리
목회자와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가룟 유다는 태생적 괴물이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으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를 통제하고 이용하려 했던 왜곡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유다의 실패는 예수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예수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하고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자신이 원하는 혁명가나 정치적 메시아의 길을 걷지 않고 고난과 죽음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 유다의 ‘신앙’은 순식간에 ‘환멸’로 바뀌었습니다.
이 심리적 궤적은 정치적 ‘메시아 환상’에 갇힌 오늘날 한국 유권자들과 대중의 민낯을 그대로 투영합니다. 대중은 정치인에게 “내 경제 문제를 해결해 줄 것”, “내 적대 세력을 궤멸시켜 줄 것”이라는 세속적 구원 서사를 투영합니다. 그러나 그 정치인이 내 프레임대로 움직여주지 않거나 기대만큼의 유토피아를 보여주지 못할 때, 대중의 열광은 가차 없는 환멸과 분노로 바뀝니다.
인간은 언제나 누구라도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예수라 할지라도, ‘내 생각과 내 이익에 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지독한 자기중심성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유다의 변절은,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서 매번 되풀이되는 지지층의 급격한 이탈과 철새 정치인들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목회자로서 이 영화 앞에서 다시 묻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를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고용하고 있습니까? 영화 속 유다는 예수를 고용하려 했던 자의 끝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가장 비극적으로 보여줍니다.
3. 영화적 완성도와 연출의 상징성: 침묵과 시선으로 해부한 배신의 심리학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날카로운 신학적 메시지나 정치적 은유에만 있지 않습니다. 영화 자체의 연출과 미장센은 이 무거운 담론들을 완벽하게 시각화하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감독은 화려한 액션이나 과장된 감정 폭발 대신, ‘침묵’, ‘시선’, ‘정적(靜的) 긴장감’을 통해 배신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빛과 어둠이 빚어낸 인지부조화
최후의 만찬 장면에서 카메라는 인물들의 얼굴을 빠르게 소비하지 않고 길게 머무릅니다. 서로의 눈빛 사이에 흐르는 불안과 의심, 죄책감의 균열을 천천히 포착하는 카메라는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유다를 비추는 장면에서는 흑백에 가까운 어둠과 빛의 대비를 활용, 그의 내면에서 이미 시작된 영혼의 분열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예수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선언하는 순간에도 영화는 단순한 충격의 반응보다, 유다의 흔들리는 눈빛과 침묵의 시간을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스승은 이미 자신의 배신을 알고 계시며, 그럼에도 사랑의 떡을 건네신다는 사실 앞에서 유다는 극도의 인지부조화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 앞에 무너지기보다,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정당화하는 길을 택합니다.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악’
가야바가 등장하는 재판 장면 역시 평범한 악역의 클리셰를 거부합니다. 그는 냉혹한 광인이 아니라,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권력 본능 사이에서 스스로를 철저히 정당화하는 ‘합리적 권력자’로 묘사됩니다. 이 지점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한 부분입니다. 진짜 위험한 악은 자신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거룩한 사명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합니다.
단절과 공허의 사운드스케이프
웅장한 배경음악을 절제하고 침묵과 낮은 음조의 사운드를 배치한 연출은 관객 스스로 인물의 내면에 깊이 침잠하게 만듭니다. 특히 유다가 은 30을 받은 뒤 홀로 무너지는 장면에서 흐르는 적막감은, 단순히 배신자의 슬픔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될 때 찾아오는 지독한 ‘영적 공허’를 스크린을 뚫고 체험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완전한 고립과 소외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배신을 감행한 순간 유다는 예수의 공동체에서도, 자신을 이용한 권력층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철저한 이방인이 됩니다. 은 30이 손에 쥐여졌을 때 밀려온 것은 승리감이 아니라, 우주적 고독과 죄책감이었습니다.
광기와 팬덤의 군중심리
영화는 분노하고, 침묵하고, 조롱하는 군중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클로즈업합니다. 이 교차 편집은 예수를 죽인 것이 한 개인의 배신만이 아니라, ‘집단 심리의 광기’가 어떻게 진실을 십자가에 못 박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2천 년 전 유대 사회의 풍경을 넘어, 오늘날 미디어와 여론, 그리고 눈먼 정치 팬덤 속에서 확증편향에 갇혀 날뛰는 현대 사회의 군중심리를 고스란히 연상시킵니다.
무엇보다 영화가 더욱 섬뜩한 이유는, 이 배신과 광기가 특정 시대나 특정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배신은 어느 한 정치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 본성 전체에 깊이 뿌리내린 죄성과 자기중심성의 문제입니다.
유다 역시 단순히 정치 권력에 기대를 걸었던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적 열심과 신념마저 자기 욕망을 위해 이용했던 왜곡된 신앙인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결국 군중심리 또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믿고, 자신이 원하는 정의만 정의라고 확신하려는 위험한 확증편향 속에 살아갑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과연 다를 수 있는가”라는 불편한 질문 앞에 서게 만듭니다.
결론: 식탁의 주인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배신 이후 유다는 자신의 죄를 뉘우쳤지만, 예수의 사랑과 용서를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는 “내가 저지른 죄는 신(神)조차 용서할 수 없다”는 지독한 영적 교만이자 자기중심적 절망의 결과였습니다.
유다와 베드로 모두 예수를 배신했지만, 두 사람의 마지막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도 예수의 사랑을 붙들었지만, 유다는 자신의 죄의 무게에만 사로잡혀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그것이 후회(Remorse)와 회개(Repentance)의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결국 ‘최후의 만찬’은 무대 위에서 설교처럼 정의를 외치는 영화가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 관객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어두운 배신의 심리극 한가운데서 발견하는 가장 거대한 반전은, 인간의 그 추악한 배신의 메커니즘과 권력의 음모마저도 구원의 도구로 승화시켜 버리시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섭리입니다. 예수는 배신할 유다의 발을 씻기셨고, 그에게 사랑의 떡을 건네셨습니다.
정권의 입맛과 대중의 변덕에 따라 정의가 춤추는 세상 속에서, 영화 ‘최후의 만찬’은 우리에게 가장 날카롭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막을 내립니다.
“그 밤, 당신은 예수의 식탁 어디쯤에 앉아 있습니까?”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주시는 모습
https://youtu.be/Uj9FmbqDXbo?si=ibkT8P_3MDHEotIm
[주일예배에서 민X당 당선자에게 박수 친 교회, 지금 한국교회의 민낯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안녕하십니까?] Kingdom Culture Creators 염보연목사님
https://youtu.be/JTwkc_dKDps?si=DHZ3EJHLjtSinIq4
[지금 입 다물면,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깁니다!]
[부X선거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무조건 '하나가 되자'라는 입막음용]
Kingdom Culture Creators염보연목사님
https://youtu.be/Rzoo738A9SY?si=jHIQVrUAOMrXpK9F
<윤대통령, 구치소 방을 보고 더 간절히 기도가 나옵니다>
(미국 아틀란타 은혜선교교회 GMC 하현일목사님)
https://youtu.be/3T1gZc_RREw?si=ohJG7jAb1MSBARq2
윤대통령 독방 최초 공개...변기·선풍기뿐인 2평 공간 | 26.06.10
https://youtu.be/qQ-HHnJ1WEI?si=1BpM00GZqojXRjD8
김계리변호사님의 윤대통령 재판에 대한 설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