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원제(驛院制)
조선 시대의 역원제는 고려 시대의 것을 답습하면서, 관리 체계의 개편에만 주력하였다. 전국에 500여 개소의 역이 있었는데,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주요 도로에는 대략 30 리마다 역을 두었다. 역에는 마필과 역정(驛丁)을 두어 공문의 전달, 공무 여행자에 대한 마필의 제공, 숙식의 알선 등을 하였다.각 역에는 찰방, 역승의 관장하에 역장, 역리, 역졸 등이 있어 관물(官物)의 수송까지 담당하였다. 원(院)은 교통의 요지인 역에 설치한 국립 숙박업소로 원주전(院主田)을 지급받아 원주(院主)가 이를 운영하며,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각 역의 역마를 사용하는 데는 마패라는 증명이 필요했는데, 사용자의 지위에 따라 각 역에서 제공하는 마필의 수에 차이를 두었다. 중앙에서는 병조에서 출장 관리의 관품에 따라 마문(馬文)을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그에 따라 마패를 내 주었다. 지방에서는 관찰사, 절도사가 발마패(發馬牌)를 받아 가지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였다.
조선 시대의 역원제는 고려 시대의 것을 답습하면서, 관리 체계의 개편에만 주력하였다. 전국에 500여 개소의 역이 있었는데,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주요 도로에는 대략 30 리마다 역을 두었다. 역에는 마필과 역정(驛丁)을 두어 공문의 전달, 공무 여행자에 대한 마필의 제공, 숙식의 알선 등을 하였다.각 역에는 찰방, 역승의 관장하에 역장, 역리, 역졸 등이 있어 관물(官物)의 수송까지 담당하였다. 원(院)은 교통의 요지인 역에 설치한 국립 숙박업소로 원주전(院主田)을 지급받아 원주(院主)가 이를 운영하며,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각 역의 역마를 사용하는 데는 마패라는 증명이 필요했는데, 사용자의 지위에 따라 각 역에서 제공하는 마필의 수에 차이를 두었다. 중앙에서는 병조에서 출장 관리의 관품에 따라 마문(馬文)을 발급하면, 상서원에서 그에 따라 마패를 내 주었다. 지방에서는 관찰사, 절도사가 발마패(發馬牌)를 받아 가지고 필요에 따라 사용하였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