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이란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1961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사용하고 있는「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개정한 것입니다.
성경을 왜 개정합니까?
학교 교과서와 일반 출판물에서 쓰는 한글 맞춤법이 변하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실 언어도 변합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우리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난 백 년 동안 우리 언어는 많이 변하였습니다. 우리 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언어가 변화합니다.
성서학 고고학 언어학 등 관련 학문들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성경 원문의 의미가 새롭게 밝혀지기도 하고, 더 정확한 뜻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언어의 변화와 학문적 성과를 번역에 반영할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개역한글판」은 한 세기 전에 번역된 것이어서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서 개정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도 성경을 계속 개정해서 사용하나요?
대표적인 영어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왕역」(The King James Versions, 1611)은 여러 형태로 개정됩니다. 「영어개역」(English Revised Version, 1881/1885), 「미국표준역」(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1900/1901), 「미국 개역 표준 성서」(The Revised Standard Version, 1946/1952) 들이 그 개정들입니다.
루터역이 완역되어 나온 것은 1534년입니다. 루터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번역을 계속 개정하였으며 1534년부터 1546년 사이에 열한 번이나 개정을 거듭했습니다. 마지막 판은 그의 사후에 나온 것입니다. 영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모든 언어로 번역된 성경들이 계속해서, 개정이 되거나 새롭게 번역되고 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의 한 세대를 30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도 불가피하게 이 정도의 주기로 개정을 하거나 새롭게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 종류의 번역 성경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 성경을 정해서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서, 중요한 구절들을 암기하며 공부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또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번역 성경을 비교하면서, 본문의 속뜻을 더 깊이 연구해 가는 것도 성경을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어느 한 쪽이 맞고 다른 쪽이 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번역본에 따라 번역이 달라지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번역의 대본으로 삼는 그리스어 성경 본문에 따라, 또는 「표준새번역」과 「개역」의 번역이 다른 것처럼 번역 원칙에 따라 번역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본문이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때에, 번역은 필연적으로 그 가운데에서 한 가지 뜻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도 번역본에 따라 본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에서 난하주에 '또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주를 달아 놓은 경우나 개역 성경에서 '혹'으로 시작되는 난하주가 있는 본문이 대부분 이러한 경우입니다.
또한 수용언어의 지리적 환경이나 지역, 문화에 따라서도 번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성경이 틀린 것 아닌가요?
고대에 기록된 본문에는 보이지 않고, 후대에 기록된 본문들에만 보이는 첨가 본문입니다. 고대 사본에 없는 것은 번역 본문에 반영하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후대에 첨가된 본문은 난외주에 번역하여 넣었습니다.
마태 17장 21절의 경우도, 원본에 가까운 고대 사본에 이 구절이 없기에 이 본문 안에서는 21절이 나오는 위치에 "(21절이) 없음"이라고 표기하였는데, 후대의 사본에는 이 구절이 들어 있어서 난외주에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장과 절을 붙일 때에 기준이 되었던 성경에는 있었던 부분이지요. 그 후로 그리스어 성경 본문에 대한 연구가 깊이 이루어져서, 이러한 어떤 부분은 더 고대에 기록된 본문에는 보이지 않고, 후대에 기록된(필사된) 본문들에만 나타난다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연구 결과, 최초의 본문에는 없었던 것이 후대의 기록(필사) 때에 '첨가된 본문'으로 판정을 받은 부분입니다.
첨가된 부분이 없는 본문을 기준으로 장 절 자체를 다시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장 절 체계도 나름대로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역사성을 가지게 된 것이므로, 새로 장 절 체계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또 첨가된 본문으로 판정을 받은 부분도 교회에서 오랫동안 읽어 왔던 부분이므로 아주 없애버리지는 않고 본문 아래에 두어서, 포함시켜서 읽을 수도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은 어디를 얼마나 고친 건가요?
「개역개정판」 성경은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감안하여 꼭 고쳐야 할 부분만을 개정하였기 때문에, 현대어 역본처럼 변화한 곳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개역한글판」 성경의 번역을 최대한 존중하였으며, 개역 성경의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신약 12,823곳, 구약 59,889곳이 수정되었으며 수정내역도 오역을 개정하고 어려운 말을 쉽게 개정하였으며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따라 표기를 올바르게 고쳤습니다. 원본의 번역문제, 장애인 용어의 수정, 음역문제와 우리말 표현을 다듬고 뜻을 더욱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을 "하나의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무슨 뜻인가요?
한국 교회 백년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한국 모든 교회에서 읽어온 하나의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의 성경"은 1911년에 번역이 되었으며, 1938년에 개정하여 「개역」이 되었고, 1952-1961년에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에 따라 다시 맞춤법을 전면적으로 고쳐서 「개역한글판」이 되었고, 1998년에 다시 달라진 맞춤법을 따라 본문의 맞춤법을 고치면서 옛 말과 어려운 한자어와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과 잘못된 번역과 장애인 관련 용어 등, 전면적으로 검토를 하여 개정을 하여 「개역개정판」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 교회에서 이 성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개역개정판이 현행 맞춤법을 따랐다고 하던데, 옛말을 그냥 두면 안 되나요?
"-하시니라"와 같은 옛 문체는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이것은 틀리거나 잘못된 표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냥 두었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옛 말들은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이나 어린이들을 배려하여 쉬운 말로 바꾸었습니다.
지금 쓰지 않는 옛 말을 쓰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말고도,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오래 된 것 = 낡은 것 = 할머니 할아버지나 읽는 고리타분한 것 = 버려야 할 것"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초 중등학교 학생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 현행 학교문법과 다른 표기를 접하게 되므로, 언어 생활에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성경은 틀린 곳 투성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야말로 모든 것의 표준이 되어야 할 경전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손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한국 교회 앞으로의 백년을 위해서 지금 우리 모두가 크게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입니다.
교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교회의 반응은 신중합니다. 1) 1961년판 「개역」이 너무 어려워서 현대어로 개정을 해 주던가 달리 새롭게 번역을 하여 달라고 빗발치게 요청한 교회가 있었는가 하면, 2) 번역은 한 번 했으면 되지 왜 자꾸 개정, 혹은 새로운 번역을 하는가 하면서 걱정을 하는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3) 세계 번역의 역사에서 볼 때 이러한 대조적인 반응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늘 있어왔습니다.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교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한 선택에 대하여 후회하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개정판을 출판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으며, 개정자들을 파견한 교단들과 개정자들의 수고와 성서공회의 중재 역할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다만 더 본격적으로 개정하지 않고, 최소한도의 개정만을 한 보수적 경향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개역한글판」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하는 「개역개정판」의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는 분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폭넓은 아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용을 주저하고 있는 교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복잡합니다. 1) 일제히 책을 바꿀 때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2) 고치려면 좀 더 확 고치지 개정이 미흡하다는 견해, 3) 혹시 신학적으로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가 하는 기우, 4) 현재의 「개역한글판」 사용에도 불편이 없다는 안이한 생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기들이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수십 차례 개정을 거듭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1887년의 신약이나, 1900년의 신약, 1911년의 구약을 읽으라고 하면 아마 기겁을 할 것입니다. 1961년의「개역한글판」은 오늘의 독자들, 특히 어리거나 젊은 세대에게는 닫혀 있는 고전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한성서공회의 보급 대책은 무엇인가요?
1)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보급 기간에 한하여 종전 반포가의 1/2에 해당하는 특별 반포가로 반포될 것입니다. 2) 개역 개정판이 개역 한글판에 비해 가독력이나 이해의 정도가 얼마나 더 빠르고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홍보가 계속될 것입니다. 3)신학적 검증은 끝났습니다. 「개역개정판」이 「개역한글판」과 비교해 볼 때 신학적으로 이 두 번역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 지난 5년 동안에 검증이 되었습니다. 아직 덜 개정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은 앞으로 장기적인 새로운 2차 개정 때 범교단적으로 검토되어 개정에 반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하여 개정 대상이 되는 본문에 대한 검토와 연구는 「성경원문연구지」를 통하여 계속 축적되어 갈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요?
대세는 「개역개정판」이 한국교회의 강단용 성경의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지금의 현행 맞춤법과는 다른 맞춤법이 사용된 「개역」, 난해한 한자어가 많은 「개역」,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곳이 많은 「개역」은 지난 한 세기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이제 새 세대는 새 개정판을 선택할 것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전파에 걸림이 되는 장애를 제거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8.개정원칙
*바른 번역으로
형상모양
동방에서대항해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내일내일이
처녀 딸약혼녀
창세기 5:1
개역한글판 : 하나님의 형상대로
개역개정판 : 하나님의 모양대로
원어 뜻에 따라 번역을 달리 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한 기록은 창세기 1:26,27 이외에도 5:1과 9:6에 나타나는데 5:1에서는 “데무트”라는 단어가, 9:6에는 “첼렘”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개역」 성경은 이 두 구절을 모두 “형상”이라고 번역하는데, 구약성경 전체적으로는 “첼렘”은 “형상”으로, “데무트”는 “모양”으로 번역되었다. 창 1:26과 5:3에는 이 두 단어가 나란히 사용되었다.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첼렘)을 따라 우리의 모양(데무트)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5:3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데무트) 곧 자기 형상(첼렘)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5:1에서는 원문이 “데무트”인데 “형상”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원문대로 “모양”으로 바로잡았다. 5:3의 “형상 곧 모양”이 교차적 표현이라는 것과 히브리인들이 대구법(對句法)을 즐겨 사용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형상이나 모양은 결국 같은 내용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원문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창세기 16:12
개역한글판 :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개역개정판 :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원어의 숙어적 의미를 따랐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두고 한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말이다. 「개역」은 NAS(New American Standard version)의 이해를 따라 이스마엘이 그의 모든 형제가 살고 있는 땅의 “동방(東方)에서 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방에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알프네”는 문자적으로는 “…의 얼굴 앞에서(in the face of)”를 뜻하나 숙어적인 의미는 “…를 대항(對抗)하여(in defiance of)”, “……과 적대(敵對)하여”라는 뜻이다. 따라서 천사의 말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이삭의 후손과 늘 적대관계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 숙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 앞에서” 혹은 “동방에서”라고 하면, 문맥과 숙어적 의미를 둘 다 무시하는 것이 된다.
마태복음 5:28
개역한글판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개역개정판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원문의 의미를 중요시하였다
원문에서 “본다”는 동사 “불레포”에는 차서(次序)의 의미가 전혀 없고, 단지 “나쁜 욕망을 가지고 여자를 보면”이란 의미인데 반해서, 「개역」의 문체에는 시간이나 순서가 중요한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불레포”의 시제(時制)가 현재분사, 능동, 주격, 남성, 단수형인 “불레폰”이므로 이 구절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로 옮기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하겠다.
마태복음 6:34
개역한글판 :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개역개정판 :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원문의 숨은 뜻을 밝혔다
예수께서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의 키를 한 치라도 더 키울 수 있겠느냐고 하시며,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꽃이 염려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하신 말씀이다. 문맥상으로 볼 때도 염려를 내일로 미루라는 뜻이 아니라 도무지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원문의 의미는, “내일 일은 내일이 제 스스로(헤아우데스) 염려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산상수훈이 끝난 다음 장인 마태복음 8장에서도 나타난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제자) 중의 하나는 자기 아버지의 장사를 치른 후에 주를 따르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22절)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8:22의 구문과 재귀대명사는 6:34의 것과 꼭 같으며, 복수형인 “헤아우톤”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고린도전서 7:36-39
개역한글판 :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개역개정판 :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오역을 바로 잡았다
「개역」에서는 그리스어 “파르테노스(처녀)”를 “처녀 딸”이라고 번역하였으나, “딸”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원문에 없는 말이다. 「개역」의 “처녀 딸”은 영어번역 ASV(American Standard Version)에서 온 것으로, “딸”을 작은 글씨로 써서 번역자가 임의로 삽입한 말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현재의 본문을 부녀지간의 일로 이해하고 처녀 딸을 지도하는 아버지의 태도로 번역했다는 뜻이 된다.
현대의 여러 번역판들은 여기에 언급된 관계는 부녀지간의 관계가 아닌 약혼자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과, 여기 언급된 “처녀”는 한 남자의 “약혼자인 처녀”이지 한 아버지의 미혼 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한다. 「개역개정판」도 이 본문의 “처녀 딸”을 모두 “약혼녀”로 개정하였다.
고전 7:37 그 약혼녀(←처녀 딸)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 화살표는 개역한글판으로, 굵은 표기의 개역개정판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쉬운 말로
면박너울
반일경지단(半日耕地段)반나절 갈이 땅
구속(救贖)속량(贖良),구원
권고(勸告)돌보다, 보살피다, 찾아오다
권위자(勸慰子)위로의 아들
창세기 24:65
개역한글판 :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개역개정판 :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면박()/너울
우리말 「개역」에 나오는 “면박”이라는 말은 여인들이 얼굴을 가리는 것으로서 영어 번역이 베일(veil) 혹은 스카프(scarf)라고 번역한 것이다. 면박이라는 말은 우리말 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개역」에서 “박”이라고 읽고 있는 한자, 곧 수건 건(巾) 변에 흰 백(白)을 쓴 한자는 “박”이 아니라 “파”나 “말”이고, 그 뜻이 명사는 “머리띠”, “배띠”이고, 동사는 “싸매다”이다. “말수(首)”는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 싸매는 것을 말한다. “파복(腹)”은 배를 감는 헝겊, 곧 배띠를 일컫는 것이다. “面”이라는 말이 일본어 번역에도 사용되어 있다(일어 문어역 사 3:19; 47:2).
우리말 「개역」의 전신인 1911년의 우리말 『구역』(舊譯)에는 “면박(面)”이란 말이 없다. 대신에 “너울”(창 24:65; 38:14; 38:19), “낫츨 망사”(사 3:19), “낫 슈건”(사 25:7), “쟝옷”(사 47:2) 등으로 번역하였다. 面이라는 한자어가 우리말 「개역」에 들어 온 것은 일본어 번역의 영향인 것 같으며, 읽기를 “면박”이라 한 것은 새로운 창안이거나 오독이었을 것 같다. 이번 『개역 개정판』에서는 모두 “너울”로 바뀌었다.
사무엘상 14:14
개역한글판 :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
개역개정판 :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살리라
반일경지단(半日耕地段)/반나절 갈이 땅
삼상 14장 14절의 반일경지단(半日耕地段)은 “반일(半日)”과 “경(耕)”과 “지단(地段)”이 합쳐서 이루어진 말이다. 혹은 “반일경(半日耕)”과 “지단(地段)”의 합성어일 수도 있다. “반나절갈이 밭뙈기”라는 뜻이다.
누가복음 21:28
개역한글판 :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개역개정판 :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구속(救贖)/속량(贖良)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의사 소통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글만을 사용하는 번역에서는 동음이의어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속(救贖)”은 기독교의 용어로서 “대속(代贖)하여 구원하는 것”을 일컫는다. 「개역」에서 구속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바로 대속하여 구원하는 바로 이 구속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반하여, “구속(拘束)”이라고 하는 것은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束縛)하는 것을 일컫는 법률 용어이다. 「개역개정판」은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구속(救贖)은 속량(贖良) 혹은 구원(救援)으로 바꾸고, 구속(拘束)은 구애(拘碍)로 바꾸어서 혼돈을 피하였다.
롬 8:23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고전 7:15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구속)될 것이 없느니라
출애굽기 13:19
개역한글판 :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개역개정판 :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권고(勸告)/돌보다, 보살피다, 찾아오다
“권고”는 “돌보아주는 것”을 뜻하는 “권고(眷顧)”이다. 그러나 이것을 모두 “어떤 행위를 취하도록 권하여 말하는 것”으로서의 권고(勸告)라고 생각하기 쉽다. 「개역」에서 “권고(勸告)”는 다만 구약에 세 곳밖에 없고 그대로 남아 있다.
지혜로운 자는 권고(勸告)를 듣느니라 (「개역」 잠 12:15)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잠 19:20)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잠 27:9)
「개역개정판」은 다른 곳에 나오는 권고(眷顧)를 “돌보다”, “보살피다”, “찾아오다” 등 여러 가지로 바꾸었다.
창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권고하셨고)
눅 19:44 네가 보살핌(←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사도행전 4:36
개역한글판 :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개역개정판 :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권위자(勸慰子)/위로의 아들
일반적으로, “권위자”라고 하면, 탁월한 전문가, 그 방면에 정통한 사람을 우리말에서는 권위자라고 한다. 이 때 권위자는 한자로 권세 권(權), 위엄 위(威), 사람 자(者)를 써서 “권위자(權威者)”라고 쓴다. 그런데 「개역」에 나오는 “권위자”는 권할 권(勸), 위로할 위(慰), 아들 자(子)를 쓴 “권위자(勸慰子)”이다. 그래서 「개역개정판」은 이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바나바”라는 이름이 지닌 뜻을 “위로의 아들”이라고 고쳤다.
*포준 맞춤법으로
된소리어미를 예사소리어미로 바로잡았다.
예사소리를 된소리로 바로잡았다.
선어말어미(先語末語尾) “시/옵”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틀린 금지/부정을 바로잡았다.
틀린 접두사를 바로잡았다.
창세기 12:2
개역한글판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개역개정판 : 너는 복이 될지라
된소리어미를 예사소리어미로 바로잡았다
“-군”은 이제는 “-꾼”으로 표기된다. “심부름꾼”, “익살꾼”, “일꾼”, “장꾼”, “장난꾼”, “지게꾼” 등과 같이, 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어 “-꾼”이 우리말 「개역」 성서에서는 일반적으로 “-군”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규정에서는 된소리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창 13:16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있을찐대)
레 4:24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지니(←잡을찌니)
시편 127:1
개역한글판 :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개역개정판 :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예사소리를 된소리로 바로잡았다.
“-군”은 이제는 “-꾼”으로 표기된다. “심부름꾼”, “익살꾼”, “일꾼”, “장꾼”, “장난꾼”, “지게꾼” 등과 같이, 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어 “-꾼”이 우리말 「개역」 성서에서는 일반적으로 “-군”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규정에서는 된소리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레 25:53 주인은 그를 매년의 삯꾼(←삯군)과 같이 여기고
눅 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일군)된 자들이
마태복음 6:10
개역한글판 : 나라이 임하옵시며
개역개정판 : 나라가 임하시오며
선어말어미(先語末語尾) “시/옵”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어말어미(語末語尾)에 선행(先行)되어 나타나는 활용어미 “옵”의 위치가 「개역」에서는 존칭선어말어미 “시” 앞에 오지만, 현재의 어법과 다르므로, 바로잡았다.
창 18:3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마옵시고)
마 6: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주옵시고)
창세기 15:1
개역한글판 :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개역개정판 :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틀린 금지/부정을 바로잡았다.
“두렵다”는 형용사이다. 따라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명령형으로 쓸 수 없고 “두려워 말라”는 틀린 표현이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두려워 말라”를 “두려워하지 말라”로 고쳤다.
눅 1:13 사가랴여 무서워하지(←무서워) 말라
빌 1:20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부끄럽지) 아니하고
창세기 22:13
개역한글판 : 그 수양을 가져다가
개역개정판 : 그 숫양을 가져다가
틀린 접두사를 바로잡았다.
우리말 “표준어 사정 원칙”에 따르면,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이 되어 있다. 따라서 “수꿩”, “수나사”, “수놈”, “수소”가 바른 표기이고, “숫꿩”, “숫나사”, “숫놈”, “숫소”는 틀린 표기이다. 그러나 양과 염소와 쥐의 경우는 접두사를 “숫-”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
레 4:23 그는 흠 없는 숫염소(←수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레 9:2 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수양)을 여호와 앞에
*명확한 뜻으로
난하주를 첨가하였다
뜻을 첨가하였다.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개정하였다.
원문의 문법적인 의미를 반영하였다.
본문의 내용을 명확히 하였다.
로마서 1:14
개역한글판 :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개역개정판 : 헬라인이나 3)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3)야만인 :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
난하주를 첨가하였다
그리스어 성경을 철저히 대조하여, 성경 본문의 뜻을 더 밝힐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난하주를 첨가하였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4)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4)주: 헬, 당신은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4)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4)만민에게: 헬, 온 창조세계에
로마서 15:1
개역한글판 :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개역개정판 :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뜻을 첨가하였다
그리스어 본문 자체에 없으나 본문의 뜻을 더 밝히거나 문맥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첨가한 경우이다. 원문에 해당 낱말이 없는 첨가 번역일 때 작은 글씨로 바꾸었다.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요삼 1: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마태복음 1:1
개역한글판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개역개정판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개정하였다
마태복음 첫 장에 나오는 사람 이름 명단은 "조상으로부터의 대대의 계통"을 말하는 것으로서 "세계(世系)"라는 용어가 딱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글전용판 성서에서 이 말은 "세계(世界)"와 혼동이 되는 동음이의(同音異義)어이다. 바꾸어 쓸 수 있는 "족보(族譜)"라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세계(世系)와는 구별된다. 족보는 한 계통만을 적지 않고 형제와 배우자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도 기록이 된다.
세계(世系)는 장손(長孫)을 중심으로 하여 대대의 계통을 적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첫 장의 경우, “세계”라는 말을 피하려면, “족보”보다는 “계보(系譜)”가 더 적절한 말이다.
룻 4:18 베레스의 계보(系譜)(←세계(世系))는 이러하니라
창세기 3:1
개역한글판 :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개역개정판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원문의 문법적인 의미를 반영하였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뱀”을 문장의 서두에 두어서 뱀이 다른 모든 짐승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간교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본문이 예외적으로 뱀의 위치를 문법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하나카쉬(그런데 뱀은) 하야 아룸 미콜 하얏 핫사데”라고 하여 히브리어 문장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주어 “뱀”을 동사 앞에 선행시켜 독자가 그것에 주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창세기 3:19
개역한글판 :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개역개정판 :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본문의 내용을 명확히 하였다
「개역」의 번역에서는 사람의 얼굴에서 땀이 나는 것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조건인 것처럼 진술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의 내용은 사람이 흙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곡식을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차별없는 말로
문둥이, 문둥병자, 문둥병나병환자(癩病患者), 나병(癩病)
소경맹인
벙어리/귀머거리/앉은뱅이/말 못하는 사람/못 듣는 사람/못 걷는 사람
절뚝발이/곱사등이/난쟁이다리 저는 사람/등 굽은 자/키 못 자란 자
불구자(不具者)/병신(病身)장애인(障碍人)/몸 불편한 자
아비/어미아버지/어머니
계집여자, 여인, 소녀
출애굽기 4:6
개역한글판 :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흰지라
개역개정판 :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문둥이, 문둥병자, 문둥병/나병환자(癩病患者), 나병(癩病)
「개역」에 나오는 “문둥병”은 고대의 “악성 피부병” 일반을 가리키는 것이다. “문둥이”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 병에 걸렸다가 완치가 된 이들도 자신들이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대신 “한센병”이나 “나병”이라고 하고, 자신들을 “나병환자”라고 부르는 것은 양해한다. 「개역개정판」에서는 이 병과 관련된 65개 구절을 수정하였다.
마 10:8 나병환자(←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막 1:40 한 나병환자(←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마태복음 9:27
개역한글판 :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 질러 가로되
개역개정판 :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살리라
소경/맹인
눈이 멀거나 어두워 못 보는 사람을 지금은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 혹은 맹인(盲人)이라고 하지만, 토박이말 “소경”과 “장님”, 한자어 “봉사(奉事)”, “맹자(盲者)” 등도 다 시각장애인을 가리키는 말들이다. “장님”은 한 때 “소경”을 높여 부르는 칭호였지만, 그것이 놀리는 말이나 욕으로 쓰이면서 비속한 말이 되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소경”을 모두 “맹인”으로 바뀌었다.
레 21:18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하지 못할지니 곧 맹인(←소경)이나
마태복음 9:32
개역한글판 :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개역개정판 :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벙어리/말 못하는 사람, 귀머거리/못 듣는 사람, 앉은뱅이/못 걷는 사람
시 58:4의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을 꾸짖는 "귀머거리"나 사 56:10의 "벙어리"라는 말은 의도적인 비하로 보고 고치지 않았다. 성경에는 사건에 대한 설명이나 일반적인 교훈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직접화법과 인용도 기록되었기 때문에 논쟁과 욕설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번역이나 개정에는 화자(話者)의 의도가 존중되어야 한다.
사 35:5 못 듣는 사람(←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행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레위기 21:18
개역한글판 : 절뚝발이나
개역개정판 : 다리 저는 자나
절뚝발이/다리 저는 사람, 곱사등이, 난쟁이/등 굽은 자, 키 못 자란 자
레 21:20 등 굽은 자(←곱사등이)나
레 21:20 키 못 자란 자(←난장이)나
마태복음 15:31
개역한글판 : 불구자가 건전하고
개역개정판 : 장애인이(←불구자가) 온전하게 되고
불구자(不具者)/장애인(障碍人), 병신(病身)/몸 불편한 자
마 18:8 장애인(←불구자)이나 ……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눅 14:13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창세기 3:20
개역한글판 :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개역개정판 :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아비/아버지, 어미/어머니
“아비”는 본래는 “아버지”의 옛말이었으나, “아버지”의 비칭(卑稱)으로도 쓰여 모두 “아버지”로 고쳤다. “어미”의 경우도 “어머니”의 비칭으로 쓰이고 있는데다가, 새끼를 낳은 동물의 암컷을 “어미”라고 일컫기도 하므로, 사람의 경우, “어미”는 “어머니”로 고쳤다.
창 9:22 그의 아버지(←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창 27:13 어머니(←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출애굽기 23:12
개역한글판 :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개역개정판 :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계집/여자, 여인, 소녀
“여자”를 속되게 부르는 “계집”이라는 말은, 그것이 욕으로 쓰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자”, “여인” 혹은 “소녀” 등으로 바꾸었다.
왕상 3:16 창기 두 여자(←계집)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왕하 5:2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9.개역개정판 이렇게 달라졌다.
이 책은 「개역개정판」을 기존의 「개역」과 비교해 볼 때 개정판에서 무엇이 어떻게 개정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이 저서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목회자들에게 새로 개정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데 있고, 부차적으로는 일반 신도들에게 기존의 「개역」 사용을 재고하고, 「개역개정판」 사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첫 장에서는 그 동안 「개역」에서 잘못 번역되었거나 잘못 이해된 본문들이 「개역개정판」에서는 어떻게 고쳐졌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둘째 장에서는 어려운 말들이나 표현들이 어떻게 쉽게 고쳐졌는지를 밝혔다.
셋째 장에서는, 먼저, 우리말 맞춤법의 변화 과정과 그것이 우리말 번역 성경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넷째 장에서는 표현을 개선한 것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마지막 장에서는 「개역개정판」의 편집상의 특징이 진술되어 있다.
대한성서공회 총무 - 민영진
10.개역개정을 말한다.
「개역개정판」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56/61)을 개정한 것이다. 우리말 완역 「성경전서」는 1911년에 출간된 이래, 1938년에 한 번 개정되었고, 1961년에 두 번째로 개정된 바 있으나, 1938년판이나 1956/61년판은 「개역」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그대로 불려오다가 그 「개역」이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표기를 달리 하여 출판되면서부터 「성경전서개역한글판」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옛 철자법을 따른 1938년 「개역」은 점차 보급이 중단되고,「개역한글판」만이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1998년에 개정되어 나온 「개역개정판」은 그 개정의 범위가 이전의 것들보다 정도가 훨씬 크고 넓기 때문에 이름을 다시 주어 「성경전서개역개정판」이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개화기에 번역되고 그 후 몇 차례 고쳐진 「개역」이 역사적으로 한국 교회의 사랑을 받아 온 자랑스러운 성경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번역 된 지 한 세기가 가까운 옛 번역이므로 오늘날 이 번역을 그대로 계속하여 쓰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학교 교과서와 일반 출판물에서 쓰는 우리글의 맞춤법이 달라졌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제 언어도 변화를 겪고 있으며, 성서학 및 관련 학문들도 발전하여, 기존의 번역 성경을 개정할 필요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된 바 있다.
그리하여, 대한성서공회는 가능한 한 현재의 「개역」 성경의 분위기와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도로 꼭 필요한 부분만 개정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개정 작업에 착수한 것이 1980년대였다. 1983년 9월부터 약 10년간의 작업 끝에 개정 원고가 완성되었고, 1993년 8월, 각 교단에 의뢰하여 파송을 받은 성서학자, 신학자, 목회자, 국어학자 들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개정 감수위원회’가 조직되어 4년 동안 157회의 독회와 토론을 거쳐 개정 원고를 감수하였으며, 1997년 11월에는 「성경전서 개역 개정판 (감수용)」을 출간한 바 있다. 이 감수용 성경을 1,600여 명 이상의 한국교회 각 교단 목회자들과 평신도 대표와 신학자들에게 보내어서 의견을 듣기도 하였다. 1998년 5월에는 개정위원회와 감수위원회가 함께 모여, 전국 교회로부터 들어온 여러 가지 의견을 최종적으로 개정 작업에 반영하였다.
더 좋은 번역을 만들려는 열성을 가지고 지난 15년 동안 작업한 결과,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여러 곳을 개정하게 되었지만, 시대의 흐름과 언어의 변화를 고려하여, 꼭 고쳐야할 부분만을 개정함으로써, 기존의 번역인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의 번역 특성을 최대한 존중하였으며, 앞으로 계속하여 현재의 「개역」 성경이 시대 시대에 따라 개정을 거듭하면서 오래도록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읽힐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1)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고려하여, 꼭 고쳐야할 부분만을 개정함으로써,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의 번역 성격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따라서, 같은 번역 내용을 표현을 달리하여 개정하는 일은 삼갔다. 예를 들면, ‘주의 기도’(마6:9-13) 같은 것을 개정할 때도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오늘날 우리에게”를 “오늘 우리에게”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정도로 개정하였을 뿐, 번역의 내용이나 표현이나 문장 구조나 문체에 있어서 「개역」의 특징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2) 「개역」 성경의 옛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하다’체를 사용하여 현대화하지 않고, ‘하느니라’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고어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개역」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1-4 절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에서 보듯이, ‘하시니라’ ‘좋았더라’ 등의 표현을 ‘하셨다’ ‘좋았다’ 등으로 고치지 않았다.
3) 인명과 지명 기타 외래어의 음역은 「개역」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다만, 「개역」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던 것들만 개정하였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이름이 「개역」에서는 ‘바실래’와 ‘바르실래’로 나오는 경우, 「개역개정판」에서는 ‘바르실래’로 통일하였다.
4) 「개역」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서는 번역 내용의 일부를 고쳤다. 예를 들면, ‘주기도’(마 6:9-13)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로 고쳐서 다음에 나오는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와 수동태의 문법 형식이 일치하게 개정하였다.
5)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어와 한자어는 쉬운 말로 고쳤다. 예를 들면, 창세기 24장 22절의 ‘약대’는 ‘낙타’로, 창세기 15장 4절의 ‘후사(後嗣)’는 ‘상속자(相續者)’로, 이사야 25장 5절의 ‘훤화(喧譁)’는 ‘소란(騷亂)’ 등으로 고쳤다.
6) 국어 맞춤법이 달라진 곳을 고쳤다. ‘일찌기’는 ‘일찍이’로; ‘-찌라도’는 ‘-지라도’로, ‘찌어다’ 같은 것은 ‘지어다’로; ‘추숫군’은 ‘추수꾼’으로, ‘수염소’는 ‘숫염소’로 고친 것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 밖에, 문법에 맞지 아니하는 문장이나 어색한 문장을 다듬었다. 예를 들면, 창세기 3장 7절의 “치마를 하였더라”는 “치마로 삼았더라”로, 마태 3장 2절의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고쳤다.
7) 장애인 기피/차별 용어를 고쳤다. 예를 들면, ‘문둥병’은 ‘나병’으로, ‘소경’은 ‘맹인’으로, ‘곱사등이’는 ‘등 굽은 자’로, ‘난쟁이’는 ‘키 못 자란 사람’으로, ‘절뚝발이’는 ‘다리 저는 자’로, ‘벙어리’는 ‘말 못하는 사람’으로, ‘귀머거리’는 ‘못 듣는 사람’으로, ‘앉은뱅이’는 ‘못 걷는 사람’으로, ‘불구자’는 ‘장애인’으로, ‘병신’은 ‘몸 불편한 사람’ 등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마태복음 6:34
개역한글판 : 내일 걱정 내일하라
개역개정판 : 내일 걱정은 내일이한다
이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34절의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라고 한 본문이다. 25절 이하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당신의 청중에게 염려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계신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먹을 걱정을 한다거나 몸을 보호하려고 입을 것을 걱정한다거나 하지 말라고 하신다. 34절은 결론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내일 걱정마저도 사람이 할 것이 아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한다. 이번 「개역개정판」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로 고쳤다.
고린도전서 7:36-39
개역한글판 :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개역개정판 :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고린도전서 7장 34-40절에 미혼자와 과부에게 주는 권면 가운데 다음과 같은 권면이 있다. 「개역」에서는 그리스어 ‘파르테노스(처녀)’를 ‘처녀 딸’이라고 번역하였으나, ‘딸’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원문에 없는 말이고, 그래서 「개역」은 ‘딸’을 작은 글씨로 써서 번역자가 임의로 삽입한 말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삽입구는 「개역」이 현재의 본문이 부녀지간의 일로 이해하고, 아버지가 자기의 과년(過年)한 처녀 딸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 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여러 번역판들은 여기에 언급된 관계는 부녀지간의 관계가 아닌, 약혼자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 그리고 여기 언급된 ‘처녀’는 한 남자의 ‘약혼자인 처녀’이지 한 아버지의 미혼 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한다. 다른 여러 언어 번역에서는 ‘처녀 딸’이 아니고 ‘처녀’ 혹은 ‘약혼자’이다. 이번에 「개역개정판」도 이 본문의 ‘처녀 딸’을 모두 ‘약혼녀’로 개정하였다.
창세기 16:12
개역한글판 : 동방에서는
개역개정판 : 대적하며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두고 말한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말 중에 이스마엘이 그의 모든 형제가 살고 있는 땅의 “동방(東方)에서 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개역」은 이해하고 있다. ‘동방에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알 프네’는 문자적으로는 ‘...의 얼굴 앞에서’를 뜻한다. 히브리어 ‘알프네’의 숙어적 의미는 ‘.....를 대항(對抗)하여’, 혹은 ‘.......과 적대(敵對)하여’라는 뜻이다. 이 숙어를 여기에서 문자대로 이해하여 ‘........ 앞에서’ 혹은 ‘동방에서’라고 하면, 문맥과 숙어적 의미를 둘 다 무시하는 것이 된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이스마엘의 후손이 이삭의 후손과 늘 적대적 관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현대어 번역들은 여기에서 히브리어 ‘알프네’의 숙어적 의미를 살려 창세기 16장 12절의 “동방(東方)에서”는 “대적(對敵)하며”로 고쳤다.
옛날에 쓰던 한자어란 일반적으로 한자어 중에 요즘 잘 안 쓰는 말들을 일컫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역」에서 볼 수 있는 감계(鑑戒 신 28:46), 개동시(開東時 창 44:3), 반구(斑鳩 아 2:12), 빙거(憑據) (눅 6:7) 같은 말들이다. 요즘에는, ‘감계’는 ‘훈계(訓戒)’라고 말하고, ‘개동시’는 ‘아침이 밝을 때’라고 말하고, ‘반구’는 ‘비둘기’라고 하고, ‘빙거’는 ‘증거(證據)’라고 한다. 이렇게 고치면 오늘의 독자들에게 쉬운 말이 된다.
뜻이 바뀌어서, 한 세기 전의 뜻과 지금 통용되는 뜻이 달라서 오해를 유발시키는 단어도 어려운 말로 분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발명(發明)’(행 19:33), ‘발행(發行)’(창 13:3), ‘불평(不平)’(창 37:4)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위 세 단어의 요즘 통용되는 의미는, ‘발명’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고, ‘발행’은 인쇄물을 출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불평’은 불만을 말하는 것과 관련된 말이다. 그러나 「개역」 안에서는 ‘발명’은 ‘변명(辨明)’을 뜻하고, ‘발행’은 ‘출발(出發)’을 뜻하고, ‘불평’은 ‘불화(不和)’를 뜻한다.
우리말 「관주 성경전서 간이 국한문 개역 한글판」(1964)에 들어 있는 한자어로 된 단어는 대략 5,310개이다. 이것들이 모두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어려운 말들이다. 삼상 14장 14절의 반일경지단(半日耕地段)은 ‘반일(半日)’과 ‘경(耕)’과 ‘지단(地段)’이 합쳐서 이루어진 말이다. 혹은 ‘반일경(半日耕)’과 ‘지단(地段)’의 합성어일 수도 있다. ‘반나절갈이 밭뙈기’라는 뜻이다. 「개역」의 난해구가 「개역개정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쉽게 고쳐졌다.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지단(半日耕地段)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屠戮)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개역」 삼상 14:14)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개역개정판」 삼상 14:14)
‘손할례당(損割禮黨)’의 경우도 현대의 우리말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말이다. ‘손할례당’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말 사전에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손(損)’과 ‘할례(割禮)’와 ‘당(黨)’이라는 말을 따로 따로 독립시켜 이해한다는 것도 올바른 뜻 이해를 방해한다. 이 말이 ‘할례(割禮)를 훼손(毁損)하는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어 문리역(文理譯)에는 손할자(損割者)라고 하여 ‘스스로 몸을 해(害)하는 자’라고 번역하였다. 영어흠정역(KJV)은 ‘몸의 일부를 절단(切斷)하는 것’ (the concision), 「영어신국제역(NIV)」은 ‘몸의 일부를 훼손하는 자들’ (those mutilators of the flesh)이라고 번역하였다. 「개역」의 어려운 표현, 틀린 표현 ‘손할례당(損割禮黨)’이 「개역개정판」에서는 ‘몸을 상해(傷害)하는 일’이라고 쉬운 말로 바뀌었다.
한글맞춤법통일안과 표준어 규정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여러 번 바뀌어왔다. 1961년에 현재의「개역한글판」이 출간된 이후에도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개역 성경에서 읽는 맞춤법과 표준어가 서로 다르게 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개역개정판」은 이처럼 바뀌어진 규정을 반영시켰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된소리어미를 예사소리어미로 바로잡았다
예사소리로 적어야 할 어미가 「개역」에서는 된소리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으)ㄹ 찌니라’ ‘-(으)ㄹ 찌라도’ ‘-(으)ㄹ 찌어다’ ‘-(으)ㄹ 찌언정’ ‘-(으)ㄹ 찐대’ ‘-(으)ㄹ 찐저’ 등 된소리어미를 「개역개정판」에서는 예사소리어미로 바로잡아서 ‘-(으)ㄹ 지니라’ ‘-(으)ㄹ 지라도’ ‘-(으)ㄹ 지어다’ ‘-(으)ㄹ 지언정’ ‘-(으)ㄹ 진대’ ‘-(으)ㄹ 진저’ 등으로 고쳤다.
2) 예사소리어미를 된소리어미로 바로잡았다
‘일군’은 이제는 ‘일꾼’으로 표기된다. ‘심부름꾼’ ‘익살꾼’ ‘장꾼’ ‘장난꾼’ ‘지게꾼’ ‘파수꾼’ 등과 같이, 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어 ‘-꾼’이 우리말 「개역」 성서에서는 일반적으로 ‘-군’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규정에서는 된소리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3) 선어말어미(先語末語尾) ‘시/옵’의 위치를 바꾸었다
어말어미(語末語尾)에 선행(先行)되어 나타나는 활용어미 ‘옵’의 위치가 「개역」에서는 존칭선어말어미 ‘시’ 앞에 오지만, 현재의 어법과 다르므로, 바로잡았다. 예를 들면, 마태 6장 9절의 주기도문 중에서 “하옵시며”를 “하시오며”로, 마태 6장 11절 “주옵시고”를 “주시옵고”로 고쳤다. 마태 6장 9절, 「개역」의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개역개정판」에서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고쳤다.
4) 틀린 능동/수동 관계를 바로잡았다
‘주기도’(마 6:9-13)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로 고쳐서 다음에 나오는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와 수동태의 문법 형식이 일치하게 개정하였다. 창세기 12장 13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하겠노라 하니라”는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로 고쳤다.
5) 틀린 금지/부정을 바로잡았다
창세기 15장 1절. 「개역」의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는 「개역개정판」에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로 고쳤다. 같은 이유에서 빌립보 1장 20절, 「개역」의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는 「개역개정판」에서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로 고쳤다.
6) 틀린 사역형(使役形)을 바로잡았다
창세기 19장 33절, 「개역」의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는 「개역개정판」에서는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로 고쳤다.
7) 표준어 규정에 따라 바로잡은 것도 있다.
우리말 ‘표준어 사정 원칙’에 따르면,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이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수꿩’ ‘수나사’ ‘수놈’ ‘수소’가 바른 표기이고, ‘숫꿩’ ‘숫나사’ ‘숫놈’ ‘숫소’는 틀린 표기이다. 그러나 양과 염소와 쥐의 경우는 접두사를 ‘숫-’으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수양”은 “숫양”으로(창 22:13), “수염소”는 “숫염소”로(레 4:23)로 고쳤다.
교회의 반응은 신중하다. 1961년판 「개역」이 너무 어려워서 현대어로 개정을 해 주던가 달리 새롭게 번역을 하여 달라고 빗발치게 요청한 교회가 있었는가 하면, 번역은 한 번 했으면 되지 왜 자꾸 개정, 혹은 새로운 번역을 하는가 하면서 걱정을 하는 교회들도 있었다. 세계 번역의 역사에서 볼 때 이러한 대조적인 반응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늘 있어왔다.
실재로 「개역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는 교회들은 즐거워하고 있다. 자신들이 한 선택에 대하여 후회하는 교회는 드물다. 교회들은 이러한 개정판을 출판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으며, 개정자들을 파견한 교단들과 개정작업에 직접 참여한 개정자들과 성서공회의 중재 역할을 평가하고 격려하고 있다. 다만 더 본격적으로 개정하지 않고, 최소한도의 개정만을 한 보수적 경향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개역한글판」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하는 「개역개정판」의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는 분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폭넓은 아량을 보이고 있다.
「개역개정판」의 사용을 주저하고 있는 교회들도 있다. 1)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개역」을 「개역개정판」으로 일제히 바꿀 때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2) 고치려면 좀 더 과감하게 고칠 것이지, 그렇지 못하여 개정이 미흡하다는 불만, 3) 혹시 기존의 「개역」과 비교해볼 때 「개역개정판」이 신학적으로 어떤 차이점에 발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 4) 현재의 「개역한글판」 사용에도 불편이 없다는 안이한 생각들을 볼 수 있다.
대한성서공회의 대책은 다음과 같다. 1)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보급 기간에 한하여 종전 반포가의 1/2에 해당하는 특별 반포가로 반포될 것이다. 기독교출판사들이 성서공회와 제휴하여 「개역개정판」에 찬송가를 합본하여 출판하기도 하고, 주석 성경을 만들어서 보급하기도 할 것이다. 2) 아직 덜 개정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은 앞으로 장기적인 새로운 2차 개정 때 범교단적으로 검토되어 새로운 개정이 이루어질 때 반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를 위하여 개정 대상이 되는 본문에 대한 검토와 연구는 「성경원문연구」를 위시한 각종 연구지를 통하여 계속 축적되어 갈 것이다. 3) 번역의 질이나 신학적 내용에 대한 검증은 지나 5년 동안 이미 끝났다. 「개역개정판」이 「개역」과 비교해 볼 때 신학적으로 이 두 번역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이 지난 5년 동안에 검증이 된 셈이다. 4) 현재의 「개역」만으로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들이 지금 읽고 있는 「개역」마저도 최초의 번역 이후 여러 차례 줄곧 개정되어 왔다는 사실과, 차세대는 물론이려니와 지금의 젊은 세대를 위해서라도 「개역개정판」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번역임을, 여러 기회에 여러 매체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주지시켜 나갈 것이다. 5) 「개역개정판」이 「개역」에 비해 가독력이나 이해의 정도가 얼마나 더 빠르고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홍보가 계속될 것이다.
대세는 「개역개정판」이 한국교회의 강단용 성경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지금의 현행 맞춤법과는 다른 맞춤법이 사용된 「개역」, 난해한 한자어가 많은 「개역」,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곳이 많은 「개역」은, 지난 한 세기에는 큰 공헌을 하였지만, 이제 새 세대는 새 개정판을 선택할 것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전파에 걸림이 되는 장애를 제거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11.개역개정 보기
개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한국찬송가공회가 발행한 찬송가에는
(나라와 권세와~) 앞에 '대개'가 첨가
되어있음
개정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9-13
"주기도문"의 개정을 두고서는 개정위원들 사이에도 견해 차이로 인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최소한 개정을 함으로써, "개역한글판"의 번역을 존중하였습니다.
개역한글판 : 나라이 임하옵시며
개정개역판 : 나라가 임하옵시며
'나라'는 중세국어에서 'ㅎ종성 체언'인 '나랗'으로서, 주격조사 '-이' 가 붙어 "나라ㅎ+이"로 쓰던 말이다. 그러던 것이 '나라'에 'ㅎ' 받침이 없어지면서, 주격 조사 '-이'가 남은 형태이다. 1911년에는 '-가'로 적었던 주격조사를 1938년 개역 때에 이러한 문법적 이유로 '-이'로 개정하였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나라에 임하옵시며"로 오해했던 본문인데, 이제 60여년 만에 현대의 어법을 따라 개정한 것이다.
개역한글판 : 오늘날 우리에게
개정개역판 : 오늘 우리에게
'오늘'의 희랍어 원어는 분명히 24시간의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 여러 날 또는 한 시대를 가리키는 '오늘날'이 아니다. '오늘날'에 '오늘'의 뜻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은 거의 "요즈음의 시대"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어서, 낯설게 느껴지게 하거나 오해를 일으키게 하였다. 오해를 줄이기 위하여 개정하였다.
개역한글판 :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개정개역판 :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중세국어에서는 겸양의 선어말어미로 '-옵시'를 썼지만, 현대어로 오면서 높임말로 존칭의 선어말어미 '-시-'가 모든 동사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옵시'와 같이 존칭과 겸양이 중복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시오'가 존경과 겸양의 선어말 어미로 두루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11년 「구역」의 "일홈을 거륵게 옵시며"를 1938년 「개역」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개정하면서, "-옵시"를 "시오"로 개정하여, 일부 본문 개정에 반영되었던 어법의 변화인데, 이제 주기도문 전체에 반영하여 어법의 통일을 기하였다.
개역한글판 : 대개
개정개역판 :
"대개"라는 말은 헬라어 hoti에 대한 번역이다. 아주 초기에 선교사들이 조선말을 배우기 위해 번역했던 1892년 '마태복음'에서, 영어의 'for'(그리스어 '호티')를 기계적으로 '대개'로 번역하여 이 말을 103회나 사용하였는데, 이는 서툰 수준의 우리말 번역이었다. 1900년의 구역 신약전서의 마태복음에 이 말이 17회만 남았다가, 1938년 개역 때에 모두 없어졌다.
한국교회에서는 1983년 통일찬송가가 나오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대개"가 있었던 구역의 '주기도'로 기도를 하였다. 그러다가 통일찬송가에 개역의 주기도문이 실리는데, 1938년 이후의 개역 성경 본문 그대로가 아니라, 개역 본문에 구역에 있었던 "대개"만 되살린 형태로 실린다.
원어 hoti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 접속사로서, "왜냐하면 ...때문이다"의 뜻이지만, 이렇게까지 번역하는 것은 원문에 비해 무거운 번역이 된다. 우리말은 전치사가 없는 말이기 때문에, 후치사인 조사 어미로 그 의미를 나타내며, 또한 "어순과 문맥"이 이러한 내용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개역 때에 번역하지 않거나, "이는 ...'-임/-함'이라" 정도로 번역하였다. 게일역(1925년), 개역(1937년), 새번역(1967년), 공동번역(1971년) 표준새번역(1983) 등 중요한 우리말 번역에는 모두 "대개"가 없다. "대개"가 없는 대로 「개역개정판」 주기도문 본문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