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사(領選使)
고종 18년(1881년) 9월, 청에 파견하였던 유학생의 인솔 사절. 청의 리훙장(이홍장)의 권고에 따라 통리 기무 아문에서 김윤식(金允植)을 인솔자로 삼아 38 명의 유학생을 중국 톈진(天津)에 파견하였다. 일행 중 중인 이상의 신분 20 명을 학도(學徒), 천인 신분 18 명을 공장(工匠)으로 하였다.
이들 유학생들은 각각 병기 공장에 파견되어 화약, 탄약 등 신식 무기의 제조법과 사용법을 배웠다. 임오군란으로 1 년도 채 못되어 귀국하고 말았지만, 귀국 후 그들의 보고에 따라 우리 나라 최초의 병기 제조창인 기기창(機器廠)을 설치하게 되었다.
고종 18년(1881년) 9월, 청에 파견하였던 유학생의 인솔 사절. 청의 리훙장(이홍장)의 권고에 따라 통리 기무 아문에서 김윤식(金允植)을 인솔자로 삼아 38 명의 유학생을 중국 톈진(天津)에 파견하였다. 일행 중 중인 이상의 신분 20 명을 학도(學徒), 천인 신분 18 명을 공장(工匠)으로 하였다.
이들 유학생들은 각각 병기 공장에 파견되어 화약, 탄약 등 신식 무기의 제조법과 사용법을 배웠다. 임오군란으로 1 년도 채 못되어 귀국하고 말았지만, 귀국 후 그들의 보고에 따라 우리 나라 최초의 병기 제조창인 기기창(機器廠)을 설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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