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일상에서 멈추는 명상 '
/ 법상 스님
애써 한 시간, 두 시간 이상을
억지로 시간을 내서,
바쁜 가운데 짬을 내서,
절이나 선방에 찾아 가서
가부좌 트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주 잠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참선을, 명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니 이것을 참선이나 명상이라고
애써 이름짓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그저 텅 빈 순수 그 자체이고,
깨어남이며,
모든 선각자들의 방법이었으며,
붓다의 방식입니다.
잠깐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그때가 바로 휴가가 되고,
잠깐 숲으로 난 길을 걸을 때
그 순간이 곧 여행이 되고,
잠깐 생각을 멈추고 호흡을 지켜보는 순간
그때가 바로 명상이 되며,
잠깐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순간
그때가 바로 깨어남이 되고,
잠깐 내 앞의, 옆의 동료며 가족들을
편견없이 마음을 비우고 낯설고 새롭게 바라볼 때
그때가 바로 사랑이 되고,
이렇게 잠깐 잠깐 일상에서 멈추고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 이 자리가 완전한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명상은 거창한 무엇이 아닙니다.
수행은 근기가 높은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너무 멀리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구도의 길을 간다는 것에
너무 거창한 환상을 덧칠하지 마십시오.
본래 수행, 명상이라는 것이
그렇듯 피나게 노력하고 애쓴 끝에
소수의 사람만이 경쟁에서 승리해 쟁취해 내는
그런 논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그간의 편견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고서는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되고 말 뿐입니다.
그 편견을 놓으십시오.
백일 기도, 천일 정진, 동안거, 선방, 철야정진...
이 모든 거대한 편견들이 수행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그 또한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어려운 길만이 가장 옳은 길이거나,
유일한 길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매 순간 순간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자주 자주 멈춤과 바라봄의 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도 쉽습니다.
아주 쉽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질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여기’라는 곳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야말로
완전하고도 충만하고 꽉 찬
더 이상 얻어야 할 또 다른 힘을 필요치 않는
무한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본래 있던
힘과 지혜와 사랑을
없다고 착각하고 살다가
아주 작은 ‘멈춤’과 ‘봄’을 통해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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