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설레었지요
- 황인숙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리면
나는 삶을 파랗게
느낄 수 있었어요
움직였지요
삶이 움직였지요
빌딩도 가로수도
살금살금 움직였지요
적란운도 숲처럼 움직였지요
나는 만물이 움직이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가끔 발을 멈췄어요
그러면 그들은 움직임을 멈췄어요
그들은 나보다
한 발 뒤에 움직였어요
달린다, 달린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우리는 움직임으로 껴안았지요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어요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립니다
전신이 팔다리예요
바람이 자기의 달림을
내 몸이 느끼도록
어둠 속에 망토를 펄럭입니다
나는 집 안에서
귀기울여 듣습니다
바람은 달립니다
어둠의 겹주름 속을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 황인숙, 詩 <그때는 설레었지요>
「자명한 산책」 중에서
덧붙이는 말: 일요일날 지리산을 다녀오고, 가슴에 남았는데. . . 오늘 시 한편 읽다가 문득 다시 떠올라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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