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하얀수선화(강원, 태백)작성시간26.06.21new
전 혼식을 하던 시대에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를 다녔어요. 잘 사는집 아니 조금 산다는 집 친구들은 하얀 쌀밥을 싸가지고 다녔지요. 전 그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점심시간에 선생님께서 도시락 검사를 하시곤 했지요. 그래 쌀밥을 싸가지고 온 친구들은 혼나는 경우가 있어 제 도시락에서 보리밥을 가져가는 친구들이 있었지요.
작성자춘천할매(서울)작성시간26.06.21new
1970년 무렵에 정부에서 혼,분식 장려가 의무였어요. 허가 낸 쌀가게에서 백미를 팔다가 적발되면 영업정지가 나왔고 7분도미,9분도미만 팔게했어요. 식당에서도 백미밥 팔다가 검열 나온 공무원한테 걸리면 과태료 물고 주일에 정한 요일은 분식만 팔게했어요. 쌀이 부족하던 시절에 백미를 먹는 것은 죄를 짓는 시절이었어요. 그 후 통일벼가 개발되어 좀 푸석한 밥이지만 수확량이 많아 획기적인 쌀이었어요. 옛이야기지요.
작성자황순복작성시간26.06.21new
아침 차안에서 지금쯤 갖캔 감자(달챙이수저로)깎아 보리밥에 넣어 푹 익혀 감자 툭툭 으깬 보리밥 자식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 보시면서 환 하게 웃으시던 엄마 아버지 모습을 말하니 영관굴비 바닿가에서 풍족하게 산 엽지기는 가만히 듣기만 합니다 재미없는 영감같으니라구 ㅡ
작성자노노봉양작성시간26.06.21new
학교 갔다 와서 마루끝 처마 밑에 보리쌀 삶아 대롱대롱 달아놓은걸 숟가락으로 떠서 미원 쪼~끔 넣어 푼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음 꿀 맛 이었지요 우리엄마 보릿집 불 때서 삶아놓은 그 보리쌀 밥도 그때는 간식도 되어주고 끼니도 되어 주었네요 지금은 건강식과 향수의 밥상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말 입니다 시골 갔다오다가 쉼터에서 한줄 남깁니다 엄마 생각도 나서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