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찬양/간증/묵상

[간증]Re: 김춘근장로(Why me? 저자)의 간증 글

작성자유상근|작성시간04.04.17|조회수324 목록 댓글 0



♣♣♣ 죽음 앞에서 만난 주님 ♣♣♣


1976년 10월 1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날이었다. “당신은 일년 안에 죽습니다”라는 청천벽력의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의사 말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단순한 담석증세로 병원에 갔다가 이제는 의학적으로 치료 불가하다는 악성 간경화로 수술도 불가능하고 죽음을 준비하라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해 봄 나는 교수가 된지 4년만에 LA북서쪽 아름다운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은 유명한 사립대학인 페퍼다인 대학교(Pepperdine University)에서 전체 학생들의 투표로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다. ‘드디어 그 많은 고생 끝에 이제는 미국에서 잘 살게 되었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는 보장받은 탄탄대로만을 걸어가면 된다라는 기쁨이 있었다. 이렇게 1976년은 37세의 젊은 나이에 최고의 영예과 절망을 함께 느꼈던 해였다.

만삭의 여인처럼 팽팽해진 복부 체중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배는 만삭된 여인처럼 팽팽하게 늘어났다. 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피는 독소로 탁해지고 피부는 독이 퍼져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늦은 밤 옆방에서 흐느끼며 기도하는 아내의 소리를 들으며 어린 자녀(딸 샤론과 아들 폴)의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하나님 와이 미?(Why me?)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죄를 지었기에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 나는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내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반항심으로 꽉 차 있었다.

갖은 치료요법을 써봐도 전혀 차도가 없은지 7개월… 나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얍복강의 야곱과 같은 각오로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LA동쪽에 있는 빅 베어 마운틴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조그만 오두막을 빌려 기도를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몸 하나님께 응답받기 전엔 절대로 산을 내려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주님께 매달렸다. 말이 울부짖음이지 당시 나는 소리를 질러도 힘이 없어 거의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약한 상태였고 복수로 가득찬 배는 물한모금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터질 듯 했다.

그러기를 육일. 자정이 지나 새벽 1시쯤 나는 심장이 터질듯한 극심한 고통속에 거의 기다시피 큰 나무가 넘어진 곳까지 가서 내 마음 속에 쌓였던 모든 것들을 다 내놓고 울부짖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강한 말씀이 내 입술을 통해 영어로 튀쳐 나왔다. “네가 네 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 네가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죽어가는 것은 모르느냐?” 엄청난 충격과 도전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답답하셔서 내 입을 열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강하게 지적하신 영혼의 독소는 분명 죄의 문제였다.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내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가 하나하나 TV스크린 같이 내 눈앞에 환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교적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 신앙적인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며 큰 죄나 많은 죄를 지었다는 느낌없이 합리적으로 살아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대학에서 기독학생회 회장도 지냈고 4년내내 장학생으로 공부(경희대 정경대학)하고 졸업할 때는 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 교회에선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 청년회 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24살 총각으로 집사까지 지냈다. 1967년 미국에 와서도 학교, 도서관, 교회, 가정밖에 몰랐다.

좋은 가장, 성실한 교수, 그리고 열심있는 집사로 큰 과오없이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하나님 앞에 완전히 열어놓고 보니 회칠한 무덤과 같았다. 나중에 이 죄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그 목록을 적었는데 무려 52페이지에 달했다. 그날 나는 나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인 교만이 내 안에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미국 학생들과 경쟁하며 어떤 날은 78시간동안 3일 밤낮을 1분도 자지 않고 밤을 꼬박 새우며 연구하고 페이퍼를 썼고 하루 20시간 이상씩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석사를 거쳐 미국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6년동안의 지독한 공부과정에서 나는 매일 평균 3시간 정도밖에는 잠을 자지 못했다.

한편 생계유지를 위해 나와 아내는 무슨 일이든 했다. 병원청소, 시체 치우는 일, 주유소에서 기름넣는 일 등을 하며 비좁은 집엔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병원도서실에서 수많은 밤을 꼬박 새우며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 지독하게 노력했다. 나는 우수한 재원으로 인정받았고 학위도 받기전인 1973년 1월 나를 가르쳤던 7명의 교수들의 적극 추천으로 108대 1의 경쟁을 물리치고 페퍼다인 대학의 조교수로 뽑혔고 교수를 시작한지 만 4년만에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많은 논문발표와 스피치를 통해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노력해서 얻은 지식과 명예가 나를 엄청나게 교만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내 안에 교만과 함께 열등의식과 한을 보게 하셨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잘못했던 것까지 일일이 알게 하셨다. 내 죄를 보며 울며 회개하기를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멀리 먼동이 터오를 때쯤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다. 하얀 옷을 입으신 큰 분의 가슴에 내 얼굴이 깊이 파묻혀 있었고, 그분께서 나를 꼭 껴안아 주시며 아주 부드럽게 내등을 세 번 두드려 주셨다.두드릴 때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용서한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그분의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내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절대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철두철미한 복음주의자로서, 성경말씀을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믿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의 환상이 분명 내게 직접 나타나셨고 나를 용서하신다고 하셨다.

그 비전이 1977년 6월 24일 내 인생을 B.C와 A.D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게 했다. 미국의 1.5세, 2세들을 일으켜 세상을 변화시킨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고 하나님이 나를 살리신다는 확신아래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1978년 나는 약 한 번 쓰지 않고 죽음에서 부활을 경험했다. 나를 진단했던 의사도 놀랐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나는 다시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고 영혼의 독소와 육체의 독소를 내 안에서 주님의 은혜로 몰아내게 된 것이다. 내 삶은 변했다. 예전에는 나의 야망을 위해 살았지만 이젠 주님의 비전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그후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뜻을 구했고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다.

1980년부터 시작된 16년 알라스카 생활이 그랬고 85년 "미국을 신앙으로 위대하게 만들라" 라는 놀라운 비전과 사명을 받은 것도 그러했다. 특히 모두가 만류했던 알라스카행도 주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이었다. 그곳에서 주님의 비전을 구하며 무릎으로 나아갔을 때 주님은 "알라스카의 요셉이 되라"는 말씀을 주셨다. 고난의 순간도 많았지만 알라스카 주립대학 최우수 교수상, 10년동안 알라스카 주지사 경제국제무역 특별고문으로 일하며 30%의 수출증가를 이뤄 알라스카주로부터 주경제개발공헌특별상을 받게되는 은혜를 주셨다. 지금까지 300마일 이상을 날으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93년부터는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북미주예수 대각성운동)를 시작, 96년 약 2천5백여명의 청년 대학생들을 모아 JAMA전국대회를 가지게 하셨다.

나는 JAMA의 비전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든 명예와 업적을 뒤로 하고 정든 알라스카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옮겨왔다. 지금은 California State University Monterey Bay에서 국제 경영학 교수로, Global Business Center Director로 대학을 섬기고 있다.그러나 내가 무엇보다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일은 우리한국 1.5세 2세들이 미국의 주류 속에서 영향을 줄뿐 아니라 미국의 젊은 리더들과 손잡고 미국을 변화시키며 그들을 모아 성령충만한 크리스천 리더로 훈련하는 일이다. JAMA를 통해 하고 있는 이것은 주님이 나의 남은 인생을 다 바치라고 주신 가장 큰 비전인 것이다. 이제 나는 야망과 비전을 구분할 줄 하는 한 사람의 주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사할 뿐이다.

김춘근 박사
JAMA대표. 미국 페퍼다인 대학교 최우수 교수상
미국 알라스카 대학교 최우수 교수상 수상
미국 알라스카주 경제개발 공로 특별상 수상
미국 알라스카주지사 경제국제무역특별고문 역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