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공부, 수행이라는 것이
날마다 복습하는 반복의 작업입니다.
마음공부하는 데는
예습이라는 말이 없어요.
하나 하나 그 순간 닦아 나가는 것이고,
또한 끊임없이 복습에 복습을 거치는 것입니 다.
그러니 마음공부하는데
'그것쯤이야 다 아는 것인데' 하는
용이심(容易心)을 내어서는 안됩니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하고
내 안에서 체득되는 것 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안다고 다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용이심을 내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이전에 마음에 가지고 있던 지견들을 다 놓아버리고
전혀 새로운 법문을 처음 듣는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똑같은 법문 속에서도
더 큰 깨우침이 있게 되고,
날마다 온몸으로 체득 되는 바가 있게 됩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인데' 하는 생각은
내 안의 새로운 깨우침을 방해하고
틀에 박힌 고정된 이해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알음알이를 비우고 나면
오늘 공부한 연기법과 내일 공부한 연기법은
전혀 새롭고 한결 가슴 속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나한테는 너무 어려워'
'내가 어떻게 그렇게 수행할 수 있겠어'
하는 퇴굴심(退屈心)을 낼 것도 없습니다.
어렵다는 마음,
나는 못하겠다는 마음도
다 내 분별심일 뿐이지
우리 본래 자리에서는 잘하고 못하고도 없습니다.
수행하는 것도, 깨닫는 것도
내가 하겠다는 아상으로 지어가지 말고,
'부처님의 일'이라고 딱 돌이켜 놓아 버리면
못 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는 것이라도
탁 저질러 보고 자꾸 실천해 보고
자꾸만 귀 기울 여 법문을 듣다 보면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성불인연이 지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공부하는 수행자는
모름지기 퇴굴심과 용이심의 양 극단을 다 놓아버림으로써
현애상(縣崖想)과 관문상(慣聞想)에
걸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눌스님의 [계초심학인문]에 서는
"스승께서 자리에 올라 법을 설하게 되면
법에 있어 아득히 여기는 생각(懸崖想)을 지음으로써
물러서고자 하는 마음(退屈心) 을 생기게 한다거나
혹은 매번 들은 것이라 여기는 생각(慣聞想)을 지음으로써
쉽게 여기는 마음 (容易心)이 생기게 하는 일은
결단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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