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난한 날의 행복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9.12.11|조회수28 목록 댓글 0

      가난한 날의 행복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세수를 하고 들어와 아침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시인의 아내가 쟁반에다 삶은 고구마 몇 개를 담아 들고 들어왔다. “햇고구마가 하도 맛있다고 아랫집에서 그러기에 우리도 좀 사왔어요. 맛이나 보셔요.” 남편은 본래 고구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가 식전(食前)에 그런 것을 먹는 게 부담(負擔)스럽게 느껴졌지만, 아내를 대접(待接)하는 뜻에서 그 중 가장 작은 놈을 하나 골라 먹었다. 그리고 쟁반 위에 함께 놓인 홍차(紅茶)를 들었다. “하나면 정이 안 간대요. 한 개만 더 드세요.” 아내는 웃으면서 또 이렇게 권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또 한 개를 집었다. 어느 새 밖에 나갈 시간이 가까워졌다. 남편은 “인제 나가봐야겠소, 밥상을 들여요.” 하고 재촉했다. “지금 잡숫고 있잖아요. 이 고구마가 오늘 우리 아침밥이어요.” “뭐요?” 남편은 비로소 집에 쌀이 떨어진 줄을 알고, 무안(無顔)하고 미안(未安)한 생각이 얼굴이 화끈했다. “쌀이 없으면 없다고 왜 미리 말을 좀 못하는 거요? 사내 봉변(逢變)을 시켜도 유분수(有分數)지.” 뿌루퉁해서 한 마디 쏘아붙이자, 아내가 대답했다. “저의 작은 아버님이 장관(長官)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가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人生)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잖아요.” 잔잔한 미소(微笑)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아내 앞에, 남편은 묵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엔 형언(形言) 못할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부(富)와 일치(一致)하진 않는다.”는 말은 결코 진부(陳腐)한 일 편(一片)의 경구(警句)만은 아니다. - 어느 시인(詩人)내외의 젊은 시절(時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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