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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으면 가만히 서 있으라. - 류시화 페이스북

작성자미르|작성시간13.10.26|조회수54 목록 댓글 2

"길을 잃으면

가만히 서 있으라"


태어나고 자란 시골 마을에서는 길 잃을 염려가 없었다. 어디든 아는 길이었고, 길을 잃는다 해도 마을 사람 모두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러나 삶은 예고 없이 변화를 준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서울로 유학 온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길들을 끝없이 지나 판자촌 동네에 도착했다. 그리고 첫날부터 길을 잃었다. 골목들을 헤맬수록 점점 더 멀어졌다. 두려움은 어서 빨리 길을 찾으라고 재촉했지만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도착'이 아니라 실종이었다. 그 순간부터 삶은 미로투성이였다. 나 자신이 낯선 사람이 되었다. 꿈에서도 낯선 길을 헤매는 날이 많아졌다.


"가만히 서 있으라"


미국 시인 데이비드 웨고너는 <길을 잃으면(Lost)>이라는 시의 첫 행을 이렇게 시작한다.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 잃은 아이처럼 영영 미아가 될 것이다. 두려움이 우리를 미아로 만든다. 모두가 내가 누구인지 알던 장소를 떠나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도시로 온 것은 영혼의 어둔 밤으로 내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쁜 소식은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이고, 좋은 소식은 그것을 계기로 길을 찾아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으라

네 앞의 나무들과 네 옆의 관목들은

길을 잃지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길을 잃었다. 고산부족 마을에서는 밀림에서 길을 잃고 한밤중에 두 개의 산을 넘은 적도 있다. 북인도 바라나시의 미로 같은 뒷골목은 몇 번을 가도 출구를 찾기 어려웠다. 장대비 내리는 저녁의 스리랑카는 실종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길을 잃은 것은 나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세상이, 이 눈먼 자들의 도시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밀림과 뒷골목과 도시는 그곳에 그대로 존재했다. 방황하는 것은 나였다.


"네가 어디에 있든 그곳은 '여기'라고 불리는 곳이니

너는 처음 대하는 강한 존재처럼 그곳을 대해야 하고

허락을 구하고 다가가

너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


어느 날 나는 리시케시의 아쉬람에서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만 하면 어디에 있어도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고. 깨어 있기만 하면 길들이 저절로 열린다고. 그때 방황이 아니라 여행이 시작된다. 북인도 평원의 끝, 뭄바이에서 기차와 버스와 '무한정 연착'이라는 인도 특유의 교통 시스템을 이용해 나흘이나 걸려 도착한 히말라야 발치의 그곳 리시케시에서 비로소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 그때 세상은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다. 그 신선함이 삶에 힘과 열정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면 집에 있다 해도 길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와 미래 어딘가로, 감정의 미궁 속으로 실종된 것이다. 나무는 오직 현재에 존재한다. 그래서 아무도 나무에게 길을 잃었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무의 힘이다. 


"숲은 숨을 쉰다, 들어보라

숲이 대답한다

내가 너의 주위에 이 장소를 만들었다

이곳을 떠나면 너는 다시 돌아오리라

'여기'라고 말하면서

갈까마귀에게 똑같은 나무는 없다

굴뚝새에게 똑같은 가지는 없다"


회복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경이감에서 온다. 그 경이감이 힘과 사랑을 되돌려 준다. 신비감을 잃으면 머리의 삶을 사는 것이다. 리시케시에서의 그 경험 이후에도 나는 자주 과거와 미래로, 감정들 속으로 실종되었지만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지금 여기'로 돌아왔다. 그때 모든 사물들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관념 속에서는 그냥 '나무들'이었던 것이, 깨어서 보는 순간 다 다른 나무들로 다가왔다. 사물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집에 날아오는 직박구리 새 중 한 마리를 내가 알아보자 그 새도 나를 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무나 관목이 보이지 않으면

그때 너는 정말로 길을 잃는다

가만히 서 있으라

숲은 안다, 네가 어디에 있는지

숲이 너를 찾게 해야 한다"


이 시는 아메리카 인디언 청년이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하는가?" 하고 묻자 부족의 어른이 들려준 말을 데이비드 웨고너가 시로 옮겨적은 것이다. 부족의 노인은 말한다. 숲에서 길을 잃으면 고요히 멈춰 서라고. 그렇게 하면 곧 힘을 회복할 것이고, 숲은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까 너에게 길을 보여 줄 것이라고. 너는 숲의 일부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는 삶의 일부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삶은 살아 있다는 뜻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삶은 우리를 버릴 수가 없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모두가 나를 아는 장소에서 벗어나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장소로 떠날 때 성장이 시작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야 스스로를 알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는 '무엇'이지 '누구'가 아니다. '무엇'이 아니라 '누구'가 되기로 결정할 때, 많은 것들을 잃지만 더 중요한 '삶'을 얻는다. 


길을 잃으면 더 이상 세상의 인파에 휩쓸려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실종자가 된다. 가만히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관찰해야 한다. 그것이 명상이고 묵상이다. 그때 진정한 삶이 우리를 찾을 것이다. 길이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삶이 내미는 손을 잡고 인디언 전사처럼 용감하게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저자 톨킨은 말한다. "헤매는 자가 다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길을 잃는 것은 삶의 일부이고, 길을 찾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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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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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으뜸 | 작성시간 13.10.26 그저 녜합니다^^
  • 작성자샘물 | 작성시간 13.10.26 감각을 다스려 내면에 주의를 모읍니다.
    자~알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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