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원도 정선군 북면(여량면)

작성자가물치|작성시간10.04.06|조회수423 목록 댓글 0

 행정구역

정선읍  고한읍  사북읍  신동읍  동면  남면  북면  북평면  임계면

   강원도 정선군   클릭--> 관광 안내지도    등산지도

여량면 시가지 전경

     지도클릭---확대 사진보기

북면

본 면은 구한국 시대에 여량면과 여량면이었던 것을 여량면을 여량면에 통합하고 (강희4년)면사무소를 북평에 두었다. 그후 1915년 4월에 리·동을 통합하여 9개리로 확정하고 면사무소를 남평리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에 현 면사무소를 여량리로 이전하였다.

 

아우라지
아우라지 이미지
위치 :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양수인 송천과 음수인 골지천이 어우러진다는 뜻의 아우라지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했다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정선아리랑의 애정편의 한 가사로도 유명하다.
남한강 1천리의 뗏목 수로가 시작된 곳으로 이곳에서부터 비로소 강이라고 부른다. 마을쪽에는 키 큰 미루나무와 아카시아가 숲을 형성하고 있고 강변에는 자그마한 숲과 풀밭이펼쳐져 있다.
여량마을로 건너는 나룻배가 있고 합수지점에는 아우라지 처녀상과 최근에 지어진 정자각이 있으며, 급수시설과 공중화장실 등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시외버스 : 서울 동서울터미널 → 정선 (1일 10회, 4시간 소요)
정선 → 여량면 (1일 13회운행, 30분소요
영월 → 미탄 → 정선 → 여량면
태백 → (싸리재) → 고한, 사북 → 남면 → 정선 → 여량면
태백 → 임계 → 여량면
 
노추산

노추산 이미지

위치 :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높이 : 1,322m 백색의 기암괴석과 산위의 운무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노추산은 신라시대 설총선생과 율곡선생이 공부했다던 이성대가 있으며 산 앞으로 구곡천이 흐르고 있어 등산객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성대에서 사달산쪽으로 2.5Km가면 옛날에 신선들이 나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가 있고 서북쪽에는 높이 209m에 달하는 오장폭포가 있으며 초여름 폭포주위의 구곡천변에는 철쭉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등산코스
제1코스 : 삼거리가든→(60)대성사갈림길→(35)쉼터→(30)이성대→(35)정상(총160분)

제2코스 : 종량동→(45)폐광터→(70)갈림길→(35)이성대→(35)정상 (총185분)

찾아가는 길
승 용 차 : 여량면 → 노추산입구 (8.5km, 20분 소요)
시외버스 : 서울 동서울터미널 → 정선 (1일 10회, 4시간 소요)
정선 → 여량면 (1일 13회, 30분 소요)

철 도 : 청량리 → 증산역 (1일 6회 4시간 5분 소요)

증산역 → 구절리역 (1일 4회, 1시간5분 소요)

영월 → 미탄 → 정선 → 여량면(구절리)

태백 → 임계 → 여량면

태백 → 고한, 사북 → 남면 → 정선 → 여량면

 

이성대
이성대 이미지위치 :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노추산
여량면 구절리 노추산 해발 1,322m 8부 능선에 위치한 이성대는 산자가 수려하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쌓여 있는 2층 목조건물로 설총과 율곡선생이 입산 공부하던 곳이다. 1층은 공부방이 3칸이고 작은 부엌이 있으며 2층에는 공자와 맹자 두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2층에서 내려다 보면 구절리 부락과 산악의 능선이 그림같고 청명한 날 정상에 오르면 동해가 관망되기도 한다.
찾아가는 길

승 용 차 : 여량면 → 노추산입구 (8.5km, 20분 소요)

시외버스 : 서울 동서울터미널 → 정선 (1일 10회, 4시간 소요)

정선 → 여량면 (1일 13회 30분 소요)

철 도 : 청량리 → 증산역 (1일 6회운행, 4시간5분 소요) 증산역 → 구절리역 (1일 4회운행, 1시간5분 소요)

영월 → 미탄 → 정선 → 여량면 구절리 태백 → (싸리재) → 고한, 사북 → 남면 → 정선 → 구절리

태백 →하장 → 임계 → 여량면 구절리

 

오장폭포
오장폭포 이미지위치 :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경사길이 209m, 수직높이 127m의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공폭포로서 노추산의 수려한 계곡을 가르고 송천으로 떨어지는 백색의 물줄기는 큰 낙차와 시원스러움이 단연 압권이며, 겨울철에는 빙벽타기에도 적격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인근에는 아우라지, 자개골, 노추산 등 명소가 많으며 관광객 편의를 위한 진입도로포장과 주차장시설이 완료되어 있고, 화장실 1동도 설치되어 있다.
위치설명

정선읍에서 국도 42호선으로 임계, 강릉방면으로 진행하여 여량면으로 통하는 여량1교앞 아우라지주유소에서 구절방향으로 8번군도로 9.6㎞지점에 위치 (구절리역에서 2.5㎞ 지점)

찾아가는 길
승 용 차 : 여량면 → 오장폭포 (10km, 15분 소요) 시외버스 : 서울 동서울터미널 → 정선 (1일 10회, 4시간 소요) 정선 → 여량면 (1일 13회운행, 30분소요)
여량면 → 구절리 (공영버스 1일 5회운행, 20분소요)
철 도 : 청량리 → 증산역 (1일 6회운행, 4시간5분 소요)
증산역 → 여량역 (1일 4회운행, 57분소요)

증산역 → 구절리역 (1일 2회운행, 65분소요)

 

반론산철쭉나무

반론산철쭉나무 이미지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반론산(半論山)은 해발 1,040미터 지점에 있는 이 철쭉나무는 높이 4.96미터, 밑둘레 1.08미터 수관은 동서쪽으로 6.9미터 로 자생연대가 약 170년으로 추정되며 국내 최대의 철쭉나무로 알려져 있다.
산호동굴 주변은 수억 만년 전부터 형성된 산호 동굴과 북방 계통의 사창 분취류등 12종의 희귀한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천연 기념물 348호, '86.4.17지정) 분포되어 있는 생물 자료를 보면

북방 계통의 분취류(일명 : 정선댕강나무) 우리나라 생물학계 미 기록 종으로 높이 2미터 가량의 턱이 지고 나무질이 육각으로 짧고 빨간색의 꽃이 핀다. 자생지 는 절벽등 험한 곳에서 자생.
벌개풀(일명 : 개불알꽃) 압록강 등에 자생하며 붉은색 계통이 꽃이 피며 고산식물로 높은 야산에 자생한다.
속달이 꽃 : 꽃 뒷면은 잎으로 하얀 색을 띠며 높이 30센치 가량의 단년생으로 고산식물이다. 그밖에 흰큰용담등 8개종이 자생하고 있다.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 정선군 여량면장 김응열 입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면은 지역 고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명이 있음에도 단순히 방위를 표시하는 "북면"으로 불리워지다가 2009년 5월 1일 "여량면"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여량은 남을여(餘), 식량량(糧)으로 오곡이 풍성하여 식량이 남아돌 정도로 여유있고 인심좋은 곳을 일컫는 의미로서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상지인 아우라지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매년 8월초에 조상님들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하여 『아우라지 뗏목축제』를 개최하여 우리고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면소재지인 여량리를 중심으로 6개의 법정리, 14개의 행정리, 66개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간 고지대의 특성을 잘살려 고랭지 채소, 고추, 감자, 옥수수 등이 생산의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여량냉동찰옥수수 가공공장 운영으로 옥수수 재배농가에 대하여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2년부터 아우라지 종합개발사업이 본격 시작됨에 따라 향후 국내 최고의 관광지로 발전될 전망이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2005년 7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레일바이크는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동시에 선사함으로써 관광레저를 즐기는 관광객들에게 각광 받고 있습니다.
우리면은 지금 전 면민이 하나가 되어 농업과 관광산업을 조화롭게 발전시켜《화합하는 아우라지, 풍요로운 우리 여량면》건설을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량면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다양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하여 주시면 행정에 적극 반영토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우리 여량면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 !
사계절 볼거리를 제공하는 노추산, 시원하게 쏟아지는 오장폭포, 청춘남녀의 애틋한 사연이 깃든 아우라지,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자개골 계곡, 아름다운 절경을 배경으로 철로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등이 소재한 여량면을 꼭 한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여량면장 김응열

 

기본현황

여량면
여량면은 구한말 시대에 북면과 여량면이었던 것을, 여량면을 북면에 통합하고 (강희4년)면사무소를 북평에 두었다.
1915년 4월에 리·동을 통합하여 9개리로 확정하고 면사무소를 남평리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에 현 면사무소를 여량리로 이전하였다.
그후 2009년 5월 1일 단순한 방위표시로 지역의 특수성 표현이 부족했던 면명칭을 "북면"에서 "여량면"으로 변경하였다.
여량면 시가지 전경

총 면 적 : 136.42㎢ 인 구 : 2,302명 가 구 수 :1,061호 농 가 수 : 429호 경지면적 : 871.0ha

<여량면 시가지 전경>

 

여랑리

조선조 말에도 면 소재지였다.
산수가 수려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돼 식량이 남아 돈다는 뜻에서 말 그대로 여량이라 했으며 여량리 전체면적은 15.3km²이며 경지면적은 밭 1.92km² 논 0.36km² 임야 11.7km²이다.
여량1리의 자연마을로는 샘물과 보가 풍부해 농사가 풍년을 이루는 하동, 상옥갑사와 하옥갑사가 있는 절골, 마을이 아름답고 농사도 잘돼 복과 양식이 가득한 마을이란 뜻인 녹고만, 반륜산 오르는 길목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절이 있고 소원을 기원하는 제단이 있는 제단곡이 있다.
여량3리의 자연마을로는 옛날에 역마를 방목하던 마산치, 성황당 넘어있는 마을인 당너머가 있다.
여량4리의 자연마을로는 예전에 나루가 있던 곳 상동,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들판이란 뜻의 다래평, 곰이 앉아 있는 형상을 한 곰마을이 있다. 상동도로변에는 선정을 베푼 군수들을 기리는 산정비가 6기가 있다.
여량5리는 동학난때 평안도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정착하여 개척, 지금은 옥토로 변한 가금이란 자연마을이 있다. 송천과 골지천이 합류하여 아우라지를 이루는 곳으로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이며 아우라지 처녀동상과 아우라지 비, 정자가 있다.
이마을은 9가지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라 일명 가구미라고도 부른다. 즉 옥갑사 종소리, 마산봉 산책길, 고양산에 떠도는 구름, 곰바리 문산, 유문재 일출, 달뜬골 달맞이, 송천의 고기잡이, 갈금의 백사장, 삼투벼리의 험한 길을 일컬는다.
문화유적으로는 지석묘가 있다.

 
유천리

면소재지에서 12km 떨어진 마을로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다. 마을 개척 당시 주변에 소나무가 많고 마을 중심부로 강이 흘러 송천이라 칭한 후 버드나무가 많아 유천리라 하였다. 일제시대때는 1,2리로 분리되어 있다가 1973년 7월 1일 3개리로 세분화 되었다.
면적은 37.1km²이며 경지면적은 밭 1.43km² 논 0.34km² 임야 33.9km²이다.
유천1리의 자연마을로는 송림이 울창한데다 마을 중심으로 송천강이 흐르는 송천이 있다. 송천에서 자란 소나무는 재질이 뛰어나 뗏목으로 서울 광나루까지 운송해 경복궁 중수때 사용되기도 했다. 이밖에 1894년 동학난을 진압하던 관군이 주둔할 때 군량미 저장고가 있던 싸리골, 옛날 고을 원님이 궁술시합을 했다는 궁대, 마을 뒷산에 개금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개금벌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1947년 건립된 모자효열지각이 있다.
유천2리는 달이 뜨면 마을 풍경이 아름다운 월부동, 땅 경계란 뜻의 지경동과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햇볕이 잘들어 양지마을이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다.
유천3리의 자연마을로는 동학난때 주둔한 관군이 말에게 먹이를 먹였다는 마평(일명 맛두둑)과 이곳에 살면 부자가 된다는 흥터가 있다.

 
구절리

명주군 왕산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때 정선군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구절이란 명칭은 이곳을 흐르는 하천이 유천리 강과 어우러져 구절양장의 형태로 흐른다는 뜻에서 구절리라 이름 붙였다. 산간벽지였으나 석탄개발과 함께 1974년 정선선이 개통되어 한때는 오장광업소, 명주광업소 등 크고 작은 12개의 광산이 성업, 호황을 누렸으나 석탄산업합리화 조치이후 모두 폐쇄됐다.
면적은 43km³로 여량면중에서 가장 넓으며 경지면적은 밭 0.59km³ 논 0.009km³ 임야 41.4 km³이며 명승지로는 등산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노추산이 있다.
구절1리의 자연마을로는 산중턱에 문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자시가 되면 스스로 열린다는 자개가 있다.
구절2리의 자연마을로는 노추산 입구로 옛날에 정선 ,강릉간 연락물을 교환하던 왕신, 노추산 대성사가 있던 절골, 다락산 아랫마을인 양지마을이 있다.
구절3리의 자연마을로는 노추산에서 내려온 세천이 흐르는 중동이란 자연마을이 있다. 중동은 구절리 중심에서 동쪽에 위치해 붙여진 명칭이다.

 
남곡리

강릉시 왕산면 소속이었으나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선군 북면 관할구역이 되었다. 남쪽에 자리잡아 남곡이라 했으며 1916년 행정구역 개편때 탑동, 대동, 요동, 외송리의 일부를 합하여 남곡리가 되었다. 고원지대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 조건을 갖추었다.
남곡리는 작은 마을로 면적은 8.6km³이며 경지면적은 밭 0.57km³, 논 0.02km³ 임야 7.6km³이다.
자연마을로는 고사리가 유난히 많은 상고사리, 하고사리, 샛골, 간곡, 자궁골과 앞 마을인 앞실골, 큰 북처럼생긴 바위가 있던 북바위, 계곡에 위치해 통행하기가 힘겹고 고되다는 되골, 맑고 깨끗한 대리석이 매장되어 있다는 뜻의 늠바위가 있다.

 
고양리

조선조 말에는 전곡, 20동 2개리였으나 일제시대때 2개리를 합하여 고양리라 하였다. 정선군 중앙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 서면 동해가 보이는 고양산 (1,150m)의 이름을 따서 고양리라 하였다. 고양산에서 흐르는 소계천이 마을 중심으로 흐른다.
고양리의 면적은 20.1km³에 경지면적은 밭 1.42km³ 논 0.057km³ 임야 18.2km³이다.
앞실매라는 맷돌을 생산 전국에 판매한 앞실, 부모가 돌아가신후 시묘생활을 한 골짜기라는 수물골, 고양산 고개밑에 위치한 마을로 골이 깊은 큰골, 양지바른 마을로 농사가 잘되는 고창골,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인 새터와 갈래실, 삼거리 또는 신기로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다. 신기에는 수백년 전에 용이 나와 승천했다는 용소와 용바위가 있다.
마을신앙으로는 고양산 상장바위 장사신을 위한 경읽기(귀신가두기)가 있다. 이 ‘경읽기'로 1987년 강원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하기도 했다.

 
봉정리

1989년 임계면 관할에서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황새가 즐겨 찾는 정자나무가 군락을 이뤄 봉정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옛골이라고도 불렀으며 고려때 관청이 자리잡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조선 고종 32년에 정선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지경리와 여촌을 통합하여 봉저리가 되었다. 동쪽으로는 임계면 반천리, 남쪽은 임계면 고양리, 북쪽은 여량면 고양리, 서쪽은 여량, 남곡리와 접해있고 골지천이 마을 앞을 흘러 여량리로 유입된다.
봉정리의 면적은 12km³이며 경지면적은 밭1.04km³ 논 0.34km³ 임야 9.64km³이다.
자연마을로는 마을과 마을사이에 고개가 있는 새치, 유천리와 임계면 반천리 경계 지점에 위치한 지경 , 산이 마을을 둘러싸 기온이 따뜻해 목화 재배가 잘 된다는 발면, 예전에 옥터 자리로 밤이면 요란스런 소리가 나고 땅속이 쿵쿵 울린다는 속설이 내려오는 내봉정 등이 있다.

아우라지 뗏목축제

아우라지 뗏목이미지

위치 :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양수인 송천과 음수인 골지천이 어우러진다는 뜻의 아우라지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했다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정선아리랑의 애정편의 한 가사로도 유명하다.
남한강 1천리의 뗏목 수로가 시작된 곳으로 이곳에서부터 비로소 강이라고 부른다.
마을쪽에는 키 큰 미루나무와 아카시아가 숲을 형성하고 있고 강변에는 자그마한 숲과 풀밭이펼쳐져 있다.
여량마을로 건너는 나룻배가 있고 합수지점에는 아우라지 처녀상과 최근에 지어진 정자각이 있으며, 급수시설과 공중화장실 등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시외버스 : 서울 동서울터미널 → 정선 (1일 10회, 4시간 소요)
정선 → 여량면 (1일 13회운행, 30분소요) 영월 → 미탄 → 정선 → 여량면
태백 → (싸리재) → 고한, 사북 → 남면 → 정선 → 여량면   태백 → 임계 → 여량면

인물사

향현(鄕賢) 이규복(李圭復)
이규복(李圭復) 선생은 서기 1707년 정선군 여량면 송석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씨 자는 백근(伯謹)이고 호(號)는 송석와(松石窩)이다.
성품이 인자하고 강직하였으며 어릴때부터 성현(聖賢)의 학문에 열중하였다.
그는 일찍이 가세(家勢)가 빈곤하여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는데 다른 사람은 하루에 네 짐씩 나무를 해 왔으나 이규복은 두짐밖에 하지 못하므로 그 늦어진 까닭을 물은즉 〔"생나무는 몇 개를 베어 보아도 진(樹脂)이 나오므로 내 살을 베면 아파서 못 견디는데 초목(草木)인들 오죽 아프겠는가? 그래서 죽은 나무만을 주워오느라 늦었다."〕고 대답 하니 사람들이 그의 사람됨에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인간의 생명이 귀중한 것 처럼 비록 한그루의 나무라도 그 생명의 존중함은 자연의 이치요 신비가 아닐까요?"〕하였다 한다.
그후 이규복은 서당(書堂)에 입학 하였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까지 아는 수재였다. 어느해 한여름 무더운날 서당 선생이 생도를 데리고 시원한 정자(亭子)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게 하였는데 유독 이규복은 뜨거운 햇볕에 나가서 책을 읽고 있어 〔"규복아 너는 어찌하여 시원한 곳에서 책을 읽지않고 뜨거운 햇빛 아래서 책을 읽느냐?〕하며 물으니 〔"지금 내부모님은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농사를 지으시는데 어찌 공부하는 제가 시원한 그늘에서 책을 읽을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워낙 가정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글씨 연습할 종이와 붓 그리고 먹조차 없었으나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가랑잎과 숯검정 물로 글쓰는 연습을 하였다 한다.

송석(松石)은 나이 20세가 되던해 멀리 도암(陶庵) 이충(李충)선생의 문화생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도암선생이 이규복의 사람됨을 알고 사랑하며 성심으로 지도하니 학문이 날로 발전하여 마침내 도학(道學)에 통달 하였다.

규복은 일생동안 학문탐구와 성현을 숭배하고 후세교육에 전념한 유현(儒賢)이며 청빈 중에서도 청송(靑松)의 고결을 고수한 도학자 이거늘 당시의 국가제도는 미천한 자는 출세할 길이 없고 더욱이 벽강궁협(僻彊窮峽)에서는 보옥이 곤강(崑崗)에서 들어날 수 없었던 것이며 선생 또는 미천한 신분을 고수 하기를 삼대판하군역자(三代板下軍役子)요 일우정선교교생신(一隅旌善校生身)이란 문구를 지팡이에 새겨서 그 신분을 표하였다 하니 보통사람으로는 행동하기 어려운 소신이며 도인의 진심이다.
워낙 도덕과 덕행이 높았으므로 멀리 충청도 경상도에서 수학을 받으러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명성이 멀리에까지 전파되어 현재에도 과객이 이규복 선생의 행적을 탐문하는 자가 많다.
그가 남긴 유시에는
만초천화편입망(萬草千花遍入茫)하니 혹홍혹백혹청황(或紅惑白或靑黃)이라 천년물성수능탈(天然物性誰能奪)고 일리추래정묘망(一理推來正杳茫)이라 하였다.
이 시는 선생의 미천함을 멸시하는 동창들에게 게시한 시이다.

이규복 선생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의 효성은 지극했다. 어느해 그의 부친 병환이 위급하여 사방에서 약을 구해다드려도 백약(百藥)이 무효이고 치료 방법은 단 하나뿐 산돼지(豚)의 피가 특효약이라 하여 산돼지를 잡으로 산에 오르던중 때마침 돼지 여러마리가 나타나므로 『"여봐라 우리 부친의 병환이 위중하여 너희들 피를 구하러 왔노라"』하니 그중 한 마리가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스스로 땅에 엎드려 채혈 하기를 원하니 그 피를 얻어다가 아버지의 병환을 완치 하였으며, 또한 그가 도인(道人)이라고 인근에 소문이 퍼지자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불량배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가를 시험하기 위해 그가 마을을 지날 때 길가에 엽전 한 꾸러미를 흘려놓고 길옆에 숨어서 망을 보자 이윽고 선생은 돈이 흩어진 자리에 이르러 깜짝 놀란 듯 주위를 두루 살펴본 후 엽전을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불량배는 옳지 그러면 그렇지 제가 돈앞에서 별수 있으랴? 돈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흩어진 옆전을 말끔히 주워 모아서 길옆 바위 위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 불량배는 감탄(感歎)하여 자신의 못난행동을 뉘우치고 뛰어나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깊이 사죄하고 그후부터 불량배는 착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규복 선생은 한때 생활이 몹시 빈궁하여 경상도 지방으로 조리장사를 다녔다. 어느 민가(民家)에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의 행색으로 보아 하찮은 장사치로 여기고 하인(下人)들 방에서 함께 자도록 하였다.
하인들은 행색이 초라한 장사치면서도 남루한 양반옷을 입었으므로 비꼬는 말로 『"여보게 뭐 이따위 꼴같지 않은 초립동이 양반이 다 있느냐?"』 하니 『"영남(嶺南)에서는 송아지 한필로 양반을 산다 하더니 과연 그말이 틀림없구나."』대답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주인은 크게 뉘우친 바 있어 『"제가 양반을 몰라보고 욕되게 하여 미안합니다. 선생과 같은 청렴한 선비를 우리집에 손님으로 맞게되어 영광입니다."』하며 각별히 접대 하면서 며칠을 쉬다가게 하였다.
이규복은 유년(幼年)시 강에 나가 낚시를 즐겨 하였다. 그러나 고기를 잡아서 놓아주고 또 낚아서 놓아주곤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너는 왜 애쓰고 낚아올린 고기를 도로 놓아 주느냐?"』한 즉 『"고기를 낚는 것은 낚시하는 재미인데 고기를 낚시로 즐겼으니 그만하면 족하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물고기도 산 생명인데 놓아줌이 당연하지 않느냐."』 하며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평소 가난한 살림과 남편의 무능(無能)을 불평하며 지냈다.
하루는 그와 동문수학 하던 사람이 삼척(三陟)부사로 부임하러 가던중 그의 집에 들려 하루밤을 새우며 정담(情談)을 나누었는데 그 부인이 가만히 엿들은 즉 자기 남편이 삼척부사보다 월등한 식견(識見)을 가졌음을 알고 평소 가난한 살림을 불평한 일을 후회하고 남편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후 친구인 삼척부사의 청에 못이겨 잠시 부름을 받아 부사의 책방일을 맡았는데 불과 한달이 못되어 작별하자 부사는 놀라며 못가게 만류하자 이규복은 『"잘 먹지도 못하던 사람이 별미와 술과 고기를 먹으니 위장에 해롭고 또한 고향 사람들이 찾아와 불의(不義)의 청을 하니 심신이 괴로워 더 이상 체류할 수가 없다."』하며 굳이 작별하니 부사는 새삼 감탄하며 후사(厚謝)하고 귀향시켰다.
어느해 이규복은 스승이신 도암선생이 별세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조문을 가려하니 워낙 생활의 여유가 없어 아무것도 준비하여 가지고 갈 수 없는 형편이므로 빈손으로 가기가 민망하여 모밀떡을 한시루해 지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서울에서 잘사는 양반들과 평소 그의 학식을 은근히 시기하던 무리들이 모여 『"고인에게 이런 무례(無禮)가 있을수 있느냐?"』하며 조문도 못하게 하고 쫓아냈다. 이규복 선생은 『"그러면 밖에 있다가 스승의 상여나 망매(望拜)하겠다."』하고 집부근 도로변에서 밤을 새우며 발인(發靷)할때만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상여를 운구하려 하나 상여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상주를 비롯하여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당황하여 서로 의논한 바 이는 분명히 송석 이규복을 괄시하여 문상도 못하게 한 때문이라 깨닫고 그를 찾았더니 그는 담넘어 길가에서 엎드려 밤을 새웠으므로 등에 서리가 덮혀 있었다. 상주와 그를 시기하던 무리들은 이규복을 데리고 들어가 문상케 하고 등에 지고 있던 떡을 펴보니 떡은 새로 한것처럼 김이 무럭무럭 났다.
이규복은 상여앞에 분향재배 하니 숙연하기 이를데 없고 잔을 올리니 술잔이 마르며 수저 소리가 났으며 송석이 문상을 마치자 비로서 상여가 땅에서 떨어져 운구가 가능했다고 한다.

 

전설

귀신 항아리 속에서 쏟아져 나온 금싸라기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에 전순갑(全順甲)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경작하고 있는 농경지 가운데 언제부터 쌓여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아주 오래된 돌담이 밭 가운데 가로 뻗어져 있어서 농사를 짓는데 상당한 불편을 느끼고 있어 틈만 나면 밭에 나가서 거치장 스럽고 불편한 돌담을 헐어버리고 경지를 정리하기 위하여 조금씩 밭을 일구어 나갔다.
그는 1933년 11월 아침을 일찍 먹고 전과 다름없이 돌담을 파내던 중 호미 끝에 무엇인지 걸려 잘 파이지를 않아 온 힘을 다해서 파보았더니 항아리가 하나 나왔다.
이를 이상히 생각하고 혹시나 이것을 귀신항아리는 아닐까 하고 겁이나 항아리를 헐어 버리던 돌담 한쪽 구석진 곳에 놓아두고 담 허는 일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이웃에 사는 노총각이 나무를 하러가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여보게, 여보게, 이리좀 와보게 나는 오늘 이 돌담을 헐다 호미 끝에 무엇이 걸리는 것이 있어 온 힘을 다하여 잡아당기니 땅 속에서 귀신단지 같이 생긴 항아리를 하나 캤는데 도대체 이것이 어떤 것인지 자네가 한번 보겠는가?" 하고 노총각에게 이야기 했더니 이 말을 듣고 총각은 혹시나 귀신이 옮을까 겁이나서 조심조심하며 가지고 있던 지게 막대로 항아리를 힘껏 내려쳤다.
그러자 이게 왠일인가? 지게막대로 얻어맞고 깨어진 항아리 속에서는 광채가 빛나는 황금싸레기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전씨와 총각은 깜짝 놀란후 쏟아진 금사라기를 주어 담을 수 있는데로 모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일인들의 폭정시라 후에 소문이 나면 후환이 두려워 조선총독부 여량지소에 신고하였더니 신고된 금항아리는 총독부 본부까지 올라갔다.
6개월이 지난 후에 전씨에게 되돌아 왔는데 전씨에게 회수된 금싸라기는 당시 신고했을 때의 량보다 4분의 1정도 밖에 되돌아 오지 않았는데 전씨는 이것을 팔아서 문전옥답을 장만하였다 한다.
또한 전씨의 아들 전봉대도 10여년전 금싸라기가 출토된 장소에서 매장문화재 무쇠솥 외 4점을 발견하여 신고하므로서 당시 10만원 상당의 보상금을 받은 일도 있다.

 

기관명 소재지 전화번호 비고
여량농협 여량277 563-4030  
여량신협 여량115-6 562-4012  
여량우체국 여량99-9 562-4002  
구절우체국 구절리244-1 562-5002  
여량면파출소 여량124 562-4112~3  
정선119안전센터여량면지역대 여량1-269 562-4119  
향토예비군 여량면대 여량323 563-8113  

 

구분 기관명 소재지 전화번호 비고
건설업체 두원건설(주) 여량리 272-2 562-4226 전문
건설업체 (합)백두건설 여량리 141-11 562-7609 전문
건설업체 대진건설(주) 여량리 392-2 562-5515 전문
건설업체 성원건설(주) 여량리 116 562-2208 전문
건설업체 (주)용건설 여량리 521 563-4157 전문
건설업체 (주)용호건설 여량리 107 563-2894 전문
건설업체 (주)도해 여량리 269-16 562-1708 전문
건설업체 (주)대복 유천리 224-2 563-3700 일반
건설업체 도영종합건설(주) 여량리 269-29 011-9351-5532 일반
기업체 여량찰옥수수가공공장 여량1리 562-8948  
기업체 명진광업(주) 봉정리 563-2068  
기업체 (주)정선소수력 봉정리 562-1357  
기업체 정선대리석 유천2리 562-4600  

 

구분 기관명 소재지 전화번호 비고
약 국 백세약국 여량141-33 562-1390  
보건지소 여량면보건지소 여량3리 562-1816  
보건진료소 구절보건진료소 구절1리 562-514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