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윤홍
그때까지 나는 나뭇잎의 앞면만을 보아왔다
지나가며 스쳐가며 그것이 나뭇잎의 전부인줄 알았다
나뭇잎들의 윤기 잘잘 흐르는 저 모습이
그들의 전부인줄 알았다
은성銀盛한 여름의 한 때, 숲으로 들어가
나무의 둥근 그늘을 만들고 있는
나뭇잎들 속에 섰다
그 때 내가 본 것은 무엇이 였던가
나뭇잎,
그 배면背面에서 스며 나오고 있는
너무도 엷어 차마 빛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너무도 엷어 차마 보인다 라고도 말할 수 없는
눈 시리도록 투명한 슬픔이
앞으로 앞으로 밀려나가서는 잎이 되고 있었다
내가 바라보던
내가 바라보며 전부인줄 알았던
저 연 초록 잎이 되고 있었다
한 순간
숲이 크고 길게 흔들렸는지
마치, 기다려 손 놓은 듯
나뭇잎 하나 발밑으로 내려앉고
터진 잎새들 사이로 바람은 뒤척거렸던가
햇살은 어른거렸던가
환한 그늘이 바싹 말라가는 동안
다시 바라본 나뭇잎 배면은
애벌래의 빈 껍질이 고치에 둘둘 말려 붙어있는,
거치른, 무광택의 배면일 뿐
숲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백년도 더 산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시인이 아름다운 시어로 가르쳐 주기 전 까지 이 소중한 나의 삶을 '지나가며 스쳐가며' 남의 삶인양 바라보았읍니다. 그리고 아픔도 없이, '잠 못이루는 밤도 없이' 남이 쳐들고 가는 깃발을 생각없는 어린애처럼 쳐다보며 그 길만이 반드시 가야되는 길인양 걸어갔읍니다. 그러다 여름이 한창인 어느 날, 시인은 '은성한 여름의 한 때'라는 격조있고 화사한 글귀로, 우리를 우리가 '한 때 전부인줄 알았던' '윤기 잘잘 흐르는 저 모습'에서 유리시켜 '나무의 둥근 그늘' 밑으로 데려다 세웁니다. 그때 우리가 본 것은 너무도 작아서 차마 얘기거리도 안되는 그런 것들이, 너무도 의례적인 것들이어서 차마 뭘 했다고도 말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앞으로, 앞으로' 밀려나가서는 우리가 한 때 전부인줄 알았던 '저 연 초록잎이' 되고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이었읍니다.
'숲이 크고 길게 흔들린' 깨달음이었음에도 시인은 깨달음의 기쁨을 아우성으로 소리치지 않습니다. 그저 나뭇잎 하나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고, 바람에 나뭇잎은 뒤척일 뿐입니다. 그리하여 이미 삶에도 죽음에도 아둥바둥대지 않는 백 년도 더 산 중늙은이를 시인은 문인화처럼우리에게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