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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평설] 일공스님 시집 『누가 나를 알까요』 시세계_류재엽<문학평론가>#2

작성자대공스님|작성시간23.01.19|조회수46 목록 댓글 0

바람과 사랑으로 맞는 그리움

- 일공스님 시집 『누가 나를 알까요』 시세계

봄 다음에 우리 곁에 다가오는 계절은 당연히 여름이다. 여름은 혹서酷暑로 말미암아 견디기 힘든 계절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여름은 왕성한 생명의 계절이다.

여름을 일으키는 바람이

수풀 사이로 흐르고

초록 향기 흐르는 물줄기 다라

추억도 흐른다

버들치 몸을 떨 때

떨어지는 물소리에 놀라

뭇 물속 생명들이

계곡 속에서 춤을 춘다

담근 손발에서 닭살이 돋고

바람이 스쳐 가는

나무숲 그늘 아래

삶의 여유를 음미한다

- 「여름이 왔다」 부분

 

여름은 추억이 많은 계절이다. 추억은 "초록향기 흐르는 물줄기 따라 " 흐르고 물고기마저 "계곡 속에서 춤을 춘다"라고 하여 힘찬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물은 생생력生生力의 근본이다. 생생력은 생명을 키운다. 그래서 화자는 그 생명의 힘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바람이 스쳐 가는/나무숲 그늘 아래/삶의 여유를 음미"할 수 있다.

 

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아름다운 꽃의 의미를 찾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개방적이다. 닫혀진 창이란 없다. 모든 것이 밝으로 열려진 여름 풍경은 그만큼 외향적이고 양성적이다. 여름의 산은 푸른 생명의 색조를 드러낸다. 은폐가 없고 침묵이 없는 여름의 자연은 나체처럼 싱싱하다.

 

작가 김동리는 단편 「황토기黃土記」에서 여름을 "물줄기 같이 퍼붓는 햇볕, 푸른 하늘을 수 놓은 금빛구름, 부드러운 바람, 무성한 나뭇잎, 타는 듯이 붉은 꽃, 맑은 물 속에는 은어, 피라미, 붕어, 송사리, 눈치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거리마다 수박, 참외, 이들이 점점이 나부러뜨려져 있고···"라고 묘사하고 있다. 가히 여름이 전해주는 낭만이다.

님아

소리쳐 불러도

목놓아 불러도

소리치면 칠수록 멀어지는

그대는 먼 산

그리움만 남긴 채

메아리로만

저만치 있는 먼 산

손 내밀어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메아리로만 밀어내는

그대는 먼산

가까이 있는 듯하다

더욱 멀리 있는

- 「먼 산」 부분

 

그러나 여름의 산은 줌체 화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을 갈구해도 먼 산은 내 곁으로 다가와 사랑을 부어주지 않는 님과 같은 존재이다. 자연과 일체화도지 못하는 화자의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자연에 동화되고 자연과 대화하면서 고유하고 싶어 하지만, 여름의 자연은 너무 거대한 존재여서 화자가 감히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먼 산은 자꾸 화자를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찌 할 수 없다. 그래서 "손 내밀어 잡으려 해도/잡히지 않고/메아리로만 밀어내는/그대는 먼 산"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님의 존재가 곧 '먼 산'이 된다.

<『문학예술』 2021 겨울호 P231에 게재한 문학평론가 류재엽(문학박사) 일공스님 시집 제1집 『누가 나를 알까요』 중에서 여름의 시를 평론한 글을 올김>

※ 다음은 가을에 관련된 시를 평론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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