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 14:12)
당시 고린도 교회는 신령한 은사 자체에
열광하며 그것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자 먼저 사랑을 추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랑은 은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사용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에 사랑이 빠진 채 사용한
은사는 자기만족과 교만으로 흐를 수 있죠!
사랑에 대해 설명한 후 바울은 성도들이 왜
예언의 은사를 사모해야 하는지, 예언과
방언을 비교하면서 설명해 줍니다.
먼저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예언이 방언보다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기준은 교회를 세우는데 유익한가
여부입니다. 방언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제를
통해 개인의 덕을 세우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공동체에게는
마치 암호처럼 들립니다. 반면 예언은 주의
말씀을 공동체에 전해 교회의 유익을 줍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후 바울은 피리와 거문고,
나팔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한 소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기가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떤 곡인지,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전쟁을 준비할 수
없음을 경고하며 말합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신비한 체험이 아닌
그 체험을 통해 형제, 자매를 깊이 사랑하며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서로 연결시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는 분이시기에 내게 있는 은사를 나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성도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성령의 은사를 개인의 영적 체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주셨습니다. 은사는 개인의 영적 만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용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