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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

동창회 연락을 받고

작성자김종순|작성시간26.06.08|조회수0 목록 댓글 0

그리운 기린, 내 어린 날의 고향

동창회 소식이 들려오니 마음 한구석이 오래 묵은 장독 뚜껑 열리듯 슬며시 들썩인다. 어느새 세월은 머리카락에 흰 눈을 내려놓았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맨발로 뛰어다니던 작은 계집아이가 살고 있는 모양이다. 친구들 얼굴을 다시 본다 생각하니, 잊었다고 믿었던 어린 날의 풍경들이 안개 걷히듯 또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강원도 산골, 기린이라는 작은 촌마을에서 자랐다. 지금 아이들에겐 상상도 안 될 이야기지만, 내가 국민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에서 그림자 길게 드리운 방 안이 우리의 세상이었고, 전기불이 처음 켜지던 날은 세상이 환해진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세상이 갑자기 커진 듯했고, 마을 사람들 얼굴에도 잔잔한 흥분이 번졌었다.

그 무렵 3군단 사령부가 들어오면서 조용했던 동네는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였다. 학교는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 같았다. 교실은 아이들로 꽉 차 숨소리까지 부딪힐 정도였고, 급하게 교실을 증축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장비도, 인부도 넉넉하지 않았다. 어린 우리 손이 학교를 키우는 데 동원되곤 했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갈 수 없었다. 강으로 내려가 세숫대야에 자갈을 담아 학교까지 날라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번을 채워야 손목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 도장이 있어야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지금 세상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지만, 그때 우리는 그것이 힘든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해냈다. 누가 자갈을 더 많이 담았는지, 누가 물에 빠질 뻔했는지 깔깔대며 떠들다 보면 어느새 다섯 번이 채워졌다.

어쩌면 그 시절의 가난은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봄이 오고 아카시아꽃이 피는 계절이면 신작로 옆 흙먼지 날리던 길가가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찼다. 우리는 학교 가는 길에 하얗게 핀 아카시아 꽃잎을 하나씩 따먹으며 재잘거렸다. 세상이 온통 달큰한 냄새로 가득한 듯했다. 누가 먼저 꽃송이를 따는지 장난도 치고, 바람 불면 떨어지는 꽃잎을 잡겠다고 웃으며 뛰어다녔다.

배가 고프면 찔레순을 꺾어 먹었다. 그 어린 입에도 달착지근하고 풋풋한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해당화 꽃잎도 뜯어 먹고, 산과 들은 우리의 간식 창고였다. 가진 건 없었지만 부족한 줄 몰랐다. 자연이 밥상이었고 놀이터였으며 친구였다.

여름은 또 얼마나 찬란했던가.

수영복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엄마가 광목천에 물을 들여 만들어준 팬티 겸 반바지가 우리의 여름 유니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고 투박했을 옷인데도 그때는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강가로 달려가 물장구를 치고, 누가 더 오래 물속에 숨는지 시합도 하고, 해 질 녘까지 피부가 까맣게 타도록 헤엄치며 놀았다.

배가 고프면 남의 집 울타리 너머 설익은 자두를 따 먹기도 했고,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를 몰래 따서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입안이 시큰해질 정도로 신 돌배도 베어 물었다. 배는 고팠지만 그 모든 것이 참 맛있었다. 참 이상하다. 지금은 비싸고 좋은 음식이 넘쳐도 그 시절 돌배 하나만큼 기억에 남는 맛은 없는 것 같다.

가을이 오면 들녘은 황금빛이었다. 논에 높게 쌓아놓은 볏단 위에 올라가 뛰어놀다 어른들에게 호되게 야단맞곤 했다. 그래도 몰래 또 올라갔다. 볏짚 냄새는 왜 그렇게 포근했는지.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 줄기에 줄줄이 꿰던 기억도 난다. 누가 더 많이 잡는지 경쟁하며 깔깔대던 친구들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껌이 귀하던 시절, 우리는 ‘껌풀’이라 부르던 풀잎을 씹었다. 오래 씹다 보면 입술이 퍼렇게 물들었고, 서로 입 보여주며 웃었다. 가진 건 없어도 웃음은 참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참 가난했다. 없는 것도 많았고 불편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부자였던 것 같다. 지금처럼 좋은 옷도, 맛있는 음식도, 편리한 세상도 없었지만 친구가 있었고 산과 강이 있었고 해 질 녘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 밥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이 있었다. 내일도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다는 기대, 봄이면 꽃 피고 여름이면 강물에 발 담글 수 있다는 기쁨, 가을이면 들판을 뛰어다닐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다.

이제는 모두 흰머리가 되었겠지. 주름도 생기고, 각자의 인생 무게를 짊어진 얼굴이 되었겠지.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가족 걱정에 지쳐 있고, 누군가는 이미 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나면 우리는 금세 그 시절 아이들이 될 것이다.

“야, 너 그때 강에서 빠졌잖아.”
“아카시아꽃 따먹던 거 기억나?”
“세숫대야로 자갈 날라다 손목 도장 받던 거 생각나냐?”

말 몇 마디에 배를 잡고 웃다가도, 문득 코끝이 시큰해질 것이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우리의 어린 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의 산과 강, 흙먼지 날리던 신작로, 아카시아 향기, 볏단 위 웃음소리, 친구들 얼굴은 마음속 어디엔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번 동창회는 어쩌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오래 잊고 살았던 ‘내 어린 시절’을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리고 참… 그리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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