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 속 해티패트너 읽기: 침묵과 감각 부재, 자아 소멸을 중심으로
-텍스트 설명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의 저작인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1945년 창작된 동화 시리즈로, 80여년간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으로 확장되며 전 세계적 인기를 유지해 왔다. 글과 삽화가 함께 있는 ‘무민 골짜기’ 시리즈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무민 골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에는 종을 특정할 수 없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전체적으로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레퍼런스와 수수께끼 같은 요소들이 많아 여러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중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은 시리즈 중에 가장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책이다. 10월 7일 오후 8시 42분에 혜성이 지구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그날을 기다리는 공포감과 호기심,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무민 골짜기를 지배하게 된다.
내용:
<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에 잠깐씩 등장하는 해티패트너는 세계관에서 가장 의문스럽고 신비로운 존재들이다. 이들은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존재들로 묘사되며, “아무도 모르는 것을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또한 작품 속에서 해티패트너는 반복적으로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징후처럼 나타난다. 혜성이 떨어지기 전, 주인공 무민트롤 일행은 해티패트너들이 평소와 달리 들떠서 엄청난 속도로 배를 몰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혜성이 떨어지기 직전에는 줄지어 동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본다. 이들을 보고 스노크는 “해티패트너들은 어디가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을 피해 다닌다.”라고 말한다.
해티패트너의 중요한 특징은 폭풍이 불 때 전기가 통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생활은 ‘좋지 않은 생활’이라고 묘사되지만 실제의 삶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이들은 언제나 비슷한 생김새로 무리지어 다니는 존재들이고, ‘해티패트너’라는 종의 이름으로만 불릴 뿐 한 번도 개별적 이름이나 성격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삽화에서도 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하지만 시력은 없으므로 이는 눈은 있되 감각을 상실한 상태인 것) 좌우로 다섯 손가락이 몸에 딱 붙은 길쭉한 형상으로 반복되어 그려지며, 개별적 자아보다 집단적 존재로 강조된다. 이처럼 해티패트너는 언어의 부재와 감각의 부재, 개체성의 희박함을 통해 감각과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적 체험의 상태에 반복적으로 진입하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집단적 움직임과 전기 반응은 일종의 집단적 엑스터시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엑스터시의 트리거는 폭풍이나 혜성과 같은, 이 세계관에서의 불가해한 현상들이다. 따라서 그에 따라 움직이고 반응하는 이들을 자연 신비주의적 존재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혜성이 다가오는 종말론적 분위기와 연결하였을 때, 무민트롤과 그의 친구들은 관측소를 찾아 혜성을 예측하고 이해하려 하는 반면 해티패트너들은 그것을 의미화하지 않으며 그저 감응하고 그에 반응해 움직인다. 이 대조는 종말론적 사건을 마주한 이성적인 이해와 신비적인 감응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의 반응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해티패트너들은 이 판타지적인 세계관 안에서도 가장 타자화된 존재들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무민 골짜기 세계관에서는 서로 다른 종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섞여 어울려 살아가지만, 해티패트너는 유난히 불가해하고 낯선 존재들로 그려진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주인공이 되지 않고, 언제나 다른 등장인물들이 시선을 통해서만 이야기에 등장한다. 즉 해티패트너는 이미 신비롭고 판타지적인 세계관에서 다시 한 번 바깥으로 타자화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