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걷기 동호회'의 깃발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참 부지런히도 걸어 다니던 그 시절. 돌아보면 그 찬란했던 시간의 한 자락이 경의중앙선 용문역의 아스라한 플랫폼 위로 번져온다.
집을 나서 용문역까지 가는데만 해도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기는 먼 길이었다. 하지만 지루할 틈 없던 설렘은 역 앞에 대기하고 있던 식당 봉고차에 몸을 실으면서 웃음꽃으로 만개하곤 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점심을 거하게 먹고 나면, 기분 좋은 포만감에 다들 슬며시 게으름이 찾아오곤 했다. "에동, 배부르니 걷기 싫다!" 하며 마루에 주저앉던 회원들의 정겨운 야유가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
결국 다들 주저앉고 몇몇 열성적인 회원들만이 용문사까지 터덜터덜 걸어 올라갔더랬다. 마침내 마주한 거대한 은행나무의 노란 수묵화. 그 압도적인 풍경을 가슴에 담고 내려와, 기다리던 일행과 다시 합류해 역으로 돌아오던 길. 하루가 꼬박 다 가는 긴 여행이었음에도, 피곤함보다는 마냥 좋았던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면 입가에 가만히 미소가 번진다.
평소에는 후기에 사진을 많이 올리지 않으시던 혜전님. 웬일인지 모처럼 부부 동반으로 길을 나서서 한껏 기분이 'Up' 되셨던 모양이다. 부부의 다정한 모습과 보기 좋은 풍경 사진들이 줄줄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며, 내 마음까지 덩달아 흐뭇하고 따스해졌다. 부부가 닮은 미소로 서 있는 사진 뒤로, 문득 내가 지나온 은행나무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 웅장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원주 반계리의 거대한 은행나무나, 가을이면 노란 터널을 만드는 인천대공원의 활기찬 은행나무가 주는 감동이 그랬다.
하지만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따로 있다. 강화 용흥궁 옆, 호젓한 골목길에서 마주했던 은행나무의 그 고고하고 외로운 자태. 화려하게 뽐내지 않아도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들던 그 선비 같은 기품은 오랜 시간 내 마음의 풍경화로 남아있다.
지금은 새로운 일터가 된 이곳 면천에서,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1,1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버텨낸 복지겸의 은행나무를 만난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진 풍파를 다 이겨내고도 매해 푸른 잎을 틔우고 노란 가을을 맞이하는 그 거룩한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지나온 내 삶의 굴곡들은 그저 작은 숨결처럼 느껴지곤 한다.
식당 봉고차에 실려 웃던 십 년 전 용문사의 은행나무부터, 매일 출근길을 배웅해 주는 면천의 천년 나무까지.
나무의 나이테에 흐른 세월만큼이나 우리의 삶도, 인연도 참 깊고 아름답게 익어간다.
https://youtu.be/9mMBzeYjXKc?si=y0kTyYMdtQzxCKD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