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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정토//(정토학)

정토의 가르침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2.03.27|조회수21 목록 댓글 0

정토의 가르침

 

여러분이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내 옆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 보세요. 남은 여생을 살면서도 긍정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만 준다면 오래 산다고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가 잘 다스려지고 욕망이 지혜가 되고 에너지가 변화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정토불교를 이야기 하면서 금강산 건봉사를 찾아갑니다. 건봉사는 정토불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신라때 발징 화상이란 분이 주동이 되어서 만일염불 결사를 봉행했습니다. 만일동안 바깥 출입을 삼가고 나무아미타불 염불만을 하면서 부처님께 모든 삶을 바치자는 결사를 했던 도량입니다. 정신(貞信)과 양순(良順) 스님을 비롯해 31명의 스님이 세속의 가치와 명예와 집착을 버리고 처음 출가했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염불하기로 뜻을 모았던 것입니다. 만일은 햇수로 30년 정도 됩니다. 그 대 신라사회에 큰 영향을 일으켜서 후원회가 1731명으로 결성되고 31명은 약과 의복을 담당하고, 1700명은 식량을 조달합니다. 염불승을 자처하고 기어이 미타국에 왕생하리란 뜨거운 발원을 한 스님들의 정성 어린 기도와 동참 후원으로 금강산은 온통 염불도량으로 물듭니다.

 

그렇게 뜨거운 열기를 만일간 이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 일에 생사를 걸어두고 아예 탁발 나가는 일마저 생략해 버리고 정진에 매달렸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서 일주일간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칠일칠야를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면서 반주삼매에 들어요.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면 부처님의 현신을 볼 수 있어요. 마지막 만일이 되던 날 염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오니 서쪽 산이 사라지고 금빛광명이 나타나면서 부처님과 여러보살님들이 반야용선을 타고 나타납니다. “너희들은 정토의 업이 성숙되었으니 함께 극락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31분의 스님들이 배에 올라서 구름을 타고 서족하늘로 날아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신자들이 발심을 해서 1주일간 용맹정진을 합니다. 일주일후에 신도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시고 반야용선에 태웁니다. 신도들이 아주 환희심에 젖어서 배를 탑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가지고 세속에 살면 문제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을 미워할 일이 없어요. 우리가 이 세상을 버리고 돌아가야 할 세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기 때문에 현실에 매달리고 집착을 하고 미워합니다. 정토불교는 인간의 에너지를 전체적으로 바꾸어서 그 에너지로 해서 우리삶이 송두리째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히말라야가 있고 카일라스라는 성산이 있고 마나사로바 호수라는 양의 호수가 있고 초승달모양의 음의 호수가 있습니다. 이 호수에 살고 있는 백조들이 있습니다. 요가에서 백조는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호수에 얼음이 얼면 이 호수를 떠나 설산을 넘어 북인도 스리나가 평원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곳에서 9개월을 지냅니다. 비행거리가 5000 킬로가 넘는다고 해요. 서울과 부산의 거리가 500키로가 안되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마나사로바 호수에 물이 풀릴 때쯤 되면 다시 돌아갑니다. 그동안에 백조들이 알이 낳아서 부화되기 전에 어미들이 둥지를 떠나 옵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남아 있는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들이 마나사로바 호수로 날아오는 것입니다. 인도자도 없고 어미도 없는데 새끼들만 알에서 깨어나서 돌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도해 주지 않지만 백조들은 자기가 돌아 가야할 세상을 압니다. 정토의 가르침은 우리 생명이 어디에서 와서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에 관한 지혜를 일러줍니다.

 

칼융이란 심리학자는 집단무의식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심리학자입니다. 티벳 불교의 만다라 도상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답니다. 왜 인간은 고통과 불안속에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고 그 이유은 근원으로부터의 단절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근원에서 생겨난 인간이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고는 어떤 행위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 바로 선이고 정토의 가르침입니다.

 

이 정토수행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립니다. 3심, 4수, 5념, 6시를 닦으면 근원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옛 수행법에 나와 있습니다. 불경에 아미타 부처님은 서방정토에 계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절을 할 때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하고 모시지 못하면 항상 서쪽을 향해 앉습니다.

 

산라의 의상대사는 평생을 앉을 때 서쪽을 향해 앉았어요. 서방정토를 염원하고 발원하면서 항상 서쪽을 등지는 법없이 서족을 향해 앉았어요. 부석사 부처님도 서쪽을 향해 앉아 계십니다. 의상대사의 한 제자가 말썽을 부려서 절에서 쫒겨 나게 되었어요. 이 제자가 스승을 공경하면서 스승의 상을 목각으로 조각해서 모시고 기도를 했어요. 의상대사가 이 소식을 듣고 제자를 불러 내 상을 모시고 기도한다니 한번 내놓아 보라고 합니다. 제자가 상을 내놓으니 그 상을 동쪽으로 앉혀 놓으며 “나무로 만든 상이지만 내 뜻과 이 상이 같다면 서쪽을 향해 앉을 것”이라고 하고 염불을 하니 조각상이 서쪽으로 돌아 앉았다고 합니다.

 

지성심은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결같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예불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토를 발원하는 사람이 첫 번째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절에 와서 많이 듣는 말이 ‘너의 마음이 바로 부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성은 청정 그대로 물들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가르침을 듣지만 생활속에서 지키지 못해서 부처의 모습을 보이지 못합니다. 정토에서의 신심은 내 자신의 번뇌가 뿌리가 깊고, 죄업이 심중 하다는 것을 깊이 자각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어두운 그늘에 불안해하는 중생임을 자각한 다음에 이와 같은 나를 위해서 과거 아미타 부처님께서 48원을 세우고 극락정토에서 아미타불을 호명하면 극락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이 신심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작은 선행 공덕을 지을 적마다 극락정토 아미타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 회향발원심입니다. 이 공덕으로 목숨을 마칠 때 아미타 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얻는 공덕과 영광을 부처님께 바쳐서 부처님 세상에 나기를 발원하고 3심이 구족하고 그 마음으로 염불하면 모두 정토에 나는 것입니다.

 

3심을 갖추면 4수(네가지 닦음)를 행해야 합니다. 공경수는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무여수는 다른 수행을 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면 결과가 있는데, 가르침을 듣기만 하고 증득이 없는 것은 감각적인 욕망, 질투와 분노, 들뜬 마음, 교만한 마음, 의심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토에 발심한 사람이 한 우물을 파서 다른 가르침에 귀 기울일 것이 없이 오로지 한가지만 여일하게 하는 것을 무여수라 합니다.

 

남방쪽을 보면 불교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상생활 자체가 바로 불교와 맞닿아 있습니다.  무간수는 틈이 없이 닦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오려면 자동차를 타고 오실 때 이 자동차가 굴러 가려면 바퀴가 계속 돌아가야 진척이 있습니다. 내 마음안의 다르마 챠크라가 계속 굴러가서 마음의 번뇌와 욕망이 끼어들 틈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큰스님들중에 초발심때 대비주 수행을 많이들 하셨는데 처음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읽으면 한 30분정도 걸립니다. 이것을 읽고 읽어서 암송해 가다보면 1분에 3번 정도 할 수 있게 되고 숨 한번 들이쉬었다가 내쉴 때 한번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숨 한번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동안 망상이 끼어들 틈이 없이 수행을 지어나가는 것이 바로 무간수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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