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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가득한 방

[스크랩] [법정스님] 빈 그릇으로 명상하다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9.11.29|조회수28 목록 댓글 0
    
    
      '빈 그릇으로 명상하다 ' / 법정스님 뜰에 찬 그늘이 내릴 무렵, 책꽂이에서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들었다. 가을날 오후 두런두런 시를 읽고 있으면 산방이 한결 그윽해진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이 향로봉 아래 새로 초당을 지어 낙성한 날 우연히 동쪽 벽에 적다라고 이름 붙인 시다.
        해는 높이 떠 잠도 충분한데 일어나기 귀찮고 작은 오두막이지만 이불 겹쳐 덮으니 추위 걱정 없다 유애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베개 괴어 듣고 향로봉에 내린 눈 주렴 걷고 바라본다 이 여산은 속세의 명리 피해 살만한 곳 사마 벼슬 노후를 보내기에 족하다 마음과 몸 편안하면 돌아가 의지할 곳이니 고향이 어찌 장안뿐이겠는가. <김원중 역>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나 비파행(琵琶行)등 초기 현실비판과 풍자등 사회성을 띈 시와는 달리, 말년에 이르면 자연에 귀의하여 한적한 삶을 노래한 시가 많다. 사마 벼슬의 사마(司馬)란 좌천된 지방관으로 실질적인 업무는 없는 한직이라 그 고장 자연을 한가히 누릴 수 있었다. 같은 제목(重題)으로 남긴 시가 또 있다. 삼간 초당을 새로 지었으니 돌층계 계수나무 기둥에 대로 엮은 울타리 남쪽 처마는 햇빛 받아 겨울에도 따뜻하고 북쪽 문은 바람을 맞이해 여름에도 시원하다 샘물은 섬돌에 떨어져 물방울 튀기고 창에는 대나무 그림자 어지러이 흔들린다 내년 봄 되면 동쪽채 지붕 마저 이어 도배하고 발 드리워 아내를 있게 하리. 옛사람들은 이와 같이 자신의 분수를 알아 조그만 오두막일지라도 그 안에서 즐겁게 살 줄 알았다. 요즘의 수 십억 짜리 저택에서 사는 사람들로서는 감히 넘어다 볼 수 없는 맑고 향기로운 삶의 운치를 누리면서 살았다. 그저 많고 큰 것만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은 그들이 차지한 것만큼 행복하지도 않고 또한 누릴 줄도 모른다. 아직도 곳곳에 최고와 최대의 허세에 가치를 두는 촌스런 생각들이 있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최고이며 최대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 조형물이 있을 자리에 있을 때, 둘레의 사물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거기에 새로운 숨결이 이어진다. 공간의 비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창조가 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지난 8월호에 실린 "해인사 싸리비"라는 시가 그 최고와 최대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손인호의 시 가야산 해인사에서 본 싸리비 가을이 오면 이 싸리비가 낙엽들을 솨악 솨악 모으겠지 내 마음에도 커다란 싸리비 하나 만들어 잡다한 생각 나부랭이들 허튼 욕심, 바보 같은 버릇 솨악 솨악 쓸어버리고 싶다 나는 해인사에 세우겠다는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보다 한 구석에 쌓아놓은 싸리비에게나 절을 올리련다 불상이 크면 뭐 하나 차라리 큰 싸리비 하나 만들어 세상의 때를 솨악 솨악 비질이나 하지 그게 부처님 마음이 아닐까?
      "해인사 싸리비"를 쓴 이 시인은 진정한 귀의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두고 두고 읽힐 좋은 시다. 물은 가을 물이 맑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맑다. 개울가에 물을 길러 나갔다가 맑게 흐르는 물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이 개울물에서 세월을 읽는다. 가을 물이 맑다고 했는데 사람은 어느 때 가장 맑을까?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을에 귀가 밝다. 이 말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 가을 바람에 감성의 줄이 팽팽해져서 창밖에 곤충이 기어가는 소리까지도 다 잡힌다. 다람쥐가 겨우살이 준비를 하느라고 상수리나무에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온통 오관이 귀가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사람은 맑아진다. 너와 나의 간격이 사라져 하나가 될 때 사람은 투명해진다. 이 가을 들어 나는 빈 그릇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서쪽 창문 아래 조그만 항아리와 과반을 두고 벽에 기대어 이 만치서 바라본다. 항아리는 언젠가 보원요 지헌님한테서 얻어 온 것인데,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낸 그릇이라 그 연한 갈색이 아주 천연스럽다. 창호에 비껴 드는 햇살에 따라 빛의 변화가 있어 살아 숨쉬는 것 같다. 며칠 전에 항아리에 들꽃을 꽂아 보았더니 항아리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백자로 된 과반은 팔모 받침에 네모판으로 된 것인데 가로 한자 두치, 세로 한자의 크기. 과반치고는 크다. 이 역시 빈 채로가 더 듬직하고 아름답다. 텅 빈 항아리와 아무 것도 올려 있지 않는 빈 과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텅 비게 된다. 무념무상. 무엇인가를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 -산방한담(山房閑談)- 다음카페 : 『 가장행복한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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