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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짧은 생각 ⑦생로병사의 해법…아들아,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작성자나비|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짧은 생각 ⑦생로병사의 해법…아들아,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길 위의 수행자를
만납니다.

옷차림도 특이하죠.
주로
아랫도리만 가린 채
지팡이 하나만 짚고서
맨발로 다닙니다.

인도 사람들은
그들을
‘사두(Sadhu)’라고 부릅니다.
집을 떠나
바람처럼 구름처럼
유행하는 수행자입니다.


지금 인도에는
그런 사두가
500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사두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세상의 뉴스를 전달하는
이야기꾼 역할도 했습니다.

TV와 신문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는
바깥세상의 소식을 듣는
주된 통로가
마을을 찾아오는
떠돌이 수행자 사두였습니다.

그런 사두가
마을을 찾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주위에 빙 둘러앉았습니다.
사두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음식을 보시했습니다.


사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탁발로만
먹고삽니다.
요즘은
게으른 사람들이
사두 행세를 하면서
구걸로 먹고살기도 한다네요.

저는
인도 북부의 룸비니에서
사두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힌두교 수행자였습니다.
손에는 염주를 들고,
머리는
마치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꼬아져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지난 45년간
   머리카락을 깎지 않았다.”

어떤 사두들은
머리를 깎지 않습니다.
계속 기릅니다.
나중에는
너무 길어진 머리카락을
빙빙 꼬아서
자신의 머리에 올립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고행 전통의 일부입니다.
붓다 당시에도
인도에는
고행 수도자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불이 붙은 숯 위에
앉는 사람도 있고,
못이 박힌 철판 위에서
명상하는 사람도 있고,
곡기를 끊다시피 하고
수행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45년째 머리카락을
깎지 않은 것도
그런 고행 전통의 맥락입니다.

저는 사두에게
청했습니다.
45년간 기른 머리카락을
혹시 볼 수 있는지,
그 머리카락을
풀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두는 싱긋이 웃더니
머리에 올려놓은
똬리를 하나씩 풀었습니다.


마치
머리에서 굵은 나무 넝쿨이
뻗어 나오는 듯했습니다.
오른팔로
중간쯤 거머쥔 머리칼을
어깨 위로 올렸는데도,
나머지 머리칼이
땅바닥에 닿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턱수염도
똘똘 말려 있었습니다.
사두는
그 턱수염도 풀어서
보여주었습니다.
풀어진 턱수염은
배꼽 아래까지
내려오더군요.



수천 년 전에 있었던
수행의 전통,
지금도
고스란히 내려오는 땅.
그게 인도였습니다.

 

[츨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⑦생로병사의 해법…아들아, 세상에 그런 건 없다

불교는 물음의 종교다. 

묻지 않는다면 불교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게 어떤 물음일까. 

삶과 인간과 우주에 대한 물음이다. 

불교의 첫 단추도 그랬다. 

2500년 전 인도에서 불교를 창시한 붓다에게도 첫 물음이 있었다. 

그는 그 물음으로 인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손수 머리를 깎고서 출가했다.


인도 룸비니에서 만난 출가 수행자 사두. 그는 45년간 깎지 않은 머리카락을 풀어서 보여주었다. 싯다르타가 2500년 전에 만났던 사문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백성호 기자


#누구나 늙는다

어떤 물음이었을까. 

싯다르타가 출가하고, 불교가 존재하게 했던 첫 물음.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기에 답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이른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다. 

왕자가 카필라 성의 동ㆍ서ㆍ남ㆍ북, 4문을 나가서 

목격하는 인간 삶의 적나라한 풍경이다. 

불교에서는 그 풍경을 한마디로 ‘고(苦)’라고 부른다.

어느 날이었다. 

싯다르타 왕자는 성의 동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났다. 

초라했다. 

하얗게 센 백발에, 이빨은 빠지고, 등은 구부러져 있었다.

 발걸음 떼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어린 왕자의 눈에는 낯선 광경이었다. 

궁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싯다르타는 수행하는 시자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뭔가?”
“늙은 사람입니다.”
“늙는다는 게 뭔가?”
“사람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늙습니다.
 태어난 이는
 누구나 늙게 마련입니다.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자는 충격을 받았다. 

그게 몇 살 때쯤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 늙음의 풍경은 초라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이빨도 빠지고, 등도 구부러진다. 

몸을 움직이는 일조차 힘들어진다. 

이게 늙음이다. 

그런데 누구도 피할 수가 없다. 

그의 계급이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늙음에는 귀천도 없다. 

고귀한 사람이든 비천한 사람이든, 누구나 삶의 한 지점에서 만나야만 하는 풍경이다. 

그 이름이 ‘늙음’이다.

나는 카필라 성터를 거닐면서 생각했다. 

동문 밖 풍경에서 싯다르타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건 바로 ‘시듦의 이치’가 아니었을까. 

봄에 피는 꽃도, 여름에 짙어지는 녹음도 결국 시들고 만다. 

사람의 봄과 여름도 마찬가지다. 

결국 시들게 마련이다. 

어린 싯다르타는 충격 속에서 깨쳤다. 

자신에게 주어진 푸르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았다.

#누구나 병들고, 누구나 죽는다

어느 날 왕자는 남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서 병든 사람을 만났다. 

결국 왕자도 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병이 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루는 서문 밖으로 나갔다.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천으로 둘둘 말고서, 

강가의 화장터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왕자는 거기서 깨닫게 됐다. 

사람은 누구라도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카필라 성의 서문 쪽으로 갔다. 

성문터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성문 바로 앞에 불가촉천민의 집들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 강이 하나 흘렀다. 

인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강가에서 사람의 시신을 화장한다. 

그게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전통이다.

붓다 당시에도 그랬다. 

카필라 성의 동문 밖에 강이 흘렀고, 

강가에는 화장터가 있었다. 

그리고 화장을 치르고 수습하는 일은 천민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화장터 주변에 천민의 마을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왜 싯다르타 왕자가 서문 밖으로 나갔을 때, 

죽음의 풍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다.

왕자는 성의 세 문을 통해 ‘인간의 삶(人生)’을 보았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 

그건 마치 우리 앞에 놓인 철로와 같았다. 

누구도 철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나자마자 철로에 바퀴가 올라간다. 

그리고 정해진 길을 따라, 정해진 역사(驛舍)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그 역들의 이름이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이다.

싯다르타는 절망하지 않았을까. 

결국 무너지는 꽃이라면, 왜 굳이 피워야 하는 건가. 

모든 아름다움은 순간일 뿐이다. 

결국 병들고, 시들고, 죽게 마련이다. 

그게 인생의 정체라면 허망하지 않은가.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생로병사의 정해진 철로 말고, 나에게 다른 길은 없는가.

 이 철로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왕자는 그렇게 되묻고, 되묻고, 또 되묻지 않았을까.

#생로병사의 해법을 묻다

어느 날이었다. 

왕자는 성의 북문으로 나갔다. 

거기서 낯선 사람을 보았다. 

행색부터 달랐다. 

가벼운 옷차림에 손에는 발우만 하나 들려 있었다. 

싯다르타는 시자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냐?”
“사문(沙門)입니다.”

왕자는 그 말을 처음 들었다. 

다시 물었다.

  “사문이라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애착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합니다.
   욕심에 물들지 않고,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습니다.”

싯다르타는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성의 동문과 서문, 남문을 드나들면서 절망한 그에게 

북문의 풍경은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마도 어쩌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의 정해진 철로를 벗어나게 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싯다르타는 그 사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은 가족을 떠나
   머리를 깎았습니다.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사문이 답했다.

  “출가는
   영원히 번뇌를 버리고자
   함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오직 이치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싯다르타는 그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찾던 길이었다. 

절망으로 범벅된 사람의 삶, 

생로병사의 어둠을 향해 던지는 한 줄기 빛이었다. 

희망의 빛이었다. 

카필라 성으로 돌아온 왕자는 아버지 슛도다나 왕을 찾아갔다. 

그리고 간청했다. 

자신도 그 사문처럼 출가를 하겠다고 말이다.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이 출가를 하겠다니 말이다. 

더구나 아들이 출가하면, 왕위를 이을 후계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인도에는 출가의 전통이 있었다. 

처음부터 머리 깎고 출가해 수도자로 사는 방식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노후의 출가였다. 

우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열심히 일하며 그들을 키운다. 

출가는 자식들이 다 큰 뒤에,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 했다. 

삶의 의무를 다한 뒤에, 삶의 본질을 찾는 식이었다. 

지금도 남방불교에서는 그런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아버지의 거절 앞에서 싯다르타는 물었다.

  “아버지,
   저에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길을 일러주십시오.
   그것만 알면
   출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숫도다나 왕이 답했다.

  “아들아,
   세상에 그런 길은 없다.
   사람들이 너의 말을 들으면
   다들 웃고 말 것이다.
   그런 길은 없으니까.”

싯다르타의 물음은 명확했다. 

생로병사였다. 

인간의 삶이 거쳐야 할 절망의 정거장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었다. 

그걸 넘어서는 길을 싯다르타는 찾고 있었다. 

그러니 출가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생로병사를 넘어서는 답, 그게 목적이었다. 

당시로선 그 답을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 출가였다.

숫도다나 왕은 싯다르타의 출가 의지를 꺾고 싶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가 왕자의 결혼이었다. 

아름다운 아내와 살가운 자식이 있으면 집을 떠나지 않겠지. 

왕은 거기에 기대를 걸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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