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길 떠나면 집들은 부호로 남는다
내 일찍 선도(仙道)를 버리고 지상의 길 걸었으니
내 발은 웃자란 갈대와 부토의 먼지가 편안하지만
마음이 불타 올라 등뒤의 천년이 인화지처럼 환하다
어떤 5세기가 이 산에 머물렀을까
나대(羅代) 사람들은 어떤 말로 사랑을 전했을까
햇볕에 들켜버린 내 속마음을
동풍이 비웃으며 지나간다
발은 구름을 향하지만
운문이 내 발을 받아주지 않아 나는 구름 바깥에 머문다
이 순금의 햇빛 아래서는 발에 밟힌 풀꽃 이름을 잊기로 한다
핏줄 없이도 능히 천년을 견디는 돌들은
그렇다, 영원의 모습은 피의 빛깔이 아니다
뿌리들이 불끈불끈 힘줄 때마다
나무의 키가 하늘로 솟는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말을 풀어놓아
바람이 일 때마다 노래를 잉태하는가
올려다보는 산은 숭엄하지만
내려다보는 산은 아우 같다
이제 다 왔느냐 물으면
길 없는 길가 비옷나무가 손 흔들어 대답한다
아직도 오름길만 고집하는 내 신발을
나는 꾸짖을 수가 없다
- 이기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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