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1952년 3월 27일 ~ 1985년 11월 29일)의 본명은 조용호다. 솔로 가수로 데뷔하기 이전에도 사월과 오월의 3기 멤버로 활약하기도 하고, 어니언스의 많은 노래를 작곡, 작사 하는 등 다소의 활동이 있었지만,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3년 〈이름 모를 소녀〉로 솔로 데뷔하면서 부터이다. 1985년 11월 29일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김정호를 앨범발매 노래수록에 따라 연대기로 엮어 가면1부 작은 새 외기러기(는) 이름 모를 소녀 사랑의 진실, 꿈을 찾아 밤은 가고, (결국) 잊으리라 2부 그날, 새벽길 정 때문에, 빗속을 둘이서, 하얀 나비(는) 하얀 천사의 노래, 달맞이꽃 꽃잎 인생 사랑이야기(를) 푸른 하늘 아래로 3부 나그네(는) 오늘따라 문득, 지난겨울엔 고향 밤바다 등대(위) 달님(에게) 끝이 없는 강(처럼) 기도(하며) 4부 한세상에 태어나,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님(은) 어느 날 갑자기, 세월 그것은 바람 사랑가(를 부른다) 그의 음악인생을 대별하면 1974년(이름 모를 소녀), 1975년(하얀 나비) 절정기를 맞고 대마초 사건으로 오랜 공백기를 거쳐 1983년(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려는 순간 1985년 요절 한다 애석하게도 그의 노래는 많지 않고 실질상 활동한 시기도 짧다 한국 가요사에서 공공의 적 “대마초 사건”과 안타까운 요절 탓이다 그럼에도 가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아직도 열성팬이 많다 앳되고 곱상한 용모와 왜소한 체구에서 어찌 그토록 처절하게 애절한 고음을 토해내는지 경험상 김정호 노래를 부를 때면 온몸에서 진이 빠진다 김정호 자신이 노래 할 때도 땀이 맺힐 정도 불렀다고 하는데 혼신을 다해서 부르지 않으면 흉내 내는 것으로 그칠 뿐인 노래 김정호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불렀을 때 제 맛을 느낄 수 없는 이유리라 그에게는 대충이나 적당히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토해내는 노래인지라 진정성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 그의 노래가 딱히 어렵지는 않은데 제데로 맛을 내며 부르기엔 너무~ 힘들다 (허약한 상태에서 부르면 두통과 복통을 유발하며 단 한곡만 불러도 유난히 허기진다) 슬픈 노래를 불렀던 다른 가수들의 노래들을 가짜 슬픔으로 전락시키고 진정 슬픈 노래가 뭔지 제데로 보여주어 무늬만 슬픈 가볍고 “슬픈 척”한 노래들을 초토화 시키면서 지금도 슬픈 노래 대표가수로서 부동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워낙 독특한 가수인만큼 그의 후계자는 아직 뚜렷하게 없지만 김정호의 창법과 작곡은 1980년대 이후 김두수에게 계승되었다는 평이다 특히 "꽃잎"에서 어쿠스틱 기타 전주는 김두수의 여러 곡에서 '업데이트'된 형태로 남아있다 김두수는 1980년대 초 김정호가 운영하던 무교동의 생음악 살롱 [꽃잎]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평생 가난했던 김정호를 도우려던 지인의 도움으로 살롱 운영이 가능했다) 모든 노래들이 김정호를 거치면 때깔이 바뀐다 트로트의 반발로 포크가 태동하였기 포크진영에서는 트로트를 멸시했던 분위기속에서 (아직도 포크는 고급이고 트로트는 저질이라는 이분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1981년 고전 트로트 곡들을 취입하며 색다른 맛을 선보인 적이 있다 장르가 다른 싱어송 가수가 앨범 전체를 다른 장르에 남의 노래만을 부른 희귀한 앨범이다 흔희 그를 동시대 포크가수들과 함께 묶어서 분류하는데 5음계 구성의 노래들(하얀 나비, 작은 새)이나 트로트 앨범취입과 마지막에 북과 괭꽈리에 열광하여 국악가요로 전도된 사실등은 단순하게 포크가수로 보기엔 그의 스펙트럼이 넓고 색다르다 그의 음악역정을 보면 포크는 지나가는 징검다리일 뿐 최종적으로는 한국형 가요를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 보인다 그가 좀 더 살았다면 국악가요의 명곡들을 보유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하얀 나비는 당시 학생들이 시험 후 전국적으로 합창했던 국민가요였다 “음~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을...” 가사면으로 볼 때 직계송은 아마도 이선희의 “아~옛날이여”정도쯤 될런지 킴 칸스의 “베티 데이비스 아이”가 1년간 전국방송을 휩쓸 때 공교롭게도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가 함께 방송되었다 탁성의 창법이 판박이라 김정호 팬으로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었다 한국의 대표 가수중 한명인 김정호가 회심의 역작으로 들고 나온 게 고작 남의 창법 따라 하기라니 “이제 그도 한 물 갔구나”로 애써 외면했었다 그 후 그가 지병 속에서 피를 토하면서 부른 노래라는 걸 알았을 때 “병 때문에 창법이 변한 것으로 모창은 아니었구나” 안도감과 (시간적으로 고찰 해 봐도 모창 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노래에 대한 치열한 열정에 놀라고 예전과 다른 음악 변모에서 기대감을 갖었다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의 이동원 버전도 절창이라 강추한다 이동원 버전을 듣다보면 김정호 원곡의 훌륭함이 부각 된다 때론 남이 부른 노래에서 원곡의 위대함을 발견 한다 아~ 그러나 고독한 하얀 나비는 끝내 지병을 못 이겨 힘없이 날개를 접고 하얀 천사처럼 슬픈 미소만 남기고 떠났다 그에 대한 평가중 이견 몇 가지만 적는다 1) 김정호는 恨의 노래를 불렀던 恨의 가수다 2) 그의 노랫말을 가리켜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울림이 담겨있다 1)+2)를 묘하게 결합해서“한국적 정서인 한을 노래한 가수”라며 악순환의 재생산이 떠돈다 恨 :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원망과 한이 응어리진 마음 한은 섬뜩하고 기분 나쁜 용어로 폐기처분해야할 용어다 한국적인 정서와 한은 절대 동가물이 아니다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울림의 노래를 부른 건 적절한 평이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김소월을 연상 시킨다 나는 그를 근원적인 슬픔을 노래하며 “슬픔을 승화시킨 가수”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노래엔 슬픔이 정화시키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 (슬플 땐 슬픈 노래를 듣는 게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사실은 호르몬 작용으로 설명된다) 3) 김정호는 천재 가수다 김정호가 작곡한 곡의 형식은 'A-B-C-D'으로 불러야 할지, '기-승-전-결'로 불러야 할지, 'verse1 - verse 2 - pre-chorus - chorus'로 불러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꽤 복잡한 형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한 곡을 시작하는 화성이 I도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이하다. 예를 들어 "나를 두고"는 ii도 화성으로 시작하고(G 장조이므로 Am), "기다림"은 IV도 화성으로 시작한다(C장조이므로 F). 상기 형식들은 대중음악에서 기피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이 있는 이유는 아직 미스테리다. 천재가수로 불리는 가수들은 많고 김정호 역시 천재가수 계열일수도 있다만 천재가수로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많아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神氣”다 죽음과 노래의 선택길에서 노래를 선택하여 온몸을 불사르고 산화한 가수 그리하여 그의 마지막 앨범이 탄생한다 그의 노래 “님”의 경우 “소리가 가락을 넘어선다”는 평이다 이 극찬은 단순하게 가창력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간다~ 간다~” 이미 죽음을 코앞에서 감지하며 부른 자신의 초혼가이기도 하다 내성적이고 수줍움 많아 평소엔 구석에서 웅크리며 겉돌던 그가 음악을 대할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그는 천상 가수다 자신도 가난에 허덕이면서 가난한 이들을 남몰래 도왔던 의리의 사나이 그의 수입으로 볼 때 자신만 챙겼다면 평생 가난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사후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벌써 30년이라니 현재 가수나 노래가 30년후에도 기억될 만한 게 몇이나 될런지 1986년 추모앨범이 발매되었고 2013년 “불후의 명곡”으로 방송되며 추모비 건립도 추진중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함부로 속단하긴 이르지만 한국 대표시인 김소월이나 한국형 락(미인)의 신중현처럼 “김정호 덕분에 순수 한국형 감성의 가수를 보유했었다”는 자랑은 과언일런지 열독해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김정호에 대한 부족한 설명은 여유가 있을 때 개별곡 감평으로 넘깁니다 추신 : 국내가수에 대한 평가는 자제를 하는바 특히 김정호는 고인에 대한 예의와 팬으로서 객관성과 유머력이 결여된 점 부디 양해바랍니다 필히 쓰고 싶었던 가수중의 한분이기에 제법 공력을 들였고 짐을 던 느낌이지만 부족한 필력에 송구스러워 감히 평론이라 하지 않고 소감론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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