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형제 사도 바오로
-고난회 총시노드 (2008. 9.8) -
Donald Senior, C.P
박 태원 C.P 번역
아시는 바와 같이 올해는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우리 고난회원들은 또 한 사람의 바오로를 공경하는데 바로 수도회의 창립자인 바오로 다네이 입니다. 이 두 위대한 성인사이에는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두 분 모두 예수님이 받았던 고난을 기억하고 이에 헌신한 분들입니다.
오늘 피정의 마무리로 사도 바오로가 지녔던 고난회원으로서의 면모를 묵상하고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또한 사도 바오로의 삶과 신학으로 우리가 당면한 구조조정이라는 도전을 비춰보도록 합시다.
2008년 6월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로마의 성벽 바깥(St. Paolo fuori della mura) 에 위치한 성 바오로 바실리카에서 공식적으로 바오로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의 많은 이가 이 아름다운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을 겁니다. 내년 1월이면 교황 요한 23세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겠다는 의향을 이 교회에서 밝히신지 50주년이 되기도 합니다.
성.바오로 바실리카에 가보신적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도 교회 앞의 정원에 세워져 있는 매우 인상적인 사도 바오로의 조각상을 기억 하실겁니다. 조각상이 드러내는 모습은 매우 극적이고도 독특합니다. 기도때 사용하는 숄같은 것으로 이마까지 덮은 바오로는 하느님의 말씀인 칼을 꼭 움켜쥐고 뭔가를 깊이 숙고하며 서 있습니다. 다소 지친 듯이 보이고, 불같은 열정은 여전하지만 조금은 완화되고 성숙한 분위기, 열정적으로 투신하여 소용돌이 치는 삶을 살았던 그가 이제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바오로가 살았던 시대는 개인적으로나 좀 더 넓게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인 세계에서나 옛 세계가 죽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나는 이즈음 사도 바오로에게서 커다란 위안을 받습니다. 그의 신학이 갖는 깊이와 힘에서만이 아니라, 후기 신약성서에 씌여있는 것 같이 그의 사도적인 삶의 구체적인 예를 통해 커다란 위안을 받습니다.
시대의 커다란 변화와 씨름하고 있는 우리 고난회원들도 앞으로의 일을 위한 구체적인 모범과 영감을 얻기 위해서 사도 바오로를 주의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마도 초기 교회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복음 때문에 심원한 회개체험과 변용을-개인적인 차원에서나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투신했던 종교적인 전통차원 모두에서- 체현한 사람일 겁니다.
잠깐이나마 사도 바오로가 그의 생애동안 겪어야 했던 변화를 생각해 봅시다. AD 8년경 바오로는 지금의 터어키인 남부 소아시아의 주도인 타르수스에서 출생했습니다. 타르수스는 당시 학문과 문화로 이름이 났었고, 철저히 그레꼬-로망형식의 도시였으나 무시할 수 없는 한 집단으로 유대인 소수인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바오로가 신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압니다- 그는 이 유산을 매우 소중히 간직했고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로마시민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그의 부친이 어떻게 로마시민이 되었는지는 아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로마군대와 관련이 있었던가 아니면 해방된 노예였을 수도 있습니다. 신실한 유대인이면서도 로마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이런 이중적인 유산을 통해 바오로는 자신 안에 종교문화적인 혼합을 이루었을테고 그것은 후일 그의 미션에 열쇠가 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비로 섭리하시는 하느님, 함께 아파하며 억눌린이를 해방시키시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끈기 있고 단호한 신앙은 유대교적인 유산에서 물려 받았습니다. 또한 같은 유산으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도덕적 감각도 이어받았습니다. 로마적인 유산과 타르수스에서의 고전교육으로부터 바오로는 지중해 세계의 그 모든 다양성과 역동성을 알게 되었고 더넓은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로마가 그리스인들로부터 물려받은 수사학과 설득의 기술도 배웠습니다.
유대교적인 경건함에 빠져 있었던지 아니면 그리스의 고전문학을 훈련받고 있었던지 젊었던 바오로가 타르수스의 어느 나른한 오후에 미래의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된 갈릴레아 사람을 위해 거의 16,000 키로를 대부분 걷거나 아니면 그가 그리도 두려워 하던 바다로 여행을 하리라고 꿈이라도 꿀 수 있었을까요? 바오로는 그 갈릴레아 사람을 통해 이방인을 포함하여 온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계시되었으며, 그분에게 하느님이 온전히 현존하셨음을 믿게 되리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요? 자기자신을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 이며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기에 열심한 사람” 이라고 표현하던 바오로가 그후 2000여년의 역사에서 “이방인들의 사도” 로 알려지게 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오로와 회심:
중요한 사실은 경건하고 열정적이었던 유대인, 타르수스의 바오로는 마음으로부터의 심원한 변화를 체험한 사람으로서 또한 예수의 특별한 추종자로서 초기교회의 이방인 선교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신약성서는 바오로의 삶에서 일어났던 결정적인 전환점에 대해 2가지의 그림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사도행전의 극적인 회심이야기에서 볼수 있습니다. 독선적인 열정에 사로잡힌 바오로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며, 스테파노가 돌로 맞을 때 그것을 찬동하며 돌질하는 사람들의 옷을 맡았었고, 이단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인들과 아이들을 끌어내려던(사도행전 7:58-8:3; 갈라디아 1:23) 그가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현존의 힘에 의해 땅으로 고꾸라집니다. 하느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빛에 눈이 먼 그는 역설적으로 이제 처음으로 진리를 보기 시작합니다(사도행전 9:3-19; 22:6-16; 26:12-18). 초기 공동체가 피어나던 역사를 기록한 루까의 사도행전에선, 크리스챤들을 괴롭히고 박해하던 바오로는 이제 “선택된 그릇” - 예수의 복음을 유데아로부터 안티오키아로 나아가 서쪽 그리이스와 마침내 로마까지 전달할- 이 됩니다.
심지어 이러한 섭리도 아이러니를 통해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에 감으로서 사명을 완수하지만, 순수히 선교를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죄수로서 잡혀가 제국의 수도에 가택연금됨으로서 섭리를 실현합니다. 루까는 초기교회가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위대한 이야기를, 비록 바오로가 갇힌 상태였지만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히”(사도행전 28:31) 복음을 전하였음에 주목하면서 마무리 짓습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이 그리는 바오로의 회심은 어떤 의미에선, 외부에서 강요된 - 그가 어
떻게 해볼 수 없는 놀라운 체험으로서 바오로의 종교적인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고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난 뒤 이 인생을 바꾸어 버린 회심에 대해 숙고하면서 바오로는 자신의 말로 다른, 혹은 보완적인 그림을 제공합니다. 여기에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상에서의 극적인 사건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습니다(고린토 후서 11:32; 갈라디아 1:17). 세월이 흐른 후 그 일을 돌아보는 바오로에게 보이게 된 것은 하느님은 언제나 - 심지어는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역어지기 이전에도- 그런 심원한 변화를 위해 부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갈라디아인 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성소를 곰곰이 돌아보며 위대한 예언자의 말씀인 이사야 49,1과 예례미야 1장을 인용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예례미야 1:4-5). 급격한 변화의 촉매가 되었던 것은 단순히 격동하는 외부적인 사건이 아니라, 의도하셨던 바를 실현키 위해 항상 그를 부르고 계셨던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렇게 동시에 서로 다른 두가지 모습을 띄지만 둘 다 진정한 삶의 양상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으론, 외부의 요인에 의해 강요 당합니다: 세계적인 사건들, 경제, 변화하는 교회의 모습, 문화와 역사의 움직임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똑같이 중요한 차원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손바닥위에 있음을 믿으며, 우리의 삶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고, 모든 시대에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 자신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의 모든 상상을 넘어서 우리를 고향으로 인도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바오로의 삶과 신학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려는 미션의 결과다:
우리개인의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전체적으로 반성할 때 형제인 바오로에게 배울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모든 역량을 하느님에게 받은 사명을 완수하는데 쏱았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었는지 그것은 바오로의 삶에 내재된 여러 신비중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복음메시지의 아름다움을 만나던 바로 그 첫 순간부터, 바오로는 동료인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세계에까지 이 기쁜소식을 선포하라고 불렸음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갭이 없었습니다; 오랜시간 숙고한 후에 그런 결정에 이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복음에 모든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힘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바오로의 절박한 선교사적 논리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중 유명한 다음귀절을 보면 명백해집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3-15).
비록 바오로는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첫 순간부터 이방인의 선교사로 불리웠다고 증언하지만(갈라디아 1:15-16), 바오로가 자신의 성소를 개발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적잖은 시간을 다마스커스 근처의 시리아에서 기도와 고독속에 보낸 후 잠깐동안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 의논했습니다(갈라디아 1:17-20). 그후 시리아와 킬리키아(남부 소아시아에 있는 그의 고향지역) 에 갔다가 마침내 그의 첫 번째 진정한 선교전진기지가 될 안티오키아로 오게 됩니다. 바오로의 시대에 안티오키아는 (레바논과 시리아의 접경지역인 이곳은 현재 터어키의 영토)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번성하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고 압도적으로 이방인이 많았지만 꽤나 중요한 유대교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여기서 처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크리스챤” 이라고 불렷다고 전하며, 여기서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다른 사람들의 인도하에 이방인 크리스챤을 위한 그의 메시지를 갈고 닦으며, 이곳으로부터 그는 선교여행을 시작하여 소아시아를 거쳐 서쪽으로 마침내는 그리이스까지 진출하여 처음으로 유럽인의 땅에 첫발을 딛게 됩니다. 바오로는 그리이스의 필립비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웁니다(사도행전 16:11-12).
요즈음식으로 말하자면 성소도 적고 재정상태도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에서도 바오로는 계획을 축소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에서 그가 지적 하는대로, 바오로의 의도는 지중해 주변세계의 북쪽에 교회를 세우고 마침내는 스페인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러므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이방인들을 얻고,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은총의 완수로 모든 이스라엘인들까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바오로의 미션이 완수되었더라면! 물론 바오로는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지만,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이방인과 동족인 유대민족에 대한 격렬한 관심이 그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있게 한 정열이었습니다.
“고난회원” 바오로
바오로가 본래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으며 창립 멤버도 아니었음은 잘 아실겁니다; 루까가 기록했듯이 그는 시작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다녔으나 나중에 뽑히게 된 마티아와도 달랐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2번째 세대 출신이라는 위상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바오로 자신이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을 박해했다는 사실입니다. 바오로는 스스로 자신을 평가했듯이 “때에 맞지 않게 태어난” 자로 머므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바오로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고 복음에 대한 열정적인 투신을 못하게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오로의 열정은 부분적으론 의심할 바 없이 자연스럽게 타고난 불같은 기질에 연유합니다. 전혀 침착한 기질의 점액질 인간이 아니었던 바오로는 갈라디아서와 같은 공적인 편지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권하는 크리스챤들이 그들 자신에게나 칼을 쓰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거나 꽤나 이름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이런 인사말로 시작합니다: “아 어리석은 갈라리아 사람들이여!”. 아마도 바오로는 함께 살기에는 쉽지 않은 사람이었을겁니다--그의 사목일이 주로 순회 사도직이었음도 우연은 아닐것입니다. 그가 제일 잘 알고 상당한 기간 머믈며 살았던 공동체는 코린토 교회인데, 바오로와 고린토 교회 사이의 트러블에 대해서는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열정을 지속시키는 불길은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기쁜소식에 대한 격렬한 투신에서 나왔음도 자명합니다. 한때 바오로는 그의 공동체에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신다.” 그를 사도직에 내몬 것은 바로 이 사실이며, 이로부터 그의 설교와 신학이 나왔던 것입니다. 바오로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하고, 편지에 씌여진 심상과 영향력을 통해 크리스챤의 의식을 영원히 바꾸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열정이었습니다. 편지는 매우 급히 씌여졌으며 그로인해 가끔 의미가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편지는 한번에 한명이상의 서기가 바오로의 구술을 통해 폭발하듯 분출되어 나오는 사상을 받아 쓴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영감받은 성서의 저자는 주저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형제인 바오로의 글에는 더러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베드로 후서 3:16).
바오로의 사상, 설교, 저작과 신학 그리고 그의 가르침은 그자신의 열정적인 제자직분과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바오로의 신학은 남에게서 빌려온 것이거나 유행을 따르는 것이거나 아니면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목신학자인 타르수스의 바오로가 가졌던 비젼은 현실에서 신앙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으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의 열정적인 투신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는 전통의 수령인이었으며 또한 책임있는 전통의 수호자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처음 받은 것을 당신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교회와 대화하며, 교인들의 진정한 크리스챤 체험으로부터 신학적인 비젼을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코린토 교회의 파벌주의에 대한 응답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자신과 백성들의 영적, 육체적 한계를 직면하는 체험을 통해 약함의 신학; 이방인 개종자들의 종교적 체험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신학; 그레꼬-로망사회에 팽배했던 운명에 대한 두려움에 대비되는 우주적 그리스도의 승리신학.
모델은 명료합니다. 대다수의 크리스챤들보다 더 성서를, 집중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그리고 사목체험을 반성하고 연구할 기회와 특권을 받았고, 전 세계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우리들은 바오로가 가졌던 열정을 조금이나마 나눠받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선포하는 것이 제자직에 투철하게 투신한 결과이기를, 또한 실제백성의 체험과 믿는 공동체의 체험에 뿌리박은 것이기를 바랍니다.
고난회원으로서 우리는 특별히 바오로의 신학과 영성의 핵심은 예수의 고난에 대한 그의 관상에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오로에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실재를 설명해주는 실재였으며 하느님의 진정한 얼굴을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난과 빠스카신비의 빛으로 바오로는 그가 물려받은 유대교 전통의 핵심을 다시 숙고하고 재발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은 또한 모든 민족의 하느님입니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하느님은 권력과 영광이라는 껍데기에서가 아니라 인간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불가사의하게 계시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쏱은 생명에서.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코린토 전서 1:22-25).
바오로는 바로 이 중심으로부터 모든 것을 관상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듯이 크리스챤 생활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바오로가 스스로의 육체로 느꼈듯이 한계와 약함의 체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예수의 십자가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은 가장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구성원에게 가장 큰 영예를 줄 것입니다. 하느님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된 메시아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계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교회)에는 지금도 볼 수 있는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바오로나 그의 공동체가 사도직 수행중에 겪었던 심한 비탄이나 사도적인 고통등은 헛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충만한 생명이 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영원히 보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기억에 사로잡혔던 타르수스의 바오로는 진정 우리의 형제인 고난회원입니다.
확신에 찬 지도자였지만 독점적이지 않았던 협력자였던 바오로
우리는 또한 바오로로부터 사도적인 리더쉽에 대해 뭔가를 배울수 있다고 봅니다. 그의 편지를 읽는 독자들은 바오로가 매우 강한 에고를 지닌 사람임을 알아보는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겁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역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임을 매우 잘 의식하고 있었으며 자주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가 쓴 거의 모든 편지의 시작과 끝은 이 말로서 장식됩니다. 갈라디아서와 코린토 후서의 경우와 같이 그의 사도적인 권위가 공격을 받을 때, 그의 응답은 매우 강력하고도 단호했습니다.
그러나 자주 그래왔듯이 바오로를 초대교회에 우뚝 솟은 조금은 고독하고 거대한 인물 혹은 두려움 없이 홀로 지중해 세계를 누비며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도움을 받는 일 없이 복음의 씨를 뿌리고 다닌 “고독한 방랑자” 쯤으로 여기는 것은 치명적인 오해입니다.
이러한 심상이 거짓이란 것은 바오로 자신의 증언을 통해서도 자명합니다. 최근에 바오로에 관해 얻은 매우 중요한 통찰중 하나는 그가 많은 협조자로 이뤄진 특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일했다는 점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져야 할 권위에 대한 책임이라든가 리더쉽이 요구될 때 회피한적은 없으나, 그는 이것을 자신의 고난신학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공동체 신학에 맞게 행사하였습니다.
유명한 로마서 16장의 맺는 말씀은 이에 대한 가장 뛰어난 증거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한번도 방문해보지 못한 교회 그러나 틀림없이 그에게 매우 중요했던 교회에 대한 편지를 맺으면서, 로마에 있는 크리스챤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이를보면 바오로가 견지하였던 교우관계의 폭과 그가 지녔던 독점적이지 않은 정신은 물론 초기 크리스챤들의 네트워크와 기동성을 매우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의 항구 켕크레의 “포이베, 부제”(바오로는 그냥 부제로 부르지 여성부제라고 하지 않는다)부터 시작합니다. 그녀는 아마 당시 로마를 방문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포이베를 로마인들에게 추천하며 그녀가 자신을 도운 사람이며 좋은 친구이므로 성인처럼 받아들이라고 권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협력자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인사하며 그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으므로, 자신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로마의 유대 크리스챤인 이들 부부는 오래전에 코린트로 이주해가서 바오로가 도착 하기전 가정교회를 세우고, 제국의 주요도시인 코린트에서 바오로가 성공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었습니다.
리스트는 계속됩니다: 유니아와 안드로니코스; 바오로가 “사도들”(여러세기동안 번역자들을 혼란에 빠뜨려, 이런식의 남성형은 그리이스말에 없지만 유니아를 “유니아스” 로 부르게 했다) 이라고 부른 또 다른 부부입니다. 바오로는 자신보다 먼저 그들이 “그리스도안에” 사도들이라고 합니다.
바오로는 에패네토스에게 인사합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믿은 사람입니다. 이제 바오로는 인사하는데 온전히 열중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애를 많이 쓴 마리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암플리아투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협력자인 우르바노와 내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는 아펠레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아리스토불로스의 집안 식구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나의 동포 헤로디온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주님 안에 있는 나르키소스의 집안 식구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애쓴 트리패나와 트리포사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애를 많이 쓴, 사랑하는 페르시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선택을 받은 루포스, 그리고 나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아싱크리토스, 플레곤, 헤르메스, 파트로바스, 헤르마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필롤로고스와 율리아, 네레우스와 그의 누이 올림파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로마서 16:6-16).
바오로는 솔직하게 친구들과 협력자들에게 편지의 말미에서 숨이 차도록 친근한 인사를 건넵니다. 그 리스트의 길이를 보면 놀라울 지경입니다. 29명의 그리이스와 유대인 이름이 나열되고(그중 10명은 여인이다), 계층도 다양하여 귀족, 자유인, 노예가 망라되어 있습니다.
사도직 수행을 하면서 알게된 사람들의 리스트는 아마 끝없이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는 결코 혼자 여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자신의 편지에서 “협조자” 란 칭호를 사용하며 그의 편지조차 협력의 일환이고, 최소한 2개의 편지는 확실히 공동저작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오로의 협력감각이 단순히 개인적인 스타일이거나 필요성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바오로가 가졌던 하느님에 대한 심상,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느님, 모든 백성을 모아들이시는 하느님이란 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복음에 대한 비젼과 신학적 확신 그리고 그의 깊은 신앙체험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확신은 일관되게 바오로가 견지했던 협동적인 교회의 상, 여러지체가 있는 몸, 한 영아래 결합된 은사들, 하느님의 살아있는 성전안에 배열된 많은 기구들과 물질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은 지칠줄 모르는 그의 사도직의 목표였으며, 아무리 눈부신 은사일지라도 사랑과 공동체의 유대밑에 종속됨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오로가 창안한 약함의 신학은 어떤 위상이나 권위를 소유하려는 유혹에 대한 궁극적인 저지선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통해서, 또 그의 생애 초창기에 잘못된 확신과 독선적인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교회를 박해했던 체험을 통해 그가 얼마나 약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고, 자신이 약할 때 하느님은 강하므로 역설적으로 자신의 강함은 자신이 약할 때 임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을 관상함으로서 바오로는 오만하게 자신과 자신의 권위를 믿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고난받는 종인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살도록 자신의 생명을 주었으며 궁극적으로 진정한 권위가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였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바오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사도적인 성소에 확신을 가져야 하나 그 방식은 독점적인 것이어서는 않됩니다. 한 수도회로서 타인을 받아들이고 협력하는 것이 무슨 지나가는 유행이어서는 않되며 이기적인 편의를 위한 신학적 포장이어서도 않됩니다. 그것은 복음의 표현이어야 한다. 바오로는 그것을 잘 알았고 그것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쇄신되고 고난회의 미션을 지속하려면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 더 상호존중과 공동목표를 갖고 타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함을 잘 알 것입니다.
바오로: 고통을 겪은 사도며 절망하지 않고 희망하던 사람
바오로의 마지막 특성을 이야기 하지요. 그의 편지를 읽으면 그가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며 동시에 이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수 있었음도 알게됩니다. 바오로는 대담한 계획, 그중 어떤 것은 무모할 지경으로 대담무쌍한 계획을 세우고 사도직을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로마서 15장과 다른 편지를 통해 우리는 바오로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지중해 주변세계를 죽 돌아다니며 크리스챤 교회의 씨를 뿌리고 로마세계에 불을 놓아서 모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인들의 질투를 유발시켜 그들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고 끝내는 하느님께 세상을 모두 봉헌하고자 하였습니다.
Not bad! 바오로의 분에 넘치는 활력은 시카고의 위대한 도시설계자의 구호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다란 계획은 세우지도 마라”! 그러나 바오로의 이런 대담한 희망은 냉엄한 현실과 부딪힙니다. 예를들어 바오로는 유대교가 계속하여 존속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않은 듯 하며 또한 대다수 그의 동료 유대인들이 자신이 그랫듯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그는 매우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9장을 시작하는 문장은 매우 감동적이고 믿을수 없을만큼 솔직한 자서전적 고백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리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로마서 9:1-5).
“사실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리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바오로가 이런말을 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의 가슴을 쥐어뜯던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바오로의 마음은 단순히 결코 실현되지 않았던 꿈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세우고자했던 몇 가지 일에 대한 내부의 집중포화로 인해 찢어졌습니다. 나는 바오로가 살아생전 이방인을 위한 율법에서 자유로운 복음이란 그의 비젼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찾는 다른 일단의 크리스챤 지도자들은 그의 걸음마다 따라다니며 그의 정통성에 의문을 표했고, 바오로가 개종시킨 사람들의 교회에 대한 이해를 돌려놓았으며, 그의 사도적인 권위에 의심의 씨를 뿌렸습니다.
바오로의 고통과 낙담은 코린토 후서 11의 유명한 구절에서 끓어 넘치게 됩니다: 어느 우울한 월요일처럼, 바오로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하게 되고 고통과 낙담의 급류는 유대교 회당의 지도자나 목숨을 위협하는 로마공직자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동료 사도들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를 향합니다: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조게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나도 부개하지 않겠습니까?” (코린토후서 11:22-29). 모든게 좋지 않은날 어떻냐고 물어본적이 있는가? 그들은 실제로 어떻다고 대답하던가?!
바오로는 전혀 석고상과 같은 성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코 추상적인 역할모델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졌던 교회의 비젼이 매우 의심받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살아 생전 교회에 대한 자신의 비젼이 확고하게 자리잡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믿습니다. 분명히 그는 코린토에서 에페소에서 테살로니카에서 그리고 더욱 확실히 예루살렘이나 체사레아, 로마의 가택 연금상태에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로 괴로워하며 잠못 이루는 밤을 지새웠을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오로는 모든 위대한 사목지도자들이 그러했듯이 그도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그의 희망을 굳게 잡았습니다. 요즈음같은 시대에 로마서 8장의 문장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우주적 차원의 의사인 바오로는 수술대위에 신음하는 창조세계와, 인간성이란 몸체를 올려놓고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듯 보입니다. 구원의 드라마를 재음미하듯이, 바오로는 들먹이는 세상의 가슴에 귀를 대고 듣고서는, 하느님의 자녀와 창조세계 자체에서 들려오는 이 신음소리가 죽음의 단말마가 아니라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고통의 신음이라고 진단합니다.
바오로는 한번도 자신의 원초적인 신앙체험을 손에서 놓은적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된 그리스도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께서 하신 깨질수 없는 계약의 언질이며,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간단없는 구속적인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그 무엇이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라고 바오로는 묻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목자로서 불림을 받은 사람, 교회의 내부에서 살며 그 모든 스캔들과 좌절에 의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공동체에 대해 높은 이상을 지녔지만 분열과 갈등이라는 슬픈 현실을 잘 알았던 사람, 고통스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위대한 희망을 지폈던 사람의 가슴에서 짜내어진 물음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서 8:38-39).
결론
로마교회에선(따라서 우리 고난회 공동체에서도) 두 사도가 기억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는 두 분 다 로마교회에서 일했습니다; 두 분 다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며 로마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두분의 기억이 로마교회의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크리스챤 공동체라는 유리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온 베드로의 미션은 자라나는 공동체의 여러 부분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크리스챤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범주를 넘어서서 예기치 못한 길로 빨리 나아갈 때 가끔 멍하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로마인 백부장인 고르넬리우스가 체사레아에서 세례를 청할때; 에티오피아인 에눅이 가자로 가는 길에서 성서의 의미를 물을 때;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그리이스인들이 세례를 청할 때. 그의 역할은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속성과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바오로의 역할은 그 교회에 길들여지지 않은 미션의 정신, 열정과 대담한 사상을 불어넣는 것이며 극적인 변화와 하느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위대한 자유, 세상을 포용하는 성령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이방세계가 신앙의 불로 타오르고 그 빛 속에서 하느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이 예수께 대한 신앙을 갖게 되는 원대한 우주적인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것이 바오로의 전 생애, 격렬한 회개의 순간이기도 했던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신비스런 첫 만남서부터 시작하여 지중해 세계를 떠돌며 크리스챤 공동체를 세우며 환희와 곤란을 겪던 시절을 거쳐 투옥과 순교의 비참한 최후에 이르기 까지 그의 전 생애를 이끌었던 비젼 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살아 생전 그 비젼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결코 그 비젼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그후의 크리스챤 세대들이 그의 족적을 뒤 따를만큼 위대한 특성을 지녔던 사람입니다: 교사들, 사도들, 선교사들, 사목자, 심지어는 관구장들까지도. 그는 커다란 고통에 직면하면서도 희망을 견지 하였습니다. 생애 마지막에 바오로는 그의 검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는 그때에도 검을 단단히 쥐고 있습니다.
고난회 공동체로서 우리는 커다란 변화, 우리의 비젼과 삶의 양식에 대한 구조조정을 숙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새로운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받았던 고난회의 유산을 물려줄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때는 묵시록의 분위기가 옅게 베인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잘 완수하기 위해 바오로를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열정적인 제자이며 체험을 통해 신학자가 된 사도; 사도적인 부르심과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졌지만 그 보물을 독점하지 않고 타인과 나누었던 사람; 위대한 꿈을 꾸고 그로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신앙에 뿌리를 둔 그 희망을 꺽지 않았던 사람.
얼마전 미네아폴리스에서 가톨릭 교사들을 위한 모임에 강의를 하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기도를 이끌던 한 부인이 이런 자신의 반성을 나누었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여인들에게 주어졌던 역할은 두 가지의 매우 다른 직무였다: 산파의 역할과 장례를 위해 죽은이를 염하는 일. 그녀는 전혀 냉소나 회한의 기미없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회와 관련하여 때로는 자신이 지금 장례를 위해 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산파의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녀가 사랑했고 존경했지만 이제 그 생명이 마지막에 다다른 어떤 사람의 몸을 장례준비 시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아직 모르는 놀라운 아이의 출생을 돕고 있는 것인지. 교회와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의미하는 바를 알 것입니다.
진정 지금은 이시대와 문화에서 깊이있게 크리스챤 생활을 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믿을 수 없을만큼 전조가 밝은 시대입니다. 특히 그의 사심없는 죽음을 통해 세상에 충만한 생명이 되신 십자가에 처형된 그리스도를 따라 복음의 사목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겐 더욱 좋은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