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잡는 날
지금도 생각하여보면 아련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1957년도 학교공부를 마치고서도 신나게 달려 들을 지나 시냇물을 건너서 적음말 동네를 지나서면 고향마로 올라가는 산골짝에 들어선다.
걸어서 한 시간이 거의 다 되는 고갯마루 산골짝을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오르고 내려야 하였다. 숨이 차도록 달리고 달려 고갯마루를 향하여 달리다보면 지쳐 잠시 쉬었다가 달리곤 하였다. 어깨에 둘러맨 책보가 흔들흔들 거렸다.
가픈 숨을 몰아쉬면서 복수개재를 올라서면 산 밑에 동네에서는 한가위 차례 상을 마련하려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다. 조용하기만 한 고향 동네에 돼지가 찢어지도록 소리를 지른다. 동네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는 것이다.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에서 먹이던 돼지를 한 마리 잡아서 한 가위 명절에 온 동네가 고루고루 나눠 분배를 하여 나눠 갖는다 물론 돼지고가 값은 적절한 가격으로 지불한다. 고기를 나눠서는 돼지 머리와 뼈를 가마솥에 삶는다.
이때에 구수한 돼지 삶는 국물이 끓어오르면서 뱃속을 회동케 한다. 이렇게 끓인 돼지머리와 뼈 국물을 다시금 한가바가지씩 국물은 논아준다. 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보리밥을 말아먹으면 얼마나 천하 일미인지 몰랐다.
일 년내내 추석한가위 명절과 새해 정월초하루 설날이나 돌아와야 이러한 잔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는 그 사이에 환갑잔치, 장가가는 날, 시집가는 날이 돌아오면 부잣집이라야 돼지를 길러 한 마리씩 잡고는 하였다.
평소에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다가 돼지머리와 뼈 삶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서는 이내 배탁이 나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여야 하였다. 그래도 그리도 돼지머리 삶은 물과 뼈 삶은 국물이 그리도 맛있는 천하일미였다.
그리도 가난하고 어려웠던 1950년이었다. 1950년 민족상전의 6,25사변을 통하여 대한민국은 그저 만신창이가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데다가 너무도 어려웠다. 그렇게도 어려운 시대였지만 추수를 하면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세를 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30여 가구가 넘는 온 동네 집집마다 명절을 맞이하였다. 라디오도 없고 전화도 없으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으며 볼거리 먹을거리가 그리도 소중하였던 시대였다. 그래도 남을 것을 빼앗는 일은 없었다.
사기꾼과 강도와 도둑놈이라는 말이 그 얼마나 치욕적인 말인지 몰랐다. 동네에 그러한 이름은 들어볼 수조차 없는 양심과 인정이 청정지역이었다. 잔치가 돌아오는 집에 달걀 10개 한 꾸러미를 선물한다면 그때엔 최고의 선물이었다.
보리쌀도 한두 되를 갖다드리고 있는 집에는 쌀을 한두 되를 갖다드리곤 하였다. 그저 돈이 너무도 귀하여 그저 바꿔 먹고 서로 적절한 필요에 따라서 바꾸는 물물교환도 많이 이루어졌다. 지금에 젊은이들이 과연 생각조찰 하여볼까?
이러한 옛 이야기들을 듣고서는 치하면서 이솝이야기로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요. 확실히 현존하였던 대한민국이다. 자가용에다 벽걸이 대형 TV, 냉장고, 에어컨, 핸드폰 이러한 세상은 꿈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가난하고 힘들었던 대한민국은 북한과 중국, 소련에서는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에 이웃이 아닌 채로 서로가 대립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대신 미국에서는 대한민국을 일본에서 구해주고 이북과 중국소련에서 구해주었다.
1950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공부를 끝마치고서는 옥수수가루, 밀가루, 분유. 건빵 이러한 것들을 미국에서 제공하여준 이를 받아다가 식량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처럼 음식물 찌꺼기라는 것은 전혀 나오질 않았다.
그러한 설움과 고통과 가난에서도 명절이 돌아오면 서로가 떡과 전을 만들어 집집마다 서로가 자신에 집에서 만든 음식을 한집도 빠지지 않고서 나눠 먹곤 하였다. 대한민국은 이처럼 어렵고 힘든 시대를 딛고 오늘에 이르렀다.
크지도 않은 조그마한 한 마리를 잡아서 온 동네 사람들 집집마다 나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보호하여주며 감싸주며 염려하여주었다. 한 가정에서 불이나면 아무리 바빠도 쏜살같이 달려와 불을 껐다.
이웃집 불행을 나에 불행처럼 아파하여 보듬어주었으며 이웃집에 경사를 우리 집에 경사처럼 여기면서 즐거워하며 축하하여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한 고향 한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여 이웃집아저씨 아주머니가 먼 사촌보다좋았다.
2019년 9월 9일 09시 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