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늘 깨어 있는 사람이다' / 법정 스님
새로 중이 되려는 그대에게
선참자로서 몇 가지 충고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첫째, 출가 수행자는 늘 깨어 있는 사람이다.
온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일지라도
불침번처럼 성성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적인 중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어떤 종파를 물을 것 없이,
세상에는 종교를 한낱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이비 수행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대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출가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는지
거듭거듭 물으라.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분명히 들어 있다.
그러나 묻지 않고서는 그 해답을 끌어낼 수 없다.
돈을 위해서 수행자가 되었는가,
세속적인 이름을 얻기 위해 집을 버리고 나왔는가?
세상일에 적응할 수 없어서인가,
혹은 인간적인 갈등을 피해서인가?
돈과 이름은 노력하는 만큼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수행자의 도량은 도피처가 될 수 없다.
그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삭발하고 먹물옷을 걸치고 수행승이 되었는지
거듭거듭 물으라.
둘째, 출가 수행자는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이란 맑음 그자체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한결같이 우리가 배우는 교훈은,
수행자는 먼저 가난해야
거기서 구도의 마음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지천으로 넘치는 요즘 같은 세태에서,
그 넘치는 물건들은 무소유를 표방하는 출가 수행자에게는
커다란 도전거리다.
그걸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어떻게 딛고 일어설 것인지는 하나의 과제다.
한 생각 일으켜 집을 떠나올 때 '빈손'이었음을 항상 상기하라.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맑은 수도의 세계와는 멀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때 그때 자신의 처지를 살펴 지닐 것과
지니지 않을 것을 가려야 한다.
행복의 조건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고,
불펼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에 있다.
출가 수행자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난할수록 부자다.
아무것도 갖지 않아
안팎으로 텅 빈 그 속에서 충만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세째, 출가 수행자는 홀로 가는 사람이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서 사는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숨어 사는 은자처럼 처신해야 한다.
항상 자신의 서 있는 자리에 마음을 모으라,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자신의 허물을 찾아 고쳐 나가야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이렇게 사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 길이다.
넷째, 출가 수행자는 큰 원을 세운 사람이다.
원願과 욕심은 다르다.
욕심은 이기적인 것이지만 원은 이타적인 것이다.
원은 삶의 지표다.
원이 없으면 삶에 생기도 없다.
원이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도
그 원의 힘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수행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도달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일에만 매이거나 집착하면 그건 종교가 아니다.
우리는 이웃과 세상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입으면서 살고 있다.
그 은혜를 수행의 덕으로 갚아야 한다.
자신이 지닌 특성을 묵혀 두지 말고 그 특성을 살려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
어떤 모임에서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반거충이는
수행자의 대열에 들 수 없다.
큰 원으로써 이웃에 덕의 그늘을 드리우라.
다섯째, 출가 수행자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다.
수행자의 삶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오로지 현재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산다.
그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초대한으로 살 뿐이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다.
늘 새롭게 시작함으로써
일상적인 타성에 물들지 않고 신선한 삶을 이룰 수 있다.
수행자에게 '영원한 젊음' 이란 바로
이 새로운 시작을 통해 움이 트고 싹이 튼다.
이 새로운 시작을 통해 잎이 피고 꽃이 피며
마침내 깨달음의 열매를 맺는다.
세월은 그렇다.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
덧없이 잠깐 지나 가는 것이다.
시간을 아껴쓰라.
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자신에게 주어진 목숨이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종점에 이르고 만다.
무가치한 일에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말라.
밖으로 한눈 팔지 말고, 그대 안에서 찾고 일깨우라.
끝으로 당부의 말이 있다.
이 당부는 그대가 출가 수행자로 지내는 동안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을 넘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시시로 물으라
"나는 누구인가?"라고.
이것은 모든 수행자의 근원적인 물음이다.
"나는 누구인가?"
출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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