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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발원문

[스크랩] 26.불교 신행 공동체의 정체성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6.05.19|조회수18 목록 댓글 0

승가의 정체성은 계율서 비롯

 

중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절에서 살면서 불법을 닦고 포교에 힘쓰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 현실에서는 비하해서 부르는 말(卑稱)이어서 당사자가 겸칭(謙稱)으로 구사하는 경우가 아니면 입 밖에 내어 쓰는 경우는 드물다. 승려(僧侶)는 평칭(平稱)이고 스님은 존칭이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상가(sagha)에서 왔다. 상가는 고대 인도에서부터 사용되던 말로 단체나 회의 또는 조직을 지칭했는데 차츰 종교단체의 지도자와 그 신봉자들을 일컫는 데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인도의 불자들은 이 말을 자신들의 신행 공동체, 즉 남녀 출가 수행자인 비구(bhikku)와 비구니(bhikkuni) 및 남녀 재가(在家) 신자인 우바새(upasaka)와 우바이(upasika) 전체를 통칭하는 데 쓰고, 그 의미를 ‘셋 이상 여럿이 모인 공동체’라는 뜻의 중(衆) 혹은 ‘화합해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화(和)로 규정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두 의미가 하나로 합쳐져 ‘화합을 가장 중시하는 신행 공동체’라는 뜻의 화합중(和合衆)이 되었다. 따라서 상가, 즉 중이란 말은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불교 신행 공동체 전체인 사부대중(四部大衆 ;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을 가리키는 말로서 ‘화합을 가장 중시하는 공동체나 그 구성원’을 뜻한다.

 

 四部大衆의 의미, 衆 . 和로 규정

‘중’ 본뜻 회복…규범 준수가 관건

 

중국 사람들은 이 상가(현지발음은 쌍가에 가깝다)를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썽치에(僧伽)’라고 했다가, ‘불타 - 불’, ‘보리살타 - 보살’처럼 ‘썽(僧)’으로 축약해서 불렀다. 한국에 와서 여기에다 존칭어미 님이 붙여져 승가 - 승 - 승님 - 스님이 되었다. 사승(師僧) - 스승 - 스승님 - 스님 설도 있지만 전자가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요즘 평칭으로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승려’는 상가의 소리 번역과 의미 번역이 합쳐진(상가=僧, 衆=侶) 말이다.

 

그러니까 불교 공동체나 그 구성원 개인을 가리키는 중이라는 말의 본의에는 어떠한 비하(卑下)의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이 아직도 이 말에서 사전에도 없는 비칭(卑稱)의 뉘앙스(語感)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시대의 의도적인 정치적 이미지 메이킹 탓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주된 요인은 고려시대 후반기부터 쌓아 온 당사자들의 업장(業障) 탓으로 보인다. 그 업장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보다도 상가의 본의(和合衆)를 저버린 탓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말의 본의에 덧붙여 진 뉘앙스는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것을 털어내는 일 역시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역사적 과정을 요구한다. 그러한 역사적 이행(移行)을 위한 실천, 즉 진정한 ‘중’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 지금 이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간절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상가의 정체성은 어디서 무엇으로 확보하는가? 상가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들과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사부대중 각자에 따른 행동규범, 즉 계율에 의해서다. 붓다는 상가의 구성원들이 성분에 따라 지켜야만 할 일정한 행동규범을 제정했다. 이의 준수 여부에 따라 상가 구성원의 정체성과 자격이 결정된다.

 

남자 출가 수행자인 비구는 250가지의 계와 율을 지키고 여자 출가 수행자인 비구니는 348 개의 계와 율을 실천한다. 재가 남녀 신자는 다같이 5가지의 계를 지킨다. 이 적지 않은 항목 들 중에서 4가지는 상가 구성원이면 누구에게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필수 불가결의 실천 덕목이다.

 

윤영해/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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