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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정토//(정토학)

상행삼매에 나타난 지의의 정토사상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2.03.29|조회수7 목록 댓글 0

 


혜명스님(김 종두)







중국 淨土敎는 曇鸞․道綽․迦才․善導․懷感․法照․小康등의 諸師의 계통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安養을 최고 淨土로하는 彌陀淨土敎의 계통을 의미하는 것이고, 정토교를 廣義로 해석하면, 地論․攝論․天台․三論․法相․華嚴등의 諸宗에도 각각의 입장에서 이상으로 하는 정토에 대한 신앙과 교학이 있다.

天台의 淨土사상도, 阿彌陀佛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曇鸞 내지 善導의 彌陀淨土敎에서 보면, 오히려 방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천태의 정토사상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般舟三昧의 법문의 완성이 천태의 정토사상에서 처음 실현됐다는 사실이다. 後漢의 支婁迦讖에 의해서 ꡔ般舟三昧經ꡕ이 傳譯된 이래로, 이 삼매는 일찍부터 중국에 알려지고 실제로 이것을 수행하는 사람도 多少있었다. 특히 성대하였던 것은, 東晋의 末葉, 廬山慧遠이 白蓮社를 결성한 이래의 일이었다. 혜원의 제창에 의해서, 한 때 문하의 사람들 사이에서 般舟三昧를 수행하는 풍조가 흥행했지만, 혜원의 사후에 점차적으로 쇄미해졌고 겨우 일부의 사람들이 실수하였다. 그 사이에 반주삼매의 법문을 조직적으로 설한 사람들이 있었던 흔적은 없다. 그런데 陳과 隋나라에 이르러서, 지의가 ꡔ摩訶止觀ꡕ에서 반주삼매의 법문체계를 조직하고, 이것에 戒定慧의 3學의 골격을 만들었으며, 常行三昧의 이름으로, 이 삼매에 하나의 완전한 修道체계의 면목을 구비한 것이다.

그리고 반주삼매는 彌陀淨土로의 왕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여산혜원의 白蓮社에 속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西方을 사모하고, 安養으로의 왕생을 원하였다. 그런데 지의의 반주삼매사상은 安養도 초월한 고차원적인 佛國, 즉 常寂光土를 이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미 ꡔ摩訶止觀ꡕ보다도 7년전에 강설된 ꡔ法華文句ꡕ에서, 지의는 四種淨土를 설하고 있다.1) 그 사종정토 중에서 彌陀淨土는 가장 낮은 정토에 불과하고, 최고의 정토를 常寂光土라고 하고 있다. 반주삼매는 최고정토인 常寂光土의 왕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결코 미타정토를 이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본 논문은 이상의 부분을 참고하면서 상행삼매에 나타난 지의의 수행법과 정토사상을 고찰하려고 한다.

1) 常行三昧의 經典根據

상행삼매라는 명칭은 身儀에 의한 것이고, 법에 의지하면 般舟三昧 또는 佛立三昧라고도 한다.

이 경전의 성립은 기원전 1세기경으로 보고 있으며, 정토계 경전 가운데서도 초기에 편찬되었다. 그러나 ꡔ般舟三昧經ꡕ의 산스크리트본은 산실되어 현재까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범어명은 ꡔpratyutpanna-buddha-saṃmukhavasthita-samãdhi-sūtraꡕ(十方現在佛悉在前立定經)이라고 한다.

漢譯으로는 ꡔ開元釋敎錄ꡕ권14에 의하면, 7譯이 있었으나 4譯은 산실되고 3譯만 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4譯이 전하고 있다.2)

이 중에서 지의가 依用해서 근거로한 것은 1권본과 3권본이고 ꡔ十住毘婆沙論ꡕ에 반주삼매에 대해서3) 여러 곳에서 강설하고 있으므로 이 논을 근거로 했다고 생각된다.

2) 常行三昧의 방법과 내용


이 상행삼매의 방법은 常坐三昧와 마찬가지로 三業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 도량을 장엄하고 아미타불의 상을 本尊으로 안치한다. 身業으로는 90일간 밖으로 나오지 않으며 몸을 청정히 하고 오로지 行旋하는 것이다. 口業으로는 90일간 끊임없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거나 32상을 염하고 혹은 양자를 함께 행하면서 쉬지 않고서 걸음걸이마다 소리소리마다 생각생각마다 오직 아미타불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意業으로는 事觀인 아미타불의 불국토와 32상호를 順逆으로 생각하고, 理觀인 空, 仮, 中의 三觀을 닦아 단순한 見佛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一心三觀, 즉 원융삼제의 실상원리를 체증하는 것을 최고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점에 주의하면서 지의가 삼업으로 체계화한 실천법 가운데 口業과 意業을 살펴보려 한다.


(1) 입으로 설하는 법과 침묵하는 법



이 삼매의 수행 가운데 구업에 관해 입으로 설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일도 90일 동안 지속적으로 하는데, 항상 아미타불을 쉬지 않고 외우기도 하고 염하기도 하는데, 전후를 가릴 필요는 없고 단절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稱名念佛이다. 지의는 칭명염불을 理觀에 들어가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거나 질병이나 수면 등의 장애가 있을 때 이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행삼매의 구업의 부분도 마찬가지다.

칭명에 대해 용수는 보살도를 성취하기 위한 易行道이고 道綽은 칭명으로 정토왕생할 수 있다고 하고 특히 善導는 이러한 칭명이 彌陀의 본원력인 他力으로 왕생하는 가장 중요한 실천이라고 했다.

이런 부분을 참조하면서 지의가 칭명염불을 주된 실천행으로 다루지 않고 止觀을 성취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였던 구업의 부분을 살펴보겠다.



입의 설묵이라는 것은 90일 동안 몸은 항상 걷고 휴식이 없으며 90일동안 입은 항상 阿彌陀佛을 외우면서(唱) 휴식이 없고 마음은 90일동안, 항상 阿彌陀佛을 염하면서(念) 휴식이 없는 것이다. 때로는 외움과 念함을 같이 진행하고 때로는 먼저 염하고 나중에 외우며 때로는 먼저 외우고 나중에 念한다. 외움과 염함이 서로 이어져서 휴식하는 때가 있어서는 안된다. 만일 阿彌陀佛을 외운다면 바로 이것이 시방의 부처님을 외는 것과 공덕이 같으니 다만 오로지 阿彌陀佛을 法門의 主로 한다. 요점을 들어 말한다면 걸음걸음마다 소리소리마다 생각생각마다 오직 阿彌陀佛이 있을 따름이다.4)


위의 본문에서는 ‘念’ 즉 觀想念佛을 『반주삼매경』에 기초해서 규정하고 ‘唱’ 즉 稱名念佛을 규정하고 있지만, 『반주삼매경』에는 1권본도 3권본도 어떠한 관계도 설해져 있지 않다. 지의는 칭명염불에 대해 『마하관』권 제7上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만일 수면이 수도를 장애하는 죄를 일으킨다면 바로 念佛觀으로써 이것을 대치한다. 佛의 無相의 相을 緣하고 그 相을 緣하고 있음이 분명하여지면, 道를 장애하는 죄가 파하여지는 것이며 시방의 부처님을 보고 이관과 상응하여 열반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5)


라고 서술하고 수면의 장애에 대한 대치법으로서 염불을 사용하고 있고 『마하지관』권 제8하에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法門의 부처님을 念하여 과보의 惡業을 助破한다. 염불의 힘 때문에 악업장이 전환되면 바로 열반의 문으로 들어간다.6)


악업장의 대치법으로서 염불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지의는 이 구업의 염불에 현세이익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래서 지의가 이 칭명염불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직접적인 근거가 된것이 『십주비바사론』이라고 생각되는데 권 제5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만약 보살이 이 몸으로 阿惟越致地에 이르는 것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十方諸佛을 念하고 그 명호를 칭해라. 만약 사람이 一心으로 그 명호를 칭한다면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 아미타불 및 모든 대보살의 명호를 불러 一心으로 念하면 또한 불퇴전을 얻는다. 또한 아미타불등의 제불에게 마땅히 공경하고 예배해서 그 명호를 칭하여라. 이 제불세존은 현재 시방청정의 세계에 있다. 모두 이름을 칭해서 憶念한다. 아미타불의 본원도 이와 같다. 만약 사람이 나를 생각하고 이름을 칭해서 귀의한다면 곧 定에 들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한다.7)


즉 易行品등에서 칭명염불의 공덕을 역설하고 있다. 지의는 이『십주비바사론ꡕ에 기초해서 칭명염불을 口業의 행법으로 규정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의가 칭명염불의 현세이익을 설한 점에서 曇鸞의 사상과 공통하고 있지만 지의의 경우는 결코 칭명염불에 위에서 서술한 공덕 이외의 특수한 의의, 즉 般舟行의 중심적 의의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또 본문에 ꡐ다만 오로지 아미타불을 법문의 주로 한다ꡑ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여기에 지의가 아미타불이라는 一佛을 중심으로 한 것은 다만 이것이 『반주삼매경』의 설상에 기초했기 때문이지 특히 아미타불을 선택해야 하는 절대적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지의는 사종삼매에 대해서 『마하지관』권 제2하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사종삼매는 방법은 달라도 理觀은 곧 같다.(중략) 이관의 뜻을 얻지 못한다면 事相의 助道도 또한 이룰 수 없다. 理觀의 뜻을 얻는다면 事相은 三昧任運하여 스스로 얻는다.8)


라고 서술하는 것처럼 事相은 각각 서로 다르지만 理觀은 같은 것이며 事觀의 목적도 종극적으로는 이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종의 정토경전이 왕생극락의 行法으로서 설한 唱念彌陀의 법은 여기에서는 삼매 성취를 위해 현재에서 一念三千의 묘리를 체달하기 위한 방편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뜻으로 止觀을 하는 법

이 지관의 행법은 一心三觀의 원리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다. 즉 아미타불의 불국토와 32상호를 順逆으로 생각하고, 空, 仮, 中의 三觀의 입장에서 행해야 한다. 그 경우 1권본도 3권본도 三觀은 설하고 있지 않은데, 이것은 ꡔ십주비바사론ꡕ권 제12의 「助念佛三昧品」에 새로이 뜻을 발한 보살이 먼저 佛의 色身32상을 관해서 下의 세력을 얻고, 다음에 法身佛의 40不共法을 念해서 中의 세력을 얻고 최후에 實相佛을 念해서 최상의 공덕을 얻는다9)고 하는 것에 근거한 것이다. 지의가 이 文을 근거한 배경에는, 반주삼매가 단순히 見佛에 진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극적으로는 一心三觀, 즉 원융삼제의 실상원리를 體證하는 것을 최고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10)

그리고 지의는 이 지관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事觀을 통하여 하여 理觀으로 들어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11)

먼저 事觀으로 3개월동안 32상의 부처님을 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미타 32상의 부처님 발바닥의 1천폭 륜상(輪相)부터 올라가 모든 상과 머리끝 정상까지 생각하고, 다시 육계끝에서 아래로 내려와 발바닥 1천 윤상까지를 생각한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몸과 마음은 모습이 없어서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일체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근본인 실체를 끊어야 한다는 空觀을 닦고, 6비유인 세 가지 꿈과, 보물, 뼈, 거울을 통해 仮觀을 닦으며, 마음이 곧 부처라고 관하며 마음과 부처가 평등하여 일체가 되는 中觀을 닦아 단순한 見佛이 아니라 원융삼제의 실상원리를 체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의가 생애불법의 頭梁으로서 존숭하였던 盧山慧遠이 이 般舟念佛의 주창자이며 더구나 혜사에게도 열열한 정토신앙이 있었으며 지의도 만년에 이르러 서방정토를 깊이 생각했다는 것은 『隋天台智者大師別傳』의 기록이다. 그리고 지의의 眞意는 이 觀想念佛을 一心三觀의 원리에 의해서 理觀化하려는데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상행삼매를 통한 지의의 淨土觀은 만년의 저술인 ꡔ維摩經文疏ꡕ를 통해서 四種淨土說로 정립되어 있다. 그 가운데 常寂光土는 一心三觀과 三諦圓融을 체득하는 天台圓敎의 경지이고, 지의가 이상으로 한 佛國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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