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가을에 떠난 사람은 말이 없어요 -
느림보 거북이/글
나무의 생명은 땅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 죽이며
지난 겨울울 살아 왔습니다
내 가슴에도
사랑이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봄 날에 기지게를 피듯
숨어살던 나무가 곱고 고운
연두색 잎을 튀울 때
제 인연도 연두색 빛이 충만해
사랑 꽃이 활짝 돋았습니다.
꽃이 만발한 만큼
내 사랑도 거침없이 만발해
세상에 그 사람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보였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여름 빛에 쉬어갈 그늘을 주고
나와 그 사람도
서로 믿고 사랑하여....
마음으로 가슴이 쉬어 갈
그늘이 되어주었습니다
비 바람이 불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무가지와 나뭇잎은 온 몸으로
아픔을 겪어야 했었고...
그리고 사랑이라는
견고한 뿌리를 두었기에
그 고통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나
사랑의 깊이도 심장깊은 곳에
내려진 뿌리와 같았으며
어떤 태풍에도
견뎌낼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은 왔습니다.
봄부터 밑화장을 하던 나뭇잎은
그 여름에 속 눈썹을 붙이고
이가을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후
화려한 외출을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어내며 나뭇잎은
온 몸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구름이 파랗게
애드벌륜을 띄워주고
국화 꽃 향기가 에스코트하며
나뭇닢은 호사를 누렸습니다.
내가 꿈꾸던 사랑도 그랬었고
그 사람과 나의 사랑도
그렇게 화려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뭇잎도 나도 모르게
비극은 자라고 있었습니다
찬서리 내리던 날...
뿌리는 나무잎을
제 몸에서 밀어내고
그 사람도 뜬금없이
이 가을 나를 밀어 냈습니다.
한 몸같이 사랑하던
그 사람 내게서 멀어졌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그 충격을 헤어나지 못해
한 없이 울었습니다.
애걸하고 애원하고 혼신을 다 해
그 사람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한번 떨어진
나뭇잎이 다시 붙지 않 듯이
그 사람도 그렇게 냉정했습니다
그 사람은 끝내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떨어진 나무잎은 휘돌아
바람에 맡겨졌습니다.
떨어진 난 그리움에 맡겨진 채
외로움에 맡겨진 채
눈물에 휘둘려 울었습니다
초라하고 가슴 찢어지는
멍든 상처 움켜 안고
이 거리 저 거리를 맴돕니다
그 사람 잊지 못해
병든 마음 감당할 수 없어
떨어진 낙엽되어
혼이 나간 채 그 사람
만났던 그 거리를 배회합니다
영혼은 이미 물기 없는
매마른 나뭇잎 되어 죽은 듯...
기억의 길로 내몰려 걷습니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어도
남은 나는 초췌한 발 걸음 내 딛으며
그 사람 그림자를
부둥켜 안으려 합니다
마지막 잎새
생명 연명하려 매달려 있듯
엉켜버리 사랑의 실타래
매듭 끝을 놓을 수 없어
슬프고 외로운 이 가을 거리를
눈물로 걷습니다.
- 거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