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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다녀오다

작성자혜전|작성시간26.06.16|조회수20 목록 댓글 6

​용문시장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듯한 버섯전골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외관에, 앉아있기조차 불편한 의자가 놓여 있던 곳이었지요.
사실 능이버섯 고유의 깊은 맛을 잘 모르는 제 입에는 그 전골 맛이 그저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 그 집 버섯전골이 생각난다고 말하던 남편을 위해,
오랜만에 함께 지하철을 타고 용문역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용문시장은 끝자리가 0일과 5일에 장이 서는 정겨운 오일장이라,
일부러 날짜를 맞춰 5일에 길을 나섰지요.
지하철 안은 시원하고 한산해서 아주 쾌적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아간 용문시장은 축제처럼 활기찼습니다.
시장 곳곳에 용문에서 나고 자란 싱싱한 농산물들이 가득해,
파릇파릇한 시골 농산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습니다.
 
구경을 마친 뒤 찾아간 전골집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더군요.
세월의 때가 묻어있던 쓰러져 가던 집 옆으로 
깔끔한 새 건물로 이사를 해서 이제는 더 이상 불편함 없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설이 바뀐 만큼 맛도 조금 변해 있었습니다.
 
깊고 진했던 예전 맛과 달리, 대중의 입맛에 맞추었는지 능이버섯보다는
일반 버섯과 소고기가 듬뿍 들어있었습니다.
남편은 국물이 여전히 시원하다며 반가워했지만,
제 입맛에는 평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함께 나온 특이하고 맛깔스러운 밥 덕분에
저는 밥을, 남편은 전골 국물을 즐기며 기분 좋은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 후에는 택시를 타고 용문사로 향했습니다.
사찰로 향하며, 문득 '우리의 기억이란 참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 용문사 올라가는 길은 제법 길고 아스라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길은 짧고 평탄했습니다.
게다가 용문사의 상징인 1,100년 된 은행나무도 법당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대웅전 바로 밑에 웅장하게 서 있더군요.

​양평 용문사(龍門寺)
신라 신덕왕 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용문사는 천년의 역사를 품은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용문산의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가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곳입니다.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은행나무가 스스로 자리를 옮겼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대웅전 법당을 새로 옮겨 지었을 리도 만무한데 말입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가만히 은행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이가 약 1,100~1,5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입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세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났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천년을 버텼는데, 제 기억은 어찌 이리도 변덕스러울까요.
​'참 나도 내 기억을 못 믿겠으니, 대체 무얼 가지고 진짜 나라고 해야 할까?'
​그때 그 길을 걷던 나도 분명 나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도 나인데,
어찌 이리 기억의 풍경은 다르게 채색되어 있는지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푸르른 생명력을 뿜어내는 거대한 천년의 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이 넓은 잎들이 샛노랗게 단풍 들 때 꼭 한 번 다시 와 보리라 마음속으로 깊이 기약했습니다.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일 그 황홀한 계절에 다시 오면,
이 풍경은 또 내 기억 속에 어떻게 저장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지나간 주말에 다녀온 백월리  금선사에 이어, 이번 용문사까지 남편과의 동행은 참 편안하고 좋습니다.
등산은 무리이고 둘레길 걷기조차 그리 내켜 하지 않는 남편과 함께하기에,
고즈넉한 사찰만큼 무난하고 아늑한 곳도 없는 듯합니다.
조용히 경내를 거닐며 마주하는 풍경 속에서 서로의 속도를 맞출 수 있으니까요.
​다음 여정은 또 어떤 기억을 선물해 줄지 기대하며,
마음속으로 봉선사로 향하는 다음 발걸음을 조용히 준비해 봅니다.

 

까치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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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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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혜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다들 닮았다 하네요 어디가 닮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민송 | 작성시간 26.06.16 혜전 구석구석 훑어보셔요 아주남매같으십니다요.♡♡♡♡
  • 답댓글 작성자혜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민송 아~ 그런가요 ㅎㅎㅎ
  • 작성자미연 | 작성시간 26.06.16 두분의 사브작 데이트 좋네요.
    물길따라 올라가면서
    시원한 그늘
    도시락을 먹어도 좋지요.
  • 답댓글 작성자혜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7 이제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는 것도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가는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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