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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정토//(정토학)

관무량수경의 왕생방법

작성자대공|작성시간09.01.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관무량수경의 왕생방법


《관무량수경》은 마가다국의 왕비인 위제희부인이 왕궁 깊은 곳에 갇혀 있을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서방정토를 觀해서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방법은 위제희부인이나 시녀들이 납들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으로서, 특히 16가지 관법 가운데 마지막의 삼배구품이라 불리는 3觀은 일반 부인들이 서방정토를 관해서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설한 것이다.



극락왕생의 조건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세 가지 복(三福)을 닦지 않으면 안됩니다.". 열반의 세계가 바다라면 극락세계는 큰 강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일체 중생들이 궁극적으로 회귀해야 하는 정점지가 아니다. 그러나 큰 강의 흐름에 일단 합류하게 되면 바다가 끌어당기는 흡인력에 의해 자연히 바다에 유입되어지는 것처럼 극락세계에 일단 태어나게 되면 시간의 장단이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반드시 열반의 세계에 무사히 안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관무량수경에서는 극락왕생의 수행방법으로 먼저 세가지 복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세간에서 행하는 도덕상의 선행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섬기며, 살생을 하지 않고 열가지 선업을 닦는 세복이고,

둘째, 삼보에 귀의하여 계율을 지키는 계복이며,

셋째는 대승의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행으로서 보리심을 내어 깊이 인과의 도리를 믿고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는 행복을 말한다.

이것은 극락왕생을 위해 기본적으로 닦아야 할 수행이지만, 실은 이것이 바로 불교도로서 살아가는 기본 자세인 것이다.



觀하는 방법과 공덕

관무량수경의 원명은 불설관무량수불경인데, 줄여서 관경 또는 16관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위제희 왕비에게 현세에서 인간의 보통 눈을 가지고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을 직관해 볼 수 있는 16가지 선정의 방법을 설명하고 계시다. 16가지 관법을 설하기 전에, 觀하는 방법과 그 공덕에 대해 설명하고 설명한 구절을 보자.

"나는 이제 위제희부인과 미래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서방극락세계를 觀하도록 가르쳐 주리라.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저 청정한 극락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는 것과 같이 분명하게 볼 것이니라. 그리하여 극락세계의 지극히 미묘한 장엄과 즐거운 일들을 보고 나면, 그들의 마음은 환희에 사무쳐, 바로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을 얻게 되느니라."

'觀'이란 사물의 겉모양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까지도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다는(觀) 것은 시각을 통해 감각적으로 보는 것(見)과 달리 사물의 표면을 투시하여 그 내면에 있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다. 사마타, 즉 止에 의해 마음의 산란함을 정지하고, 이것에서 나온 지혜로써 제법의 실상을 똑바로 보는 것을 觀이라고 한다.



제1日想觀 - 서쪽의 해를 생각하라

제1일상관은 일념으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해가 서쪽 하늘에 매달린 북과 같음을 마음 속에 선명하게 새겨, 그 영상이 눈을 뜨나 감으나 또렷하게 눈앞에 보일 때까지 관한다. 이렇게 서쪽으로 지는 해를 일심분란하게 응시하고 생각을 집중하면 저절로 극락의 장엄함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중국 정토교의 대성자 선도는 일상관을 제일 처음에 두는 이유로 1) 서방정토의 소재를 알 수 있고, 2) 검은 구름에 가려진 태양을 보고 자신의 죄업이 무거움을 깨달을 수 있으며, 3) 정토의 장엄의 광명이 태양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제2 水想觀

수상관은 고요한 물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인데, 맑고 깨끗한 물을 일념으로 주시하되, 그 물을 마음에 깊이 새겨 넣어 절대로 분산되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 후 물이 얼음이 되어 있는 것을 찬찬히 생각하는 것이다.



제3 寶地觀

보지관은 보석으로 된 땅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으로 그 극락세계의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분명하게 생각하여 그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 후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그 영상이 사물들이 언제나 마음에 밝게 남아 있도록 줄기차게 생각하는 것이다.



제4 寶樹觀

보석으로 된 나무들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보수관은 극락세계에 있는 나무를 생각할 때 한그루 한그루를 차근차근 하게 일념으로 생각하면서 그 나무들은 일곱겹으로 행렬을 지어 있기 때문에 빠뜨림없이 잘 생각하는 방법이다.



제5 寶池觀

보석으로 만들어진 연못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인 보지관은 극락세계에 있는 공덕의 물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덟가지 공덕의 연못물은 제각기 칠보로 만들어진 광대한 둑 속에 가득 채워져 있으니 이를 깊이 생각하는 방법이다.



제6 寶樓觀

보루관은 보석으로 건립된 누각들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인데, 수만가지 보석으로 이루어진 극락국토에 하나하나의 경계마다 오백억이나 되는 누각들이 줄을 즐비하게 서 있는데, 그 누각들에서 연주하는 한량없는 하늘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제7 華座觀

화좌관은 연꽃의 좌대를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제8 像想觀

상상관은 제9 진신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단계의 관법으로 아미타불이 중앙의 연화대에 앉아 계시고, 왼쪽에는 관세음보살, 오른쪽에는 대세지 보좌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며 정토의 장엄을 관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모습과 주위의 모습을 생각한다고 해서 중국의 선도는 여기서부터 부처님이나 중생의 심신을 관하는 정보관이라 했다.



제9 眞身觀

아미타불의 진신(참모습)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진신관은 아미타불의 키가 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나 눈의 크기가 수미산을 둘러싼 사방의 큰 바다와 같으며, 몸의 모공에서 나온 광명은 백 억의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어, 이 광명이 부처님을 염하는 중생을 두루 섭취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이 광명을 받은 모든 염불자가 부처님의 자비로 구제되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제10 觀音觀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관음관은 관세음보살의 특징이 신장은 80만억 나유타유순이나 되고,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의 정면에는 부처님 한 분이 서계신 것을 보고, 가슴에 80만억의 광명을 발하는 영락을 걸치고 있는 것을 관한다.

관세음보살의 여러 가지 특징적인 모습을 설명한 가운데 부처님과 다른 점은, 상호는 부처님과 똑같지만 다만 정수리에 솟은 육계와 그 육계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점인 무견정상만이 부처님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제11 勢至觀

대세지 보살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세지관은 대세지보살이 관세음보살과 모든 것이 같지만, 다만 원광의 크기와 천관이 5백개의 보배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정수리의 육계 위에 하나의 보병이 있는 것이 다르다.

이 관이 성취되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온전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세지관은 관음관과 하나로 이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제12 普觀

보관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한꺼번에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제13 雜想觀

극락세계의 여라 가지를 일념으로 생각하는 방법이 잡상관이다.



제14 上輩觀

똑같이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해도 각자의 소원하는 방법이 다르고, 종교적 열의에도 강약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가지의 생활태도도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크게 상배·중배·하배로 나누어 관한 것이 제14·15·16관이다.

상배관은 수행자를 그들의 근기에 따라 상·중·하 세 종류로 나누어 상품상생과 상품중생과 상품 하생하는 사람들의 관법을 설명하고 있다. 상배관은 대승의 근기로 대승의 선을 닦아서 극락에 왕생함을 관하는 것이다.



제15 中輩觀

중배관은 중근기의 중생들, 즉 중품상생과 중품중생은 소승의 근기로 善을 닦아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관하고 중품하생은 세간의 근기로서 세간의 선을 닦아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제16 下輩觀

하배관은 하근기의 중생들, 즉 선행을 닦은 일이 없는 악인이라도 오직 지성으로 염불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을 관하는 방법이다.



결론

극락왕생의 수행방법은 일상 생활 속에서 세 가지 복을 짓는 것이며, 죄업을 멸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16가지 관법을 수행하는 것이다. 삼배구품이 내용, 즉 수행자의 수행정도를 설한 것을 관법으로 삼은 이유는, 자기와 부처 또는 자기와 정토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듯이, 타인의 수행 내용을 관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자신도 그렇게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해 관법의 내용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문헌

                                                                                    공파(1998). 불설관무량수불경. 불광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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