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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동차 한대 값이었던 벽돌폰

작성자eBizbooks|작성시간09.08.06|조회수432 목록 댓글 2

카폰 한 대 구입하려면 400만 원 들어
사람들이 전화를 가지고 다닐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 한 만화가는 공중전화를 등에 지고 다니는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상상이 가지 않는 시대라고 말했다. 전화기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7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1984년 한국에 이동통신 사업이 시작되면서 이런 상상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4년 3월 29일 차량전화 서비스 업무의 효율적 관리와 이용자 편익증진을 목적으로 한국전기통신공사(KT 전신)의 위탁회사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가 설립된다. 당시 납입자본금은 2억 5000만 원, 직원 수는 32명으로 반듯한 건물도 없이 구의동의 광장전화국 한 구석을 빌려 셋방살이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1984년 4월 2일부터 차량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84년 말에 가입자 2658명, 매출 3억 9000만 원을 기록한다. 이는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당시 카폰Carphone을 생산하는 곳은 금성전기 등 네 군데에 불과했고 대부분 수입제품이었다.

 

 

모토로라의 차량용 전화기 가격은 300만 원이었다. 차량용 전화기 한 대 가격은 가입비까지 합치면 400만 원이 넘었다. 당시 가장 많이 팔리던 포니2 자동차 가격인 400만 원 선이었으니 차량전화기 한 대 가격이 자동차 가격과 같았던 셈이다. 여기에 월 기본료가 무려 2만 7000원이나 했고, 8초당 20원, 단말기 유지보수료 월 1만 원 등이 사용료로 부과됐다.

 

때문에 차량전화를 사용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신청자가 쇄도해 한 달 사이에만 2000명이 가입했다. 당시 확보한 1년 동안의 회선은 3000회선에 불과했기 때문에 회선 공급 계획을 수정해야 할 정도였다. 차량전화는 서민들에게는 줘도 사용 못할 정도의 비싼 서비스였지만 부유층에게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매우 유용했던 서비스였다.


카폰으로 부르던 차량전화가 부의 상징이 되면서 안테나 길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눈에 뜨이도록 길어졌다. 관공서나 호텔을 비롯한 건물을 출입할 때는 안테나 달린 카폰 차량이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안테나를 두 개 다는 카폰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는 정비공장에서 안테나만 다는 가짜 카폰 차량도 적지 않게 등장했다. 또한 워낙 고가 제품이라 카폰 판매를 알선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카폰 복덕방이라는 신종 업종도 생겨났다. 카폰 복덕방의 대당 알선 수수료는 25~50만 원으로 꽤 높았다.

 

 

벽돌폰에서 CDMA 도입까지 이동통신 강국으로 성장

1980년대까지 휴대전화는 무게가 4Kg이 넘어서 어깨에 메고 다니던 기계였다. 손에 들고 다닐 만한 벽돌폰으로 바뀌고 다시 한 손에 쥐고 다니는 플립 형식으로 폰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영웅본색>이 재개봉한 적이 있었는데, 심각한 영화인데도 주윤발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젊은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주윤발이 벽돌폰을 들고 전화를 하는 장면 때문이다. 우리가 영웅본색을 보던 당시에는 최첨단 기계를 사용하는 주윤발의 통화 장면이 환상처럼 보이면서 우리도 전화기를 들고 다녔으면 했는데, 요즘 젊은 층에게는 코미디로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차량전화 서비스로 시작했던 이동통신 서비스는 1988년부터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하며 벽돌폰을 등장시키고, 1996년에 세계 최초 CDMA 방식 이동전화 상용화로 본격화된다.

 

CDMA 방식은 1992년에 정부에서 날로 수요가 증가하는 이동통신 시장의 수요를 위해 디지털 이동통신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일에서 시작된다. 여러 기술을 검토한 결과 1993년에 CDMA를 선택하는데 당시만 해도 CDMA는 이론만 나와 있었고, 실제로 장비나 서비스가 나온 적이 없는 미지의 통신 방법이었다. TDX를 개발했던 서정욱 박사가 CDMA 개발단장을 맡아 총괄하면서 교환기 및 단말기를 개발하면서 LG전자와 삼성전자 등의 제조업체 기술도 크게 향상되었고, 휴대전화 강국의 길을 걷게 된다.


황무지 같은 상황에서 개발을 맡은 서정욱 단장은 CDMA 상용화가 아득하게 느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TDX-10 개발을 주도했던 이성재 부장과 CDMA에 관심을 가졌던 이주식 부장을 만나면서 물꼬가 트인다. 1995년 말까지 개발이라는 제한을 두고 하루가 급하게 개발되었던 CDMA 개발에는 S사 확약서 사건과 H사 단말기 현장분해 사건, 서비스 일주일 전의 착신불능 사건 등 많은 일화를 만들면서 1996년 1월 1일에 세계 최초로 서비스를 실시하게 된다.


이후 2002년에는 세계 최초 3GEV-DO서비스 상용화, 2004년에는 세계  최초 위성DMB 서비스와 세계 최초 이종망간 영상전화TD-SCDMA, WCDMA, 2006년에는 세계 최초로 3.5GHSDPA상용 서비스 등이 등장하면서 이동통신 강국의 길을 걷는다.

 

 《대한민국 IT100》김중태 저, 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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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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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ndi | 작성시간 09.08.06 역시 멋진 내용이군요. 핸드폰의 역사. 잘 봤습니다~! 주윤발이 벽돌폰을 들고. ㅋㅎ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eBizbook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8.07 벽돌폰은 거의 무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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