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합리적 가치체계 드러낼 시점
독자적 문화 보편적 정신가치 전승
한국불교는 불교역사상 중국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중국불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음과 동시에 독자적 불교이해로써 중국불교에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기존의 전통적인 중국문화와 달리 인간의 정신성과 보편적 윤리성을 강조해 새로운 정신문화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문화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환영을 받으며 주변지역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불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자웅(雌雄)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불교에 대한 삼국의 태도는 복을 구하는 일종의 신앙적이며 기복적인 면이 엿보인다. 물론 왕실에서도 불교를 중국문화의 일부분으로 간주해 중국과 정치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도의 정신체계를 갖는 불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불교학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고 사회적인 이념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예를 신라의 사회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신라는 통일을 전후하여 많은 스님들이 출현해 불교적 이념에 의한 사회체제를 구축한다. 당시 화랑으로 대표되는 문화체계에 정신적 이념을 제공한 것으로 원광(圓光)스님에 의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들 수 있다. 이 가르침은 불교에 의거하면서도 실생활의 사회윤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 불교의 가르침을 사회적 윤리로 승화시키는 한편 교학적 연구 또한 중요한 발전을 이룬다. 당시 불교의 교학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었지만 독자적으로 불교학의 체계를 쌓은 사람이 있는 데 그가 바로 원효(元曉)스님이다.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유학에 뜻을 두었지만, 중국으로 가는 도중 진리를 깨닫고 신라로 돌아와 독자적인 불교학의 체계를 수립한다. 곧 중국에서 보이는 다수의 종파에 의거한 불교사상을 하나의 체계로 화쟁(和諍) 내지 회통(會通)을 시도한 것이다.
원효는 모든 종파가 불교의 다양한 입장을 대변한다는 통불교적(通佛敎的) 입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불교의 근본진리를 〈대승기신론〉에 나타나는 일심(一心), 여래장(如來藏), 진여(眞如) 등 대승불교의 핵심개념에 근거해 철학적 체계를 세웠다. 원효에 의해 세워진 불교철학과 불교적 삶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의 정신을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불교는 원효로 대표되는 교학적 체계와 신라시대 말에 들어와 형성된 선(禪)의 체계가 그 축을 이룬다. 불교가 국교이었던 고려시대는 교와 선의 체계가 다양한 종파로 전개되어 불교문화를 꽃 피웠다. 그러나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는 불교가 선종과 교종의 둘로 줄어들고, 임진난 이후에는 두 체계가 뒤섞인 형태로 선종의 단일한 체계가 중심을 형성한다. 겉으로는 선종의 모습을 갖추지만 안으로는 다양한 불교적 체계가 함께 하는 독특한 모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불교는 역동적인 역사를 보여준다. 신라.고려의 숭불과 조선의 숭유억불, 일제시대의 질곡, 그리고 현대 서구종교 중심의 사회문화, 이러한 역사 속에서 불교는 독자적인 전통문화와 보편적인 정신가치를 전승해 왔다. 오늘날 불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시대에 가치체계를 드러내어 한국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새로운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역동적으로 세계의 첨단과학을 리드하는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가치체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야 할 시점이다.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