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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정토//(정토학)

정토학 정리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2.04.19|조회수33 목록 댓글 0

본원에 대하여 논하라

 

 본원이란 '옛부터의 원' '숙원'이라고도 하는데, 인류구제의 원으로서 기본이 되는 것이다. 부처와 보살이 과거세에 있어서 수행했을 때 일으킨 중생제도의 원으로 사람들의 교화와 구제를 담아 서원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중생제도의 맹서가 아닌 단순한 원은 서원이 아니라 발원이라고 한다.

 정토교에서는 본원염불이라 하여 아미타불 이전에 법장보살이라고 할 때 세운 원력이다. 이것은 염불을 함으로써 본원에 실려 구제되고 정토에 왕생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 본원염불에 의한 정토왕생설의 이해는 종파에 따라서 다르다. 이 보살의 서원의 경우, 보살로서 누구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아니 되는 기본적, 보편적인 서원을 총원이라고 하며, 보살자신이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으킨 특수한 서원을 별원이라고 한다. /이 총원은 일반적으로 사홍서원을 이른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받드는 보살이 육바라밀의 행을 수행하므로 일으킨 서원으로 첫번째는 모든 교화할 중생의 고뇌를  사하고, 깨달음을 얻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살의 이타행이므로 제도라 한다. 두번째는 고뇌와 번뇌가 아무리 많아도 다 끊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서원이다. 이는 단멸이며 보살의 이타행이다

세번째는 배워야 할 교법이 아무리 많아도 이것을 다 배우고져 하는 서원이므로  知라 한다. 네번째는 깨달음의 경지가 아무리 높아도 반드시 증득하고자 하는것으로 證이라 한다. 이와 같이 度 斷 知 證 세워 自利利他의 행을 수행하는 것을 대승의 보살도라고 하며, 보살의 총원이라고 한다. /별원이란, 이러한 총원을 일으킨 다음에 그 위에 불보살이 독자적으로 세운 서원으로서 총원이 일반적인 서원인 것에 반해 개인적이고 특수한 원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할려는 '차토성불의 원'것과, 타방에 정토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피토성불의 원'이 있다. 정토삼부경의 하나인 무량수경에서 설하는 아미타불의 48원은 피토성불의 별원이다. 이렇게 본원 즉 서원으로 인해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마음이 지금도 되새겨지며 한편으론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다. 또한 이 같은 서원이 우리중생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이다. 이를 잘 습득하여 삶에서도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중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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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심에 대하여 논하라

p.226

(信의 의의)

신심이란 일반적으로 믿는 마음이라고 한다. 일본 정토교에서는 특히 인간의 구제를 논하는 경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은 샨스크리트어의 스랏다으 역어이다. 오근(信 정진 염 定 慧) 의 하나인 신근(삼보와 사제를 신하는 일)으로 말할 수 있다. 또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대선지법의 하나라고도 하며, 다음에 진리에 대한 확신, 설하신 도리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며, 또는 마음이 맑아져서 청정해지는 일, 명상의 과정에 있어서 생기는 육종의 결함의 경우 게으름를 제거사는 요소 등이라고도 해석되고 있다. 이들은 신의 체성과 활동 등에 대하여 각각의 면에서 논하는 것으로서 신혜, 신수, 신해, 신심, 신지 등이라고도 한다. 정토교에서는 부처님이 설하신 교법을 의심없이 순종하는 마음이라고 하며, 또는 부처를 신뢰하고 신용하는 마음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용수는 대지도론에서

"불법의 대해는 신으로 능입하고 지로 능도한다,,,,또 그것에 대하여 경중에서 설한다. 신을 손이라하여 사람이 손이 있으면 보산의 중에 들어가서 자재로서 능히 취한다. 만약 손이 없으면 취할 것이 있어도 취할 수 없다. 유신의 사람도 이와 같다. 불법 무누의 근력각도선정의 보산중에 들어가 자재로히 취할 수 있다."

고 한다. 불교에 들어가는 데는 먼저 신하는 것이 처음이며, 신하지 않고는 불교의 진리를 얻을 수 없다. 또

"만약 일체중생이 처음으로 삼보해에 들어가는 데는 신을 근본으로 삼는다. 불가에 주재하는 것은 계를 근본으로 삼는다"

고 한다. 삼보해 즉 불교에 입문하는 데는 먼저 신하는 거이 근본이라고 설한다. 이 두개에서 설하는 것은 불교의 진리를 알고져 하는 데는 먼저 불교를 신하므로 부터 시작된다고 하며 신하므로 ㅇㄴ하여 처음으로 불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227

-信은 불교입문에 있어서 초심이라 하며 불도수행에서 기본적인 마음의 자세라 한다. 정토삼부경에서도 각각 표현하는 말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신심을 발할 것을 말하고 있다.  

* 신심이란 지극히 마음에서 우러나와 믿는다, 절대적으로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라고 볼 수 있다. 이 신심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언어로 어느종교에서건 중요시된다. 신심이 있어야지 그 자체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고 믿음에 있어서 확신이 생긴다. 신심이라는 것은 타인에 의해 떠밀려 생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실로 자신이 체험하고 느끼고 분별심에서 한발짝 물러나면 더 강력한 마음의 힘이 생긴다. 그것이 신심이다. 정토삼부경에서도 각각 표현하는 말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신심을 발할 것을 말하고 있다. 마음을 내어 극락왕생을 원하여 염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만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란 그 사람의 진실됨을 보여주는 표현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또한 불교에 대한 신심에 있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불교관련책을 읽어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로만 여겼다. 그리고 어려웠다. 하지만 정토교에서 말하는 불교란 다른 여타의 종교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불교에 대한 나의 마음에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부처가 아닌 중생인 이상 좀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수행과 선행을 하는 목적 그리고 대상이 있어야 한다. 종교로서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 전까지 나에게는 그 부분의 결여가 믿음에서의 취약점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토학을 통한 새로운 불교의 접함이 신선한 충격이자 환희이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도 이제 이런 확신이 생긴다. 내 마음에 불교를 의심치 않고 믿어 나를 닦아 나간다면 분명 나의 생에도 견성견불의 힘이 생길 것이란 걸. 

-믿지 않는 자에게는 복이 없듯이 믿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이든 경험에 의해서 믿으려 한다. 특히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는다. 하지만 이는 경전에서 설하고 있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

 

4. p213

발보리심에 대하여 논하라

- 발보리심은 정토왕생에 근본적인 정의이다. 이를 일으키기 위해선 신심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보리심이란 샨스크리트어의 보뎨싣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이 없었다. 초기경전에서는 보리심부분이 신앙, 믿음으로 나와있다. 적극적인 표현보다는 믿는다라는 신앙으로 나와있다. 이에 보리심은 대승불교로 오면서 발전된 말인데 부처님의 위치에 들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다. 대승불교 수도자라면 처음 반드시 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이 마음을 일으키고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행을 수행한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선 대단히 중요하다.

 원래 이 보리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청정한 마음의 본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며, 구체적인 사상에 의하여 발하는 것(연사보리심)보편적인 진리에 의하여 발하는 것(연리보리심)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리심의 내용은 사홍서원이다. 이에 대승불교를 믿는자라면 누구든지 이런 마음을 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토삼부경에서도 정토에 왕생하기 위하여 닦는 여러종류의 행을 행함에 꼭 일으켜야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의 삼배왕생을 설함에 있어서도 정토왕생의 행을 닦을 경우 반드시 일으켜야 하는 마음이라 설한다. 따라서 왕생 하기 위하여는 보리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보리심이 갖춰지면 자기만 깨달을려는 편협한 마음을 버릴 수 있다.

 

연사보리심: 사실에 의해 불교를 믿게 됨

연리보리심: 이치를 보고 불교를 믿게 됨

 

 

믿음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信觧(신해) Adhimukti 이론적,논리적,지성적, 믿는데 이해를 해야해 (연리발심)

净信(정신) Prasada 마음을 청정해서 고요하게 참선하거나 부처님 말씀 음미해 환희를 느김, 고요함

帰依(귀의) Saranagamana 부처님께 귀의한다, 믿지 않고는 귀의할 수 없다.

敬信(경신) bhakti  열광적인 믿음, 정서적 믿음/염불을 열성적으로 소리지르며 신심이 나서 좋아서 자기가 어쩔 줄 모름. 미친다는 말은 도달한다는 말로 부처님께 미쳤다. 부처님 경지에 도달한다.

 

(불어)부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지혜로운 자 깨달은 자 승리자 이기 때문이다. 불교신자란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자를 일컫는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는 않고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판단하려고 한다. 이래서는 안된다. 경전의 말씀을 보고 또 어렵다고 단정짓지도 말아야 한다.  

 

信觧(신해) Adhimukti 이론적,논리적,지성적, 믿는데 이해를 해야해 (연리발심)

净信(정신) Prasada 마음을 청정해서 고요하게 참선하거나 부처님 말씀 음미해 환희를 느김, 고요함

帰依(귀의) Saranagamana 부처님께 귀의한다, 믿지 않고는 귀의할 수 없다.

敬信(경신) bhakti  열광적인 믿음, 정서적 믿음/염불을 열성적으로 소리지르며 신심이 나서 좋아서 자기가 어쩔 줄 모름. 미친다는 말은 도달한다는 말로 부처님께 미쳤다. 부처님 경지에 도달한다.

 

5. 아미타불의 불심, 불토론에 대하여 논하라.

(아미타불설명은 간단히, 불심 불토론에 대해)

정토교에서 신앙대상인 아미타불은 그 키워드로 무량수 무량광의 영원한 수명과 광명의 지혜의 빛을 설한다. 이같은 아미타불이 그 경전 통해 널리 전파되며 대승불교 내에서도 점차 발전된 부처님의 깨달음의 본체라 여겨진다. 이것의 사변적 고찰의 영향으로 아미타불의 깨달은 본체와 정토의 성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불신론, 불토론이 생겨났다.

 원래 불신론이란 석존의 육신에 관한 고찰을 말한다. 불교의 사상의 발달에 따라 불신론은 이신설, 삼신설, 에서 십신설까지 늘어났고 내용도 형이상학적으로 변해갔다. 불신론은 부처의 불체의 성격을 삼종으로 구별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불신은 법신, 보신, 화신으로 본다.

법신불은 지극히 사상적이고 이념적인 부처인데 석가 입멸 후 그의 육신 속 석가를 불타로 여겨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라는 것을 보고 이것으로 영원불멸의 법이라 여겼다. 보편의 진리, 진여를 신격화한 부처님이다. 진여법성. 대표적인 부처님으로 비로자나부처님이 계시는데 법신불은 진리그자체 이므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보신불이란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받드는 보살이 수행 중에 세운 서원과 수행의 보답으로 법성진여를 깨달아 성불한 부처를 말한다. 인과응보에 의해 나온 초역사적이고 신앙의 대상이다, 서원수행으로 성불한다.

무량수경의 아미타불도 법장비구의 수행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은 신앙의 대상인 정토교의 보신불이다. 또 이 보신불을 자수용신과 타수용신으로 나눈다. 정토에서 스스로 광대한 법락을 수용하는 불을 자수용신, 보살을 위하여 신통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대승의 법락을 받는 부처를 타수용신아리고 한다.

화신불이란 응신불, 육신불이라고도 하는데 중생 각각의 근기와 능력에 맞게 나타나시는 부처라고 하는 의미로 중생과 같은 육신을 가지고 인도에 출현하셔서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신 석가모니불을 말한다. 역사적 부처님이다.

 

다음 불토란 부처가 상왕하면서 그 나라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는 나라를 말한다. 석존이 출현하신 즉 현실의 사회를 이른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 불신론의 전개와 함께 각각의 불신이 사는 국토로서 법토, 보토, 화토의 삼토가 설해 지고 있다.

 법토란 법신불이 사는 세계로 사실 법성토라고 하지만 우주의 진리 그대로를 국토라고 부를뿐 불신도 같은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부처의 경지로써 부처자신의 깨달음 의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부처만이 알 수 있고 아직 깨닫지 못한 수도자는 알 수 없다.

보토는 보신불이 사는 세계로 서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국토를 말한다.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는 여기에 속한다. 이 세계에서는 수행서원에 의하여 성불하신 부처가 교주로서 항시 설법하시고 칠보로 된 아름다운 세계라한다.

화토란 응신불이 사는 세계로 석가가 출현하셔 많은 사람을 제도하신 사바세계를 말한다. 

 

아미타불의 4대기

1 本願成就佛(본원성취불)

2 無量光明佛(무량광명불)

3 無量壽佛(무량수불)

4 末(?)迎接引佛(?영접인불)

 

6. 범부관에 대하여 논하라

323

십신 - 십주- 십행- 십회향-십지-등각- 묘각

정토교에서 구제의 대상이라고 하는 인간을 범부(중생)라고 칭한다. 범부란 일반적으로 범용한 사부, 평평범범한 일반인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하지만,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의 푸리다그 쟈나를 번역한 것으로 이생이라고 직역된다. 이생이란 종종의 다른 세계에 태어나 변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번뇌에 의하여 업을 일으키고 그 때문에 종종의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다른 세계란 보통 육도라고 하여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인의 6가지이다. 번뇌에 의하여 이러한 육종의 다른 세계로 전생하기 때문에 異生이라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불도수행에 열심인 대승보살이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을 열심히 하고 깨달음에 이를때까지를 52계위로 나누고 있다. 십신위, 십주위, 십행위, 십회향위, 십지위, 등각위, 묘각위이다. 이중의 십지의 처음을 초지 라고 한다. 이 초지의 단게까지 정진한 보살은 다시 앞의 십회향과 십신위로 떨어질수 없다고 한다. 거기에서 이 이상의 사람을 성자라 하고 , 아직 초지에 이르르지 않은 십회향, 십행, 십주, 십신위에 있는 것을 총칭하여 범부라 고 한다. 그것은 초지에 들어 처음 오염되지 않은 지혜를 얻으면 불성을 볼 수 있고 성자로 된다. 불지를 길러 보존함과 동시에 진실로 일체중생을 보호하여 기르기 때문에 십성 또는 십지상의 보살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에 대하여 초지 이전의 보살을 범부라고 한다. 이 경우 처음의 십신위에 있는 것을 외범(종교적인 기질이 전혀 없다), 십주,십행, 십회향의 것을 내범(내범에서부터 제도가 가능하다)라고 한다.

성자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내가 보는 것에만 머물고자 하는 사람을 범부라고 한다. 범부는 오욕에 집착하기 때문에 만약 법화경의 가르침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법화경의 가르침에서는 범부는 구제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범부는 오욕에 집착하는 사람, 몸이 보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제도하기 어려운 자라고 하지만 중국의 선도는 이러한 범부로서도 아미타불의 진실보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여 본원

의 염불을 말하고 범입정토설을 주장한다.

1否定聚(부정취): 종교적인 기질이 없음 내세관이나 인과응보를 못믿어 자만에 빠짐(외범)

2邪定聚(사정취): 종교적 기질은 있으나 삿된 종교에 빠져있음

3正定聚(정정취): 언제든지 종교로 제도가 가능한 사람

1-부처도 인연없는 중생 구제못한다고 함

 

우리는 범부이므로 성불하기 위해 갈 수 있는 최적지가 서방극락정토이다. 극락은 성불하기 위한 모든 환경이 갖추어져 성불하기 위해 가기 때문이다.

법연스님 47세에 범부성을 깨닫게 됨, 난 어리석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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