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봉식이의 흰 운동복

작성자김종권|작성시간14.07.03|조회수23 목록 댓글 1

 

 

근 40여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지내오는 동안, 가만 생각하니 그 동안 좋다고 이름난 다른 어떤 곳을 쳐다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디 눈길 한 번 준 적 없었기에, 물론 4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게 보이는 것은, 이 세상 저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로 호칭하는 저 수많은 호오의 구분없이, 아직도 내 눈에는 그저 거친 풍경의 건설현장이거나 그 풍경과 매우 흡사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도 나는 흰 운동복을 입고 다니는 위인들이 눈에 보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손끝에 찬물 한 번 안 담그고 산다냐 왜 그런다냐 하면서 늘 딱딱거렸다. 다른 어설픈 경우도 아니고, 그들이나 내 주제가 이 건설현장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거기 존재했던 이상, 그런 행위는 하느님도 부처도 알라도 오쇼도 내 편인 것만은 아주 확실했으므로...

 

몇 년전 나는 공사와 공사 사이 잠깐 존재하는 그 짧달막한 노루꼬리 만한 빈틈을 활용하여, 아주 오래된 친한 현장 친구인 봉식이를 찾아갔다. 우연찮게 들은 귀동냥으로 최근에 건설현장을 때려치우고 동해안 어디에서 해산물 도매를 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변함없이 내가 그와 같이 마지막 공사를 같이 했던 그 소읍에 아직 살고 있었다. 늘 하던 히쭉 웃는 웃음 머금고, 관절염 걸려 아픈 내 왼손을 잡아 무지막지하게 흔들더니, 너 오기를 많이 기다렸노라고 한다.

 

그를 만난 건 1980년도 초반 어느 되도않은 건설현장의 지독한 먼지구덩이 속이었다. 지금 같으면 일회용 마스크 정도는 매일 지급 받았으련만, 그 시절에 그런 것은 애당초부터 거기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 때도 건설현장이란 곳은 늘 콘크리트나 철물이 마감 아직 덜 된 먼지 풀풀 나는 건물 속이므로, 환절기 때면 우리는 아직도 늘 따가운 목감기를 달고 살고 있다.

 

게다가 그 때는 안전화나 작업복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운동화 차림에 얇은 티셔츠만 입고, 그것도 바닥이 아닌 10m 정도 높이의 가설 비계틀을 매어놓고, 안전의식 결여와 공사비 부족으로 상부에 합판이나 발판도 깔지 못하고, 그저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비계틀 상단에 띄엄띄엄 놓여 있던, 그 가느다란 단관 파이프를 밟고 다니며 그 모든 작업에 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거지만, 운수 좋아서 지금 살아 있는 거지,죽을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았던 그런 경우가 틀림없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그 현장에 금방 배치 받아 갔으며, 봉식이는 그 현장에 근무한지 이미 6개월이 지난 베테랑이었다. 아무튼 현장 바뀌면 비슷한 일이라도 모든 게 다 바뀌므로, 아무리 동종의 작업이라해도 업무를 파악하고 해당 현장의 생리를 익히는 데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그러하므로 조직 구조상 나와 나의 직계 아니면 한 동안 대화할 여력도 없게 마련이다.

 

봉식이는 키가 작다. 그의 머리끝이 내 어깨 조금 아래 쯤에 오니 아마 150Cm쯤 될 것이다. 워낙 작은 키 때문에 아침 조회나 점심시간, 퇴근시간에 봉식이가 대체 어디 있냐고들 우스개로 찾아서 그 작은 키가 곧잘 눈에 잘 뜨이곤 했는데, 그러나 내가 하는 업무와 그가 하는 업무가 서로 연계되는 부분이 없어 서로 대화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늘 만나야 할 사람은 어쨌든 만나게 한다. 봉식이가 자신이 작업하던 지역의 일을 마치고 내 지역으로 오게 되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봉식이는 작은 키와는 달리 몸이 무척 빠르다. 그 높은 10m 높이의 가설 비계틀 위의 단관 파이프만을 디디고 몸을 움직이는 데도, 차라리 평지 위에서보다 더 빨리 다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조심조심 디디고 다녀도 자칫 발이 삐끗하여 가끔 며칠씩 고생하곤 했는데, 그는 마구 달리듯이 작업장을 종횡무진 다니는데도, 전혀 삐끗하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업무를 끝마칠 즈음, 내가 먼저 현장에서 내려와서 같이 퇴근하려고 잠깐 기다리고 있었고, 봉식이는 무슨 일을 마무리하느라 조금 늦게 내려 왔는데,

 

내가 가만 위를 쳐다보니, 봉식이가 내려올 자리에 사다리가 없었다. 당연히 빙 돌아서 사다리 있는 쪽으로 가서 내려와야 하는데, 그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수직 철제 빔을 택했다. 맨손으로 그 거친 철제 빔을 기가 막히게 원숭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타고 내려와서는, 나를 보고 다시 히쭉 웃는다.

 

야, 봉식아. 빠른 건 좋은디 제발 하찮은 거에 목숨 걸지 마라. 내가 짐짓 핀잔을 주니, 그는 도로 나 보고 그런다.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몰라도 난 그런 게 재미있어야. 어차피 돈 버는 구석은 죽을 구석인디, 재미없게 하면 그게 무슨 가치 있는 일이것냐? 안 그냐? 그러고선 또 히쭉 웃는다.

 

아무튼 일도 그와 같아서, 그는 일의 속도면에서도 나보다 현저히 빨랐다. 또한 그 때 이미 건설회사 경력도 그가 더 많았으므로 기능면에서도 나 보다 월등히 나았다. 그는 도면만 주어지면 나머지 일은 자기 혼자서 그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하는, 말하자면 전천후 종합폭격기와 같이 일이 제 손에 던져지면 나머지에 관한한 하여튼 일사천리였다.

 

당연히 선배들이나 후배들, 회사에서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 때까지 세상에 불평불만 많고 제 맘에 안 들면 따지기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내가 손해 봤다는 느낌이 들면 오만상 쓰다가, 영 글러먹었다는 생각 들면 가차 없이 그 판 끌어 엎어버리는 나와는 전혀 달랐다.

 

말하자면 그런, 서로 조금 다른 생각과 성격을 가진 우리 둘이 어떻게 친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뭐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그런 것도 전혀 없고, 친해질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라든가 하는 그런 공통분모도 없었다. 다만 있다면, 우연찮게 몇 개의 공사를 서로 같이 하면서, 필경 나로 인해 벌어졌을 소소한 콩이야 팥이야 따지는 말다툼도 종종 벌어지곤 했는데,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럴수록 그와 더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구태여 지금 와서 곰곰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의 그런 성격이 내 입장으로써 싫든 좋든, 말하자면 둘이 만나 무슨 일을 하기만 하면 서로 가진 바의 역량을 극대화시켰다고나 할까, 하여튼 그와 같이한 공사들은 타인들이 추측할 수 없는 대성공을 늘 거두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물론 대성공을 거둔 그 시점에서 나는, 우연히 운이 잘 맞아 떨여져 그렇게 되었거나 내가 잘나서 그랬으려니 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번의 다른 공사들에서 지독한 부침을 겪고난 후, 나는 그와 같이 했던 성공적인 여러 공사들에 대한 그 성공요인들을 자체적인 재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역시 그의 틀에 박히지 않은 유연한 사고방식과,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치않는 현장 체험에서 비롯된 주옥 같은 일솜씨들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을 나는 그 때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그는 일에 있어서 그랬지만, 일이 끝나면 일이 주는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서 그랬던지 갑자기 딴 사람이 되곤 했다. 급격하게 허술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술이 한 잔 거나하기라도 했다 치면 어김없이 사고를 치곤했다. 그의 사고치는 솜씨는 내가 건설회사를 이토록 오랫동안 다니면서 겪은 여타의 그 어느 사고들보다도 희귀하고 독특하며 기상천외하다. 그는 일단 술이 취하면 그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차도 4차선이 비좁다.

 

한 번은 몇몇이서 술을 한 잔 거나하게 하고, 술 약한 봉식이를 일단 따돌린 다음 한 잔 더 하자는 약조를 은밀히 한 후 자리를 옮기는 그 시점이었다. 내가 살살 달래 집으로 보내놓고 남은 사람들과 그 자리에 조금 서 있다가, 자리를 막 옮기려던 찰나, 하필이면 그 자리 위치는 내 살던 집 주인의 기다란 논을 중간에 두고 봉식이와 내가 마주보고 섰던 풍경이었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봉식이가, 야. 거기들 안 서! 그러면서 비틀비틀 오늘 막 모 심은 그 논을 가로질러 오기 시작한 것이다. 술 취하면 4차선이 비좁은 사람이, 그 논을 어떻게 밟고 반대쪽으로 온 건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 다음날 새똥 빠지게 종일 현장일을 다한 나는, 저녁 일찍 먹은 다음 모 심을 줄 모르는 봉식이에게 플래시 비추게 해 놓고, 성한 모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린 그 난장판 논을, 아주 새로 만드느라 늦은 밤까지 정말 또 혼쭐이 났었다.

 

한 번은 또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해 깊은 겨울 자기 생일날, 현장 동료들을 잔뜩 불러 놓고 생일잔치를 거하게 했는데, 어떻게 모이다 보니 동석했던 그 모든 사람들의 집은 전부 그 근처고, 나만 제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택시라도 타고 가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 추운 코딱지만 한 읍내의 서너 대 있던 택시는 다 자러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내가 잠깐 밭두럭에 오줌을 누는 사이, 봉식이가 큰길로 나가 나를 차 태워 보낸다고, 고속으로 주행하는 심야버스 앞을 가로막아 서 버린 것이다.

 

끼이이이이익~! 난 정말 그 날 봉식이가 차에 친 줄 알았다. 괴춤도 제대로 못 올리고 머리가 쭈뼛 서서 불빛에 가만 보니, 정말 봉식이 코앞에 심야 직행버스가 식식거리며 서 있다. 그게 그래서 그 버스 운전기사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치자. 그 정도 그 상황에 그 분이 버스에서 내려 우리에게 무슨 고귀한 법문을 던졌을 것 같은가? 차문 열리자마자 건설현장에서도 듣기 매우 희귀했던 욕설이 가차없이 바로 우리쪽으로 날아왔다.

 

솔직히 꼬챙이 아니면 작대기로 너무 오랫동안 살아서 암만 급행버스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럴 때는 딱히 무슨 수라는 게 없다. 없었으므로 무조건 싹싹 빌었다. 안 된다고, 이런 인간은 파출소 가야 한다고 돼지 멱따던 운전사가, 버스 안 승객들의 조금은 졸린 듯한 짜증에 성질머리 조금 잦아들 무렵, 내가 운전사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 나마 이 친구가 흰 운동복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아스팔트색 운동복이라도 입고 있었으면 정말 어쨌겠어요? 운전사가 뜨끔하며 봉식이와 나를 훌어보다가, 종래는 혼자 먼산 보며 채머리를 흔들더니, 얼른 차에 탄다.

 

며칠 전 내가 봉식이를 찾아간 그 날도, 그는 또 흰 운동복을 입고 마중을 나왔다. 바닷가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두 시간 나눈 후 일어서려니까, 기어이 술 한 잔을 해야 한다며 나를 또 붙든다. 그럴 줄 알고 이미 차를 안 가져갔던 나는, 흔쾌히 그가 팔고 남은 잔챙이 몇 마리 포 떠서 술 한 잔을 했다. 기가 막혔던 옛 추억도 있고 해서 내가 먼저 집적거렸다.

 

야. 봉식아. 오늘도 심야직행버스 세워주는 거쟈? 봉께 아매도 그럴라고 또 흰 운동복 입고 나온 거 같은디? ...아 아녀. 오늘은 너 안 보낼겨. 너 새벽에 물회 해장하는 거 좋아한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는디, 내가 이런 일 하면서 어찌 너를 밤에 그냥 보낼 수 있것냐? 살얼음 사각거리는 새벽 물회 해장 한 그릇까지는 혀고 가야지. 그렇다. 봉식이는, 세상에서 나의 이런 궁색한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나도 그렇지만, 이제 그도 나를 너무나 잘 안다. 저나 나나 건설현장에서 손가락 발가락 갈빗대 무릎 무수히 다쳐 몸 성한 데 잘 없고, 절친한 선후배들 숱하게 거기서 잃었거나 떠나보냈어도 며칠 입 꾹 다물고 일에 몰두하며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지만, 그깟 어슴프레한 새벽 바닷가에 마주 앉아 아주 잘 된 물회 한 사발에 소주 한 잔이면, 나도 아무 뜻 없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는 그 정도의 빈한한 비밀까지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고맙다. 믿을 거라곤 우리들 자신의 손발의 힘과, 오로지 해야겠다는 끈기와 열정으로 꽉찬 머리 밖에 없었던 그 가난한 시절, 그나마 서로 아픈 살과 뼈를 의지하며 헤쳐온 원수 같았던 난공사들과, 힘든 그 모든 세월들에게도 너무 고맙다. 그것들 마저 없었다면 이 따위 허섭스러운 야바위 같은 세상 위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세월에 올곧게 매진했을런지... 우린 그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그 바쁜 시간들에 쫓겨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꽃을 끝없이 피우고 있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徐大和 | 작성시간 14.07.03 잘 수마된 수석 같은 그대들의 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친구의 귀가를 위해서 생명까지도 던질 만한 친구는 세상에 많이 남아있지 않을것입니다. 작품속 주인공 같은 이름의 봉식씨. 늦은 나이가 되어도 변치않는 좋은 우정 나누는 아름다운 삶 지속 하시기 바랍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