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추억담

치앙마이 나주나씨대종회 해외연수 후 기행문

작성자장손|작성시간26.06.20|조회수84 목록 댓글 0

 

천년 란나왕국의 숨결을 찾아서

나주나씨 대종회 치앙마이 해외연수 기행

                                                                                                  26세 직장공파 나연

여행을 준비하는 설레임

6월 어느날 대종회 인수회장님께서 대종회 단합과 청년회의 서로간 소통의 장을 만들면서 앞으로 발전적인 대종회의 미래를 열기 위한 여행에 동참을 바라시는 전화를 받고 나는 무척이나 고민을 했다. 첫째는 며칠이지만 집을 비워야하고 나의 미래의 보금자리로 준비하고 있는 충남 금산의 복숭아 농장에 복숭아 봉지싸기도 해야하는 농번기 접어들었기에 해야 할 일을 목전에 두고 마음 편히 떠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고민해보겠습니다.라고 헸지만 또 한 번의 권유 전화에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예 동참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여행사에 제출할 여권사진과 내가 부담해야 할 여행 경비를 입금시키고 나니 이제는 마음이 바빠졌다. 6월8일에 출발한다하니 그 이전에 해야할 급한 일들을 마쳐야만 했다. 사전투표를 해서 조금 여유로워진 6월3일 선거일부터 바쁜 조카을 도와주시겠다하신 나의 영원한 우군이신 두분의 고모님과 나의 손아랫 남동생까지 합류시켜 6월 6일 아침까지 복숭아 봉지싸주기 작업을 마친 후 마무리 농약까지 모두 완료하여 이제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어제까지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며 여행생각은 언감생신 저 멀리 있었건만 할 일을 어느정도 마친 지금은 즐거운 여행 떠날 행복한 고을 하고 있으니 말다.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청소년이었던 그 시절 연의 그 마음과 같이 두근거림은 내가 아직 젊다는 징표인가 보다.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날을 기하십니까? 책가방 대신 도시락 가방을 챙겨 놓고, 창밖을 보며 내일 날씨가 맑기를 바라던 그 마음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아 몇 번이나 시계를 들여다보고 혹시 늦잠을 잘까 걱정되어 알람을 여러 개 맞춰 놓던 그 두근 거림!.중학교 수학여행 전날에는 친구들과 어떤 추억을 만들지 기대하며 가슴이 뛰었고,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낯선 세상과 새로운 경험을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했었다.

  지금 치앙마이 연수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도 사실은 그때와 사뭇 다르지 않은 듯 . 비록 얼굴은 중년이 되었고 머리에는 몇 가닥의 세치가 말해주듯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두 어깨 위에는 인생의 무게가 더해졌지만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기대와 한 핏줄 종친들과 함께한다는 즐거운 비명은 여전히 한 중년의 가슴을 뛰게 할 만큼 충분했다.

  국 북방의 장미라 불리는 치앙마이의 푸른 하늘도이수텝 산사에서 바라볼 풍경과 반짝이는 야시장 골목에서 들려오는 체험삶의 현장 소리들, 그리고 무엇보다 종친들과 함께 나눌 우정과 정담이 벌써부터 눈앞에 그려졌다. 복숭아를 싸면서 땡볕에 녹아 흘러내렸던 땀 내음은 어디로 가고 아직 비행기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치앙마이 거리를 걷고 고 아직 출발하지 않았는데 벌써 여행의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은 떠나는 순간보다 기다리는 순간에 더 크다는 말처럼 지금 나의 마음은 마치 소풍 전날 잠 못 이루던 어린아이처럼 "언제 그날이 오나..." 하며 달력을 바라보는 행복한 기다림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번 치앙마이 여행은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라, 같은 뿌리를 가진 종친들이 함께 웃고, 함께 걷고, 함께 추억을 만드는 소중한 동행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벌써 이 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여행가방보다도 더 무거운 소중한 추억을 가슴 가득히 담아 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나주나씨의 우애와 정을 더욱 깊게 새기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드디어 6월 8일 고양시 하늘의 날이 밝았. 아침 일찍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챙기고 여권을 몸에 넣고 여행에 쓸 작은 여행경비를 챙겨 지갑에 담고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버스가 출발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1분차이로 그만 차를 놓쳐서 택시로 가로질러 몇정거장을 가로질러가서 기다리니 드디어 3200번 인천공항행 직행버스가 다가왔다. 버스기사가 가방을 받아 좌석아래에 위치한 짐칸에 넣고 쏜살같이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려 드디어 인천공항 2터미널에 도착하였는데 13시 45분이었다. 그만 설레임에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인천공항 2터미널 3층 F존 약속장소 주변에 서성이니 차례로 종친분들이 보무도 가볍게 속속 도착하시고 서로 정겨운 인사를 나누었다. 낯익은 분도 계시지만 처음 뵙는 분도 계셨는데 인사를 나누며 바라보는 눈빛이 한 가족 가족과도 같이 느졌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보다. 오늘 이 순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더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모두 나주나씨 일가라는 점이다.

 

6월 8일 - 여행을 떠나며...

 초여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던 오후 3시, 우리 나주나씨 대종회 종친 15명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3층 F카운터 앞에 집결하였고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출국 수속을 하였다. 출국수속 후 출발대로 가기전 나는 명엽족장님과 함께  3층 푸드코드에서 돌솥비빔밥을 시켜서 끼니를 해결하였다. 오늘 점심도 못먹었고 기내식도 없는 터라 아침 한끼로 하루를 버티기에는 최근 바쁘게 움직였던 나의 지친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싶어서 재빠르게 움직여서 후다닥 식사를 하고 속장을 지나 출발대기213번으로 갔다. 종친들께서 햄버거와 음료를 드시고 계셨다. 종친 일행중 한분이 “햄버거 좀 드셔요.”.라고 말씀하셨는데 먼저 식사를 하고 온 미안한 마음이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게 양심이 아닌가 싶기도했다.  

오후 17시 20분진에어 항공기가 인천공항의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이로써 나주나씨 대종회 종친15인은 태국 북부의 고도(古都)인 치앙마이를 찾아 뜻깊은 여정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여행은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이지만, 때로는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인천국제공항 3층에서 만난 종친들의 얼굴에는 어린 시절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 같은 설렘이 가득해보였다. 생각해 보면 여행의 즐거움은 목적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여행의 가치를 결정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다.

  약 6시간의 비행 끝에 현지 시각 밤 9시경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한국인 가이드 이원규 씨와 태국인 가이드 비(Bee) 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히 현지에서 합류한 두 가이드를 간단히 소개하고 간다면 이원규 가이드는 여행 내내 치앙마이의 역사와 문화, 태국 왕실 이야기 등을 흥미롭게 설명해 주었고, 현지 태국인 가이드 비씨는 식당과 마사지숍, 관광지 예약과 정산 등 실무를 빈틈없이 챙겨주었다.

  숙소인 윈트리 시티 리조트 호텔에 여장을 풀고 보니 우리나라 시간기준으로 어느덧 자정이 가까웠다. 나는 대종회 총무이신 나상필 아제와 한방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며칠 동안 정담을 나누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6월 9일 – 코끼리와 함께한 특별한 하루

여행 둘째 날 

  아침 5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눈이 떠졌다. 하기야 한국이라면 지금 7시에 해당하니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른다. 호텔조식은 6시부터라하니 침대속에서 이쪽으로 반바퀴 저쪽으로 반바퀴 몸을 뒤척이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6시경 룸메이트 상필아제가 일어나셨어요?라고 말하며 이브자리에서 먼저 나오셨다.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아제가 먼저 기침을 하셨으니 하하……

  호텔1층 레스토랑은 페식이었고 먼저 오신 종친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쌀국수 빵과 우유, 계란후라이, 요거트를 먹고 후식으로 커피와 수박과 파인애플과일을 먹었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은 경험이 몇 차례 있었는데 국물맛이 멸치로 육수를 낸 우리의 국물맛과 다르지않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국물까지 한 그릇 비울 수 있었다. 조식후 9시 20분경에 호텔로비에 나왔는데 벌써 종친어르신들이 모두 나와 계셨고 잠시 자리에서 대기하다 이원규가이드와 비씨를 만나 버스에 탑승하여 현지 연수 일정이 시작되었다. 버스안에서 이원규 가이드가 간단히 오늘 일정을 소개하며 태국이라는 나라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며 간단히 소개해주었다

 

태국과 한국의 비교

  태국은 국토 면적이 약 51만㎢로 우리나라 남한의 약 5배 정도 되는 나라이고. 인구는 약 7천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1.4배정도 수준이라고 한다.수도는 방콕이며, 현재 국명은 태국 왕국(Kingdom of Thailand)이다

  태국과 우리나라는 공통점도 많다.

  우선 두 나라 모두 오랜 역사와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예로부터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유지해 왔다. 또한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문화가 발달한 나라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지만 태국은 열대몬순기후 지역으로 연중 기온이 높은편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무더운 날씨도 태국에서는 일상적인 기후라고한다.

  또 하나 큰 차이는 종교이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지만 태국 국민의 90% 이상은 불교를 신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사원이 많고 승려를 존경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이나라도 남자는 모두 군대를 다녀와야하는 징병제 국가인데 그 군인을 선발하는 방법이 이체로웠다. 군인을 선발하는 날 두개의 볼을 선택하는데 한 가지는 1년6개월 현역병 생활을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3개월 승려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호할 것인가요? 우리도 방위병과 현역병으로 분류되던시절 온갖 빽을 동원하여 방위로 또는 면제로 빠지려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도 당연히 3개월 승려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인데 일반인이 굳이 승려의 생활을 3개월을 의무적으로 해야한다는 것이 조금은 특별했다. .

  정치 체제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의 민주공화국이지만 태국은 국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국왕은 정치적 권한보다는 국가 통합과 국민 정신의 상징적 존재로 존경받고 있다한다.

태국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서양 열강의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태국 국민들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역사이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는 자동차 산업과 관광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 특히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의 문화수도로 불리며,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 경주를 합쳐 놓은 듯한 도시라고 할 수 있. 부산처럼 태국 제2의 도시 역할을 하고, 경주처럼 수많은 문화유산과 사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관광지만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태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국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여행은 많이 보는 것도 좋겠지만 많이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치앙마이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태국인의 미소와 여유, 그리고 700년 란나왕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끼리 캠프와 소달구지 타보기, 대나무 뗏목 체험

  치앙마이 첫 여행코스로 버스로 한시간 정도 달려와 코끼리 학교를 방문했다. 태국에서 코끼리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과거 전쟁에서는 전투용으로 사용되었고,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의 상징이었다. 또한 태국 왕실과 불교문화에서도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는 동물이다. 우리는 코끼리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코리기 등에 올라타 강을 건너고 산길을 오르는 체험을 했다. 뒤거리는 등에 올라타서 큰 강물을 건너고 산비탈을 걸을 때는 다소 무섭기도 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 코끼리를 몰고가는 목동이 코기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라는 우리 동요를 불러서 신기하기도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한국 관광객이 많이 다녀갔다는 징표가 아닐까? 코끼리 등에서 내려와 우린 높다란 계단에서 코끼리의 재주를 구경하는 시간이 있었다. 관중들이 주는 바나나를 코로 받아먹고 답례로 목동의 모자를 방문객의 머리에 씌워주기도 하고 방문객이 주는 팁을 코로 물고가서 목동에게 곱게 받치는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코끼리들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변신하기도 했고 축구를 하며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골대에 공을 차 넣고 농구공을 던지며 훌라후프를 돌리고 심지어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모습은 인간 못지않은 재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코끼리가 이런 재능을 마스터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도 때로는 동물로부터 배워야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욱이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한화로 15만원정도로 거래를 한다하니 코끼리 화백의 재주가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조금은 비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소달구지 체험을 했는데 나는 상필아제, 종근형님과 함께 한 조가 되어 탑승을 했다. 소등에 물혹이 마치 낙타를 연상케했는데 이 혹은 사막의 낙타처럼 수분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거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내어릴적 고향에서 탔던 소달구지를 타본이후 그얼마만의 일인가? 이젠 우리나라에는 소달구지는 사라졌기에 깍아머리시절 그 예날  추억의 사진을 단톡방에 올려서 이곳의 달구지와 배교도 해보고 종원들의 유년시절을 되살리게하여 여행의 맛을 돋으려 노력해보았다. 

  이후 점심시간 나는 또 쌀국수의 매력에 빠졌고 비싸서 많이 먹지 못했던 망고를 몇접시나 반복해서 먹어치운 진상 고객으로 변해있었는데 이건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동행한 다수의 종원들의 발걸음은 그 곳으로 향했고 들고오는 접시 위에는 여지없이 가지런히 놓인 망고가 주인의 식욕을 돋구고 있었다는 사실…… 점심식사 분위기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점심식사후 곧바로 대나무 뗏목 체험도 이어졌다. 코끼리학교 바로 옆 계곡에는 흙탕물 수준의 계곡물이 강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2개조로 나누어 뗏목레프팅을 체럼했다. 계곡의  강물울 따라 뗏목을 타고 가는 중간에 만기 종친께서 시원한 코코넛 음료를 같은 조 종친들에게 대접하는 모습은 훈훈한 혈족애를 느끼게해주었다. 특이한 점은 강물 거의 흙탕물과 같아 강속의 상태를 전혀 알 수 없었는데 그 이유인즉 석회질토양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강 강물속에 팔뚝만한 메기하며 물고기가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는 말은 날씨는 덥지만 먹을 것이 많은 풍요의 나라답게 이체롭게 느껴졌다. 

코끼리캠프를 나와서 우리는 잠깐의 짬을 내어 덴테와다 공원을 찾았다.푸른 숲과 아름다운 정원, 폭포와 조형물이 어우러진 이곳은 마치 동화 속에 들오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힘으로 만든 조형미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아름다운 공원은 유명를 타서 많은 관광객과 연인들이 이곳을 찾아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우리가 찾은  날도 아니나다를까 천사복장을 한 어여쁜 색시들이 이곳저곳에서  우리일행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태국의 선남선녀는 다 이곳에 와 있는?”라는 착각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종갑종친께서 공원을 산책하다 개울가에서 그만 신발을 빠뜨려 난감한 상황이 발생되었고 동건 홍보이사가 이곳저곳을 뛰어나닌 끝에 겨우 물에 흠뻑적셔진 신발을 찾아주어 종갑종친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남겨주기도 했다. 하기야 천사에 홀린 나도 돌아간 눈길을 바로 잡지못했다면 게울물에 발을 헛디뎠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하  

  치앙마이의 날씨는 참 변덕스러우리 만치 변화무쌍 했다. 적도에 가까우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워야 맞을듯한데 구름이 하늘을 가려서인지 생각외로 선선했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다가도 갑자기 스콜성 폭우가 쏟아지고 비가 그치면 다시 강렬한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이 우기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장마철이라는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다.

호텔로 복귀 하는 길에 하루의 여행 피로를 풀수 있는 마사지샵 체험을 2시간동안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태국 맛사지사들이 우리발을 세족후 맛자지를 시작했는데 그들의 손 동작에 우리는 기계적으로 반응하며 태국정통맛사지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었. 특히 맛자지이후 팁을 100바트 준비해서 수고한 맛사지사들에게 감사표시를 해야한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지갑 깊숙 꼬불쳐 넣어 놓은 태국 바트를 찾아내어 전달했는데 맛사지사들이 코큰칸!”이라는 말을 했다. 맛자지 룸에서 했던 말이기에 ”코가 큰 왕이라는 말인가? 이상한 상상을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말로 감사합니다. 라는 여성들이 하는 인사말이고 남자들은 코큰캅이라 말하며 감사인사를 한다는 말도 참고로 밝혀둔다. 


6월 10일 – 태국 왕실과 자연을 만나다

  셋째 날은 도이안타논 방문 일정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부터 뜻깊었다. 이원규 가이드의 태국의 과거 왕국의 역사와 현재 왕실을 소개했고 나병철 종원님의 전기산업 소개, 나명엽 교수님의 인문학 강의가 이어졌다. 달리는 버스가 곧 이동식 강의실이 된 셈이었다. 

 

란나왕국의 수도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태국 제2의 도시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태국 북부를 지배했던 란나왕국의 수도였다. 1,296년 맹라이 왕이 건설한 치앙마이는 "새로운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약 7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란나(Lanna)는 "백만 개의 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풍요로운 농업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오랜 세월 독립 왕국으로 번영했던 란나왕국은 이후 버마와 시암(현재 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도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해 왔다. 오늘날 치앙마이에는 200개가 넘는 사원이 남아 있으며, 태국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태국의 지붕 도이안타논 국립공원

  도이안타논으로 향하는 약 1시간 동안 귀를 호강시켜주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차창 밖으로 이국의 풍경을 감상했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양념으로 금양군파 제종아제가 즉석에서 가수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열창해 여행의 분위기를 돋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버스는 길이 좁고 꼬불꼬불 위험하여 더 이상 산으로 올라갈 수 없어서 도이안타논 정상으로 가기 위해 봉고차 2대로 차를 갈아탔다. 도이는 우리말로 산을 뜻하고 안타논이 산의 이름에 해당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그래서 도이안타논 산이라고 말하면 틀린말이 되는 것이다. 도이인타논은 태국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산 가운데 하나이며 태국의 지붕이라 불린다고 했다. 해발 2,565m의 태국 최고봉인 도이인타논 국립공원정상으로 가는 중턱에 와치라탄이라는 웅장한 폭포를 가지고 있어 우리는 구경을 위해 잠시 들렸다. 태국의 최고 고지대에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한 수량으로 웅장한 폭포의 장관은 그 위용이 대단했고 모두들 사진을 연속해서 찍고 있었다. 나 역시도 명엽 족장님께서 사진한장 찍어주신다는 말씀에 좋은 위치에서 개폼을 잡으려다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옆에 있던 상필총무가 반사적으로 다가와 나의 몸을 일크켜세워주고 옷에 뭍은 흙을 닦아주셨다. 일가의 혈족애를 다시 한번 느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후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며 우리나라 소주 참이슬이 보여서 반주로 1병 시켰는데 370바트 한화로 약19,000원 정도 되었다. 내가 롯데백화점 구매팀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무렵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점 오픈 점검을 가서 인근 한식당에서 소주를 시켜 먹었는데 그곳에서도 우리 돈으로 20,000원 정도 팔고 있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역시나 태국치앙마이에서도 물을 건너온 술인지라 이곳 역시도 한국의 소주는 양주에 해당하는 외국술인 셈이다. 이윽고 도이안타논의 정상부위에 도착하여 서로 마주보며 황금빛 찬한하게 세워져 있는 태국왕과 왕비의 장수기원탑 기념탑을 둘러보았다. 산정상 부위에 금빛 찬란한 큰 탑을 세워서 왕과 왕비의 장수를 빌기위해 세웠다하는 것을 보면 태국 국민들이 국왕을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탑이 서있는 산아래 멀리 보이는 곳이 라오스 국경이고 탈북자들이 넘어오는 코스중에 하나여서 곳곳에 검문소가 있었던 연유를 알 수 있었다. 국경선이라 해봐야 계곡의 개울물 하나 사이이니 겹겹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G.O.P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시큰거리는 무릎을 쉴겸 커피숍에서 담소의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 일행 모두에게  인수회장님께서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주셨다. 태국은 동아시아에서 큰 전쟁도 식민지도 격지않은 나라인지라 도이안타논의 정상부위 부근에는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공원이 있었는데 나무위에 이끼를 이불처럼 덮고 있어 영화에서 봤던 자연 동화의 나라에 들어온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공원 명엽족장님 종근형님 그리고 나 3명만이 잰걸음으로 돌아보았다. 그도그럴것이 비가올날씨로 급변했기에 다른 일행들은 버스에서 기다렸고 우리는 이국의 정취를 하나라도 맛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 원시림속으로 들어갔는데 역시나 비가 내리고 말았고 종근형님은 노랑우비재킷을 입고오셨고 명엽족장님께서 준비해오신 우산속에 나는 꼽사리를 끼어 급한 불을 껐다. 비에 몸은 조금 젖었지만  동화의 나라에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으니 이정도 비에 젖는 것은 그 댓가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치앙마이 해외연수의 목적은 아름다운 관광지만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종들 간의 정을 더욱 깊게 나누며 화합하고 단결하는 데 있었다. 낮에는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자연을 감상했다면 밤에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우애를 다지는 시간로 요약할 수 있었고 오늘은 아주 특별한 밤 시간이 이어졌다.

 

웃음과 노래로 하나 된 종친 화합의 밤

저녁 식사후 가라오케에서 종친간 화합을 위한 노래자랑은 이번 여행의 백미 가운데 하나였다.처음에는 모두들 쑥스러워하며 서로에게 마이크를 권했지만,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자 분위기는 금세 무르익었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큰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종친들은 나이를 잊은 채 청춘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했다.노래자랑 시간에는 모두가 하나 되어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였다.

누군가 노래를 잘 부르면 함께 기뻐했고, 실수를 해도 웃음으로 감싸 안았다. 적어도 이순간 만큼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종친이라는 사실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나 진성의 동전인생과 강진의 막걸리 한잔을 불렀다. 우리 종친들은 직장공할아버니가 고려왕실에서 사용하는 술을 관장하는 관직에 계시면서 술맛을 자주 확인하실 수 밖에 없으셨을 것인데 그런 연유인지 우리 후손들이 술도 잘마시고 노래도 가수 뺨치게 부르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밤이었다. 제종종친은 버서에서 선보였던도 강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다시한번 열창하셨는데 가사의 내용처럼 친구와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누가 더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함께 웃고 함께 즐기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었다.

 

노래를 마칠때마다 종친들께서 보내주신 뜨거운 박수는 모두를 하나되게 했고 그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날 밤 나는 뜻밖에도 노래자랑에서 3등이라는 작은 영광까지 안게 되었으니 더욱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6월 11일 – 도이수텝 황금 사원과 치앙마이의 밤

넷째 날.

여행 4일차 치앙마이 날씨는 맑고 흐리기를 반복했다. 오전7시에 호텔뷔페에서 조식을 챙겨먹고 11시까지 호텔에서 자유시간을 갖었다. 11시에 시내에  위치한 천사들이 모여있는 도이수텝사원을 방문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약 15km 떨어진곳에 위치한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바로 Wat Phra That Doi Suthep, 한국인들에게는 흔히 도이수텝 사원(도이스텝 사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태국 북부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한 불교 성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고한다. 도이수텝사원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하얀 코끼리 전설'로서 14세기 란나 왕국 시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하얀 코끼리가 산을 오르다가 현재의 사원 위치에 도착해 세 번 울고 쓰러졌다고 전해진다. 왕은 이를 신성한 계시로 받아들여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에 도이수텝 사원은 태국 불교 신자들의 중요한 순례지 되었다.

도이스텝사원의 테라스는 Doi Suthep Mountain중턱 해발 약 1,050m 지점 자리하고 치앙마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주변 산맥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 명소로도 유명하기도 하다사원 입구에는 309개의 계단은 양쪽으로 용을 닮은 신화 속 수호신 '나가(Naga)'가 장식하고 있. 이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도 불리기도하는데 우리 일행은 계단으로 오르지않고 케이블카(트램)를 타고 오르내렸다.

도이수텝사원 내부 구경을 위해 우리는 맨발로 이동하여 내부에 모셔져 있는 황금빛 찬란한 불사을 구경했다. 또한 중심부에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알려진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불탑이 위치하고 있어 명엽족장님과 나는 3바퀴 탑돌이를 하면서 가족들의 안녕을 빌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도심에는 교회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치앙마이 시내에는 200여 개가 넘는 사원이 존재한다고 하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불교문화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금 불탑과 정교한 조각, 향내 가득한 법당은 불교 국가 태국의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저녁에는수상 꽃뷰 야외식당인 레스토랑에서 태국 전통 음식인 5~6가지 코스메뉴를 을 맛본 뒤 치앙마이 풍물시장 야시장을 방문했다.치앙마이 야시장은 태국 북부 최대 규모의 야시장 가운데 하나다. 형형색색의 수공예품과 기념품, 길거리 음식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아내에게 줄 팔찌를 몇개 구입했고 종친분들도 각종 기념품을 사셨다. 8시 15분까지 다시 약속장소로 모여야 했기에 약 1시간의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이후 태국의 명물인 뚝뚝이(태국의 관광객 상대 3박이 오토바이 이동수단)를 타고 야경을 감상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치앙마이의 밤거리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6월 12일 – 치앙마이 천년사원과 타패게이트! 란나왕국 700년의 흔적을 거닐다

마지막 날.

치앙마이 여행의 마지막날! 6시 30분에 오늘도 어김없이 조식을 뷔페로 해결했다 어느덧 아침 쌀국수에 뷔페를 먹는것도 익숙해져 며칠만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여행의 말미에 누구나 느끼는 인지상정일까. 며칠 여행을 하는 동안 인수회장님과 집행부 상필총무와 동건 홍보이사가 너무 수고해주어 즐거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듯 아쉽기만 하다. 호텔에서 짐을 챙겨나와 체크아웃하고 버스에 가방을 실으니 오늘 밤 비행기로 귀국하는것이 실감이 난다. 오늘은 간단한 쇼핑과 시내 몇군데를 돌아보고 저녁식사 후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로 30여분 이동하여 우리는 치앙마이의 특산물 판매장소 두 군데를 들렸고 나는 두가지 정도의 벌침으로 만든 약을 구입하고 망고 말린것을 가족들을 위해 준비했다 

  이후 점심식사를 하고 한 20여분 달려 아트인파라다이스를 들렸다. 착시미술작품을 모아놓은 곳인데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고 마치 그 그림속에 녹아드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며 우리 일행들은 재미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이어 방문한 산마을은 란나 전통공예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도 전통장인들이 사라져 가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닌 듯하고 장인들이 직접 대나무를 깍고 다듬어 우산살을 만들고 전통 한지를 만들어 기념품용 우산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우리네 전통 한지의 고향 전주가 떠오르며 소중한 전통을 지키는 장인들의 모습에서 현대문명 속에서 옛 것의 소중함이 절로 느껴진다.

  이후 치앙마이 최대의 사원인 쩨디루앙 사원을 찾았다. 1,391년에 건립된 이 사원은 한때 높이 90m가 넘는 거대한 불탑을 자랑했으나 100년에 한번꼴로 이어지는 홍수와 지진으로 상층부가 무너져서 지금은 60여m정도가 현존하고 있었고 태국 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어 치앙마이의 상징인 란나왕조의 성벽이자 해자가 남아있는 타패게이트를 방문했다. 이곳은 과거 란나왕국 성곽도시의 동문으로, 수많은 상인과 여행객들이 드나들던 역사적인 관문이었다.

  치앙마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타패게이트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오늘날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타패게이트는 단순한 성문이 아니라 700년 전 란나왕국의 흥망성쇠를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다. 1296년 맹라이 왕은 태국 북부를 통일한 후 새로운 수도 치앙마이를 건설하였다. 그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각형 형태의 성곽을 쌓고 그 바깥으로 넓은 해자를 만들었다.

  당시 치앙마이는 정치·경제·종교의 중심지였으며, 중국과 버마, 라오스, 시암을 연결하는 국제 교역도시로 성장하였다. 타패게이트는 그 성곽의 동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동쪽은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상인과 승려, 외교사절과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던 관문이었다.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조선시대 한양의 숭례문(남대문)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찬란했던 란나왕국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16세기 중반 버마의 침략을 받으면서 란나왕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버마와 시암왕국의 지배를 번갈아 받으며 독립국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치앙마이의 성곽도 수차례 파괴되고 복원되기를 반복하였다. 현재 우리가 보는 타패게이트는 원형의 일부를 복원한 모습이라고 한다. 실제로 성문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고, 우리나라 수원화성이나 남대문처럼 웅장한 느낌보다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이 성문은 수백 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를 지켜내기에 충분했을까?" 물론 역사의 승패는 성벽의 높이나 두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의 흥망은 백성들의 단결과 지도자의 지혜,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란나왕국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도 이 성문을 소중하게 보존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이곳은 단순한 벽돌 구조물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문 앞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비둘기들이 어우러져 있었다.700년 전 이곳을 지나던 상인들과 승려들, 그리고 병사들의 발자취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은 여전히 타패게이트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성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붉은 벽돌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란나왕국의 영광과 쇠락,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치앙마이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역사는 결코 과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된다.타패게이트는 바로 그런 역사의 교훈을 조용히 들려주는 치앙마이의 상징인 것이다.

  우리는 이곳을 끝으로 모든 관광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관 한식당에서 보쌈에 만찬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태국 치앙마이의 마지막 일정이 아쉬운것인지 창밖에 비가 우리가 탄 버스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섬김의 리더십으로 함께한 인수 회장님

  이번 치앙마이 해외연수는 나주나씨대종회 집행부의 헌신적인 준비와 노력 속에서 이루어졌다.그 중심에는 인수 회장님의 조용한 리더십이 있었다. 흔히 리더십이라 하면 앞에서 지시하고 이끄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 여행에서 느낀 인수 회장님의 리더십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십에 가까웠다.

  회장님은 여행 내내 자신의 편안함보다 종친들의 안전과 편의를 먼저 각하였다. 가는 곳마다 어르신들의 불편한 점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폈고, 식사 자리에서는 모두가 자리에 앉았는지 먼저 확인한 뒤에야 자신의 식사를 시작하곤 하셨다. 특히 연세가 많으신 기종종친과 육순 대부님을 배려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관광지 이동 중에도 혹시 뒤처지는 분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였고, 계단이 많거나 이동이 불편한 곳에서는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주셨다. 회장님의 관심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세심한 배려에서 드러났다.

  기내에서도 맥주와 커피를 준비해주셨고 도이인타논 국립공원 일정 중 장수커피숍에 들렀을 때도 종친들에게 따뜻한 커피와 라떼를 대접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다. 그 모습은 단순한 음료 한 잔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배려가 얼마나 큰 따뜻함으로 전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회장님께서 여행 내내 종친 간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점이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다 서로를 알아가고 정을 나누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셨다. 덕분에 이번 해외연수는 단순한 관광 일정이 아니라 종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식사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정담이 오갔다.

  이러한 화합의 분위기 뒤에는 회장님과 집행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좋은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하려는 마음이 쌓여야 비로소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번 치앙마이 해외연수는 그러한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현장인 셈이다. 지금 돌아보면 여행의 참된 가치는 관광지의 화려함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에 있는 것 같다. 700년 란나왕국의 유적과 아름다운 자연도 오래 기억되겠지만, 종친들과 함께 웃고 걸으며 정을 나누었던 순간들은 더욱 오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인수 회장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과 종친 여러분의 따뜻한 우애는 이번 해외연수를 더욱 빛나게 한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화합과 배려의 정신이 우리 나주나씨대종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행의 소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같은 역사를 기억하는 종친들은 아주 특별한 사이이고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종친들 함께 걷고, 함께 식사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이번 치앙마이 여행은 단순한 해외 나들이가 아니라 종친 간 화합과 친목을 다지고, 앞으로의 대종회 발전을 다짐하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까이 이어주는 결속과 우정을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젊은 시절의 추억과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나누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여행이 진행될수록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늘어갔다.처음에는 다소 조용하던 분위기도 시간이 흐를수록 형제처럼 가까워졌다.버스 안에서는 농담이 끊이지 않았고, 식사 자리에서는 웃음소리가 이어졌으며, 관광지에서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추억을 함께 만들었다. 문득 조상님들께서 보신다면 흐뭇하게 웃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수백 년 전 한 뿌리에서 시작된 인연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종친들 사이의 정은 오래도록 남는다. 특히 제종아제께서 공항가는 버스안에서 망고1봉지씩을 종친들께 만남의 기념으로주셨고 서로 배려하고 베푸는 삶을 말씀셨다. 나 역시도 인천공항에 이른아침 5시에 도착하여 종친들께 따뜻한 국밥한그릇씩 대접해드렸고 우리 모두는 남이 아닌 나주나씨의 일가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이번 치앙마이 해외연수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나주나씨라는 이름 아래 이어진 혈연의 소중함과 종친 간 화합의 가치였고 그것은 어떤 관광지보다 아름답고 어떤 기념품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비록 짧았던 여행은 끝이 났지만 함께 웃고 걸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언젠가 또 다른 여행길에 오르게 되더라도 우리는 이번 치앙마이에서 배운 한 가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좋은 풍경은 사진으로 남지만,좋은 사람은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

이번 함께하신 모든 종친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다음 만남에서도 변함없는 화기애애한 정을 이어가기를 기대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