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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정토//(정토학)

[스크랩] 지운스님의『解深密經』- Ⅰ. 서품(序品) - 1. 예토(穢土)와 정토(淨土)의 설법 (3)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4.02.13|조회수4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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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서품(序品)
    1. 예토(穢土)와 정토(淨土)의 설법 (3)
      如是我聞. 一時 薄伽梵. 住最勝光曜七寶莊嚴. 放大光明普照一切無邊世界. 無量方所妙飾間列. 周圓無際其量難測. 超過三界所行之處. 勝出世間善根所起. 最極自在淨識為相. 如來所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께서 매우 빛나는 칠보로 아름답게 장엄된 곳에 머무시면서 큰 광명을 놓아 널리 모든 끝없는 세계 비추시니, 무량한 곳에 묘한 장식이 사이에 끝이 없이 벌려 있고 두루 하고 원만함이 끝이 없어 그 분량을 측량하기 어렵다. 삼계(三界)의 행하는 곳을 뛰어넘었으니 뛰어난 출세간의 선근이 일으킨 것이다. 더 할 나위 없는 자재(自在)와 정식(淨識)으로 상(相)을 삼으시니 여래께서 머무신 곳이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부처님을 친견하려면 초지의 경지, 진여의 자리에 머물러야 만이 부처님 친견이 가능하고 부처님 사시는 정토에 가서 부처님에게 법을 청해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지에 가지 못한 범부는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부처님[化身佛]을 볼 뿐이죠. 부처님께서 사시는 곳이 정토인데, 정토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하는 거예요. 정토도 흙 있고 나무 있고 바람도 있고 다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하고는 다르다는 겁니다. 「대승기신론」에 보면 물질의 본질은 지혜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정토는 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 거예요. 지혜에는 진여(眞如)를 깨친 지혜, 무분별지(無分別智)와 중생 구제하는 지혜, 후득지(後得智)가 있는데 이 두 가지 지혜에 의해서 깨끗한 세계[淨土]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지혜는 무엇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고 창조하는 능력을 얘기합니다. 『유마경』에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心淨國土淨]’ 이런 얘기 들어 보셨죠. 부처님께서 정토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제자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러운 세계인데 여기를 왜 정토라 그럽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땅을 콕 찍으니까 더러운 세계가 깨끗한 세계로 싹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 하신 겁니다. 이때 마음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 마음을 알아야 정토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겁니다. 『화엄경』‘범행품(梵行品)’에 보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마음을 낼 때 바로 정각을 이룬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다음 구절에 보면 삼라만상 우주 모든 존재가 마음의 자체성품인줄 알면 지혜의 몸을 이룰지니 다른 일을 말미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유심(唯心), 모든 것은 마음뿐이라는 거죠. 우리가 보는 이 세계도 전부다 마음의 세계입니다. 책상, 찻잔, 시계, 앞에 보이는 불상도 다 마음이에요. 그러면 마음하고 지혜는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마음의 특성을 아는 게 중요해요. ‘아비달마’에서 ‘앎’, 아는 것이 마음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효스님은 「대승기신론」에서 신해(神解), 신령스럽게 아는 것이 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아는 것이 특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는 것도 마음이 있어서 하는 것이고, 경전을 읽는 것도 마음이 있어야 읽고, 이해도 마음이 있어야 이해를 하고, 수행도 마음이 있어야 수행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도 마음이 없으면 믿음에 대한 얘기를 못하는 겁니다. 마음은 근원이에요.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도 그노시스(gnosis)라는 명상 학파가 있습니다. 어떤 책을 보다보니 주석에 그 내용이 나와 있는데, ‘그노시스학파의 창세기는 어떻게 됐는가, 태초에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은 신과 같다.’, 그 다음은 똑같아요. 거기도 첫머리에 마음이 등장해요. 이게 명상학파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불교에서 얘기하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었다 하는 것하고 맞물려 있죠. 그래서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마음 자체의 성품이라고 『화엄경』에서 얘기를 합니다. 이때의 마음이라는 것은 아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게 아주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질문을 받은 게 있는데 「대승기신론」강의에서도 한번 한 얘기에요. 학인스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스님 연기법이 뭡니까?” “연기법은 스님이 저한테 전화하고 제가 전화 받는 게 연기입니다.” 연기는 상호 관계성, 전화하고 받기 때문에 소통이 일어나는 거죠. 두 번째 질문내용은 “연기가 마음이라 그러는데 연기법이 어떻게 마음입니까?” “스님이 나를 알고 내가 스님을 알기 때문에 연기가 바로 마음입니다.” 서로 상호 소통이 앎에 의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너와 나라는 관계는 앎에 의해서 맺어져 있고, 이 앎이 바로 마음이에요. 그리고 앎에 의해서 연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연기가 마음인 거예요. 우리가 흔히 책상은 마음이 없고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책상과 나의 관계가 마음이에요. 마음은 네트워크고 타에 의해서 일어나는 성품, 의타기성(依他起性)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어떤 실체화 한다든지 자아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앎’에도 지식으로 아는 게 있고 지혜로 아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모양과 색깔을 보고 판단하는 앎입니다. 각(覺), 깨달음도 마음이고 앎이에요. 그래서 바른 깨달음을 정변지(正遍知)라는 말을 쓰는데 이게 정각(正覺)입니다. 이 삼라만상 우주는 앎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요. 모든 물질의 본질이 지혜라고 「대승기신론」에서 얘기 하듯이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 우주를 지혜로서 만든 겁니다. 그게 창조능력이에요. 그리고 초지이상의 보살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정토를 만드셨죠. 정토를 만드신 이유가 그겁니다. 우리는 보지를 못하지만, 우리도 영적으로 성장해서 마음이 밝아지면 부처님 세계도 보고 부처님도 보고, 친견이 가능한 거죠. 여기 얘기하는 내용들이 그런 겁니다. 무량한 곳에 묘한 장식이 사이에 끝이 없이 벌려 있고 두루 하고 원만함이 끝이 없어 그 분량을 측량하기 어렵다. 이 세계가 전부 다 정토의 세계입니다. 삼계(三界)의 행하는 곳을 뛰어넘었으니 뛰어난 출세간의 선근이 일으킨 것이다.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서 의식의 영역입니다. 욕계는 오욕락의 세계, 욕심의 세계인 여섯 갈래[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인]가 있고 여기에는 6개의 천상이 있습니다. 색계는 물질이 청정한 세계, 18개의 천상이 있고 무색계는 정신만 남아 있는 세계, 4개의 천상이 있습니다. ‘삼계(三界)의 행하는 곳을 뛰어넘었으니’ 의식차원을 넘어섰다는 말입니다. 의식의 세계는 시공간이 있는 세계인데, 이 세계의 차원을 넘어간 거죠. ‘뛰어난 출세간의 선근이 일으킨 것이다.’ 출세간의 선근이 일으킨 곳이 바로 정토에요. 그것이 무분별지(無分別智)와 중생구제의 지혜인 후소득지(後所得智)를 얘기 하는데 善根(선근)이라는 것이 착한 뿌리죠. 뿌리는 땅 속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게 해주고 자양분을 빨아들이죠. 비가 많이 오면 수분도 머금고 있다가 어느 정도 방출하기도 하고 싹을 틔우고 잎과 줄기, 그리고 열매 맺게 하는 게 뿌리죠. 이처럼 선근은 부처님의 대비심에서 옵니다. 중생들에 대해서 큰 연민심을 일으키는 데에서 선근이 심어 지는 거예요.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을 보면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이 나오죠. 인간으로, 고귀한 존재로, 어느 때는 아주 천한 자로, 어느 때는 축생으로 태어나서 중생 구제하는 모습이 부처님 전생에 나옵니다. 그 중생 구제하는 것이 바로 연민심, 대비심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 연민심은 중생이 본래 중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생이 아닌 줄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고통을 당하는 거예요. 그게 안타까워서 ‘너희는 본래 중생이 아니고 본래 부처야’하고 중생 구제하는 마음이 바로 연민심이고, 구제하는 자체가 선한 뿌리를 내리는 거죠. 이 선한 뿌리[善根]가 후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싹, 잎, 줄기가 생기고 깨달음이라는 꽃을 피우고 부처라는 열매의 결과를 가져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 힘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정토를 만들어서 중생을 구제하는 겁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청정한 국토인 줄 모르면 ‘정토세계가 있으니까 염불을 하시오,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쳐 드리고 그러잖아요. 정토는 죽지 않는 곳, 영원한 곳, 영생하는 곳이고 고통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거기에 태어나면, 본래 자기 자성이 죽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죽어서 정토에 간다고 하지만 수행을 해서 초지의 경지에 가기만 하드라도 이 몸 가지고 죽지 않고도 정토에 갈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본래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영원한 존재에요. 육체가 ‘내’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데 육체를 붙들고 ‘내다’, ‘내 것이다’ 생각하고, 보이는 이 세계도 알고 보면 자기 업식, 마음이 투영 되어서 바깥으로 장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밖에 따로 있다고 집착을 하고, 이러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해심밀경』의 가르침이 ‘전부다 마음이 만든 것이니까 속지 마라라.’하는 겁니다. 깨끗한 마음은 정토를 만들지만 미혹되고 더러운 마음에서는 더러운 세계를 창조하는 거예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 순간 깨끗한 마음이 방출되는 것 보다 미혹의 마음이 방출되기 때문에 보이는 세계도 미혹의 세계로 장식 되어 있는 겁니다. 오늘 강의는 부처님 정토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정토는 깨끗한 마음에 의해서 이루어진 세계고 깨끗한 마음은 무분별의 지혜[無分別智]와 중생구제의 지혜인 후소득지(後所得智)입니다. 모든 존재의 근본을 아는 무분별지, 중생 근기 맞춰서 구제하는 후소득지, 이것에 의해서 정토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특히 마음의 특성은 ‘앎’이고 그것이 연기(緣起)고, 모든 물질의 본성은 지혜다. 조금 어렵죠? 다음시간에 또 봅시다. 다음카페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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