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기제사 법문 마지막
안동시 성곡동에 가면 조선시대
참봉을한 권두하의 효자비가
있습니다 원래 옥정동에 있었는
데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옮겼다
하는군요
권두하의 본관은 안동으로 경북
안동시 율세동에서 태어 났으며
관직은 참봉 친왕부 찬위를 역임
했습니다 효자 권두하는 어린시
절 조부께 천자문을 배우던 중 효
자의 대의를 묻고 그 큰뜻을 일찍
이 깨달아 항시 조부모 부모 모시
기에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습니
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아
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나 힘든일
이거나 낮과 밤을 가리지않고 몸
과 마음을 바쳐 원하는것을 구하
여 봉양하기를 기꺼이 하였습니
다
아버지가 병상에 눕게되자 옷을
입은채로 곁에서 신명을 바쳐 간
호 하기를 수개월 하였으나 지성
의 보람도없이 아버지의 병환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그는 백약
이 무효하므로 사람의 힘으로 구
료하기 어려움을 알고 뜰에 단을
쌓아 하늘에 아버지 왠쾌를 소원
하였습니다
살을 에이는듯한 추운겨울 어느
날밤 효자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
자초를 찾으라는 가르침을 받고
약초를 찾으러 갔는데 이상하게
도 이제껏 보이지 않던 약초인 자
초가 뒤뜰 우물 곁 눈속에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는 하늘이
베푼 은혜에 감사드린 후 정성껏
다려 드렸드니 아버지의 병이 씻
은듯이 완쾌 되었습니다
이는 하늘도 그의 효성에 감동하
여 선약을 내려 보내 주심이라고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
지요 조정에서는 그 효행을 높이
받들어 상을 내리고 효자비을 세
워 후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였습니다
부모 은중경에서는 나를 낳으실
때 3말3되의 피를 쏟으시고 나를
기르실 때8섬4말의 젖을 먹이셨
으니 그 은혜를 다갚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등에엎고 수미산을 팔
만 사천번 오르 내려도 그 은혜를
다 갚을수 없다 했습니다
또 백년동안 좌우 어깨에 어버이
를 업고 어깨 위에서 대소변 을 보게 하고 진귀한 의복으로 공양
한다 해도 그 은혜에 보답했다고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부모에 대한 은혜는 현세
에서 다 갚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
세에 걸쳐 거듭거듭 갚아야 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분들을 인도하
여 해탈의 길에 이르게 하는것이
그 은혜를 궁극적으로 다 갚는 것
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나의 부모를 넘어 모
든 부모와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
는 것으로까지 확장 되는것입니
다
효어친 이면 자역효지니 신기불
효면 자하효언 이리오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면 내 자식
도 역시 나에게 효도 할것이니 내
자신이 이미 효도를 하지 않았다
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를
하겠는가
세상에 모든착한 업은 효도에서
시작되나니 부모 은혜를 아는것
은 세상을 다 아는것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처님을 공경하
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니라
나ㅡ무ㅡ아ㅡ미ㅡ타ㅡ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면
이공덕을 여러분에게 회향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