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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발원문

[스크랩] 20.세 가지 진리의 의의

작성자자비심|작성시간16.05.20|조회수26 목록 댓글 0

탐착서 벗어나야 완전한 평온

 

부처님께서 진리로 확인하고 선포하여 일생 내 거신 세 가지 혹은 네 가지의 진리, 즉 삼법인 혹은 사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이를 논리적 귀결에 따라 차례대로 말해보면, ‘일체의 존재와 현상은 변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존재와 현상에는 영원불변하는 어떠한 실체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인가 영원케 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어리석은 믿음이 갈망과 탐착을 부르고, 그 갈망과 탐착이 고통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어리석음을 깨치고 갈망과 탐착에서 벗어나야만, 완전한 평온의 행복이 있다’라고 정리 할 수 있다.

 

일체의 존재와 현상 중에 그 어떤 것도 영원불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고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소멸하기 때문이다. 우유는 변하여 버터도 되고 치즈도 된다. 버터나 치즈에 있어서 우유는 인(因)이고 습도나 온도 등 발효조건은 연(緣)이다. 일체의 존재와 현상은 이렇게 원인과 조건, 즉 인연에 의해서 생겨난다. 버터나 치즈는 분명 인연에 의한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습도나 온도 등 조건은 항상 변한다는 사실이다. 조건이 변하면 결과는 따라서 변한다.

 

존재.현상은 독존.항존 안돼

영원히 소유할 대상은 없어

 

일체의 존재와 현상은 독존할 수 없고, 자존할 수 없고, 항존할 수 없다. 결과로서의 현재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예외없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성립한다. 즉, 일체의 존재와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소유하거나 영원케 할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불변하는 대상이 있어야 소유든 영원하게든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우리가 그 무엇을 소유하거나 영원케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모든 욕망은 소유와 영원으로 압축된다. 가지고 싶은 욕망과 보전(保全)하고자 하는 욕망 두 가지이다. 그러나 영원한 존재와 현상이란 본래 도무지 없기에 우리의 이러한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잠시 잠깐 소유한듯하지만 순식간에 변하면서 사라져 버린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찰나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거나 보전할 수도 없기에 고통을 겪는다. 또한 얼핏 성공한듯해도 그것이 순식간에 변하면서 사라져 버릴 때 역시 우리는 괴롭다. 이러한 것이 이 세계와 인생의 참모습이다. 안타깝고 억울하지만 찰나찰나 변하면서 사라지기에 결코 소유하거나 영원케 할 수 없음이 이 세계와 인생의 본래 모습이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소유할 수 있고 영원케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것을 어리석음(無明)이라고 한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라고 지혜의 눈으로 볼 때, 그는 괴로움을 이기고 청정함(涅槃)에 이르게 된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라고 지혜의 눈으로 볼 때, 그는 괴로움을 이기고 청정함(涅槃)에 이르게 된다.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존재는 괴로움이다’라고 지혜의 눈으로 볼 때, 그는 괴로움을 이기고 청정함(涅槃)에 이르게 된다. <법구경>

 

결론적으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길은 지혜다. 한다.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세속적 쾌락도, <우빠니샤드>가 말하는 고행도, 모든 도덕가들이 말하는 선행(善行)도, 유신적(有神的) 종교들이 말하는 신의 은총도 아니다. 고통의 원인이 무지(無知)이기에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지혜일 수밖에 없다. 삼법인은 깨달음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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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지장 신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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