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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과 사과

작성자김상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19 목록 댓글 0
고사목이 된 동산의료원의 사과(능금)나무

사과를 능금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까지 한국인들에겐 사과보다

동산의료원의 사과

능금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다. 제1회 대구능금대회에는 사과아가씨 선발대회가 아니라 ‘능금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렸다는 것만 봐도 사과보다는 능금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였음을 알 수 있고. 유명가수들의 노랫말에도 능금나무 밑에서(현인), 능금이 익을 때(문주란), 능금 꽃 피는 고향(페티 김), 능금 아가씨(은방울 자매), 능금 빛 순정(배호) 같은 노래 말에 능금이 나온다. 대구경북 과수를 전문으로 하는 ‘대구경북능금농협’에도 1917년 설립에서 긴 세월 능금으로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길옥윤 작사 패티 김이 노래한 ‘능금 꽃 피는 고향’은 지역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로 대구지역에서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애창곡이기에 금호강변 동구 지저동에 노래비 까지 1971년에 세워 저 있으며 ‘대구찬가’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진 노래이다.

능금 꽃 향기로운 내 고향 땅은 / 팔공산 바라보는 해 뜨는 거리 / 그대와 나 여기서 꿈을 꾸었네 / 아름답고 찬란한 꿈을 꾸었네 / 둘이서 걸어가는 희망의 거리 / 능금 꽃 피고 지는 사랑의 거리 / 대구는 내 고향 정다운 내 고향

대구가사에서 ‘능금 꽃’은 대구를 상징하는 사과(능금)를 뜻하며, 대구가 사과로 유명해진 이유가 함께 언급된다. 대구의 ‘능금’은 토종 능금이 사라지고 외래 사과가 ‘대구 능금’으로 자리 잡으면서, 능금이라는 이름이 사과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 현상으로 설명되어지는데 요즈음의 능금은 사과의 사투리로 아는 경우가 많은 편으로 능금은 열매가 적은 토종사과로 보면 능금과 사과는 같은걸 두고 달리 부르는 상태이지만 능금을 사과의 고어로 아는 것은 오해이다. 문헌상 능금은 고려 때 ‘임금’ 또는 ‘내금’이라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능금은 ‘닝금’ 혹은 ‘멋’이라 불렀고 한자어로는 금, 내, 빈파, 임금, 사과, 소림 등이 있었는데 많은 이름 중에 결국 살아남은 이름은 ‘닝금’이 ‘능금’으로 변한 것이다.

크기도 작고 맛도 그저 그래서 존재감을 갖지 못하던 능금이 제대로 과실대접을 받게 된 것은 중국에서 신품종 능금인 ‘빈과’ 혹은 ‘평과’를 사과로 부르게 되면서 사과는 원래 크기가 작은 능금의 속칭이니 중국산 신품종 능금을 사과라 부르면 안 된다고 지적한 이들도 많았지만 이게 그냥 굳어져 버렸다. 1955년을 기점으로 높은 사용빈도를 보이던 능금은 점점 줄어 점차 사과라는 용어가 일상적 표현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능금과 사과는 이렇게 그 시작은 다르지만 나중에는 같은걸 두고 달리 부르게 되었다. 요즈음 세대에게는 능금은 고어에 가깝게 여기고 사과의 이름으로 압승 한 덧 하나 이름 부르기에 지역의 사과밭은 평광동에나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인지라 국민 과일 사과가 기후온난화로 인해 재배지가 북상하니 능금이던, 사과이던 대체하여 먹을 수 있는 새로운 품종 개발에 나서야 하리라.

참고처: 향토와 문화 108호 대구사과 2023

사과나무 2세목(고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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