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9:14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개역개정판)
잠언 9장의 미련한 여인도
나름 내공은 있었을 것이다.
쓰라린 경험도, 달콤한 추억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잠 9:15)의 눈길을 잡을 정도로
매력이나 카리스마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개똥 철학이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잠 9: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개역개정판)
터무니없는 말이었다면
자기 집 문이나 성읍 높은 곳(잠 9:14)에서 떠들어댈 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런 짓을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면서까지 하는지
제 정신이 아니거나
악한 목적이 있거나
겉으로는 미련해 보이는 또 한 사람 사도 바울..
곡식을 떠는 소에게도 식물이 허락되고(신 25:4)
복음 전도자가 사역에 따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되 (마 10:10)
바나바와 바울은 그 권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고전 10:12)
성적으로 타락한 고린도 사회였지만
철학과 수사학은 또 발달했던 그 도시에서 강의로 돈을 버는 자들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복음 전파를 돈벌이 수단으로 오해하는 눈초리는
그때나 지금이나마 많이 있었는데
그런 오해로 말미암아
복음의 순수성이 오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두 사람의 마음씨에
숙연해진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고전 9:15)
내가 자랑하는 복음응ㄹ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단호한 결단과 순수성은
사는 게 뭐 그런거지, 인생이 행복이 별거냐 식의 개똥철학과
몰래 먹는 떡이 얼마나 짜릿한지 모르지? 같은
세속적 인생 철학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고전 9:22)이라는 마음이라면
성적으로 유혹당해도
누가 나를 비방해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내세울 것도 없고, 말도 어눌할지라도
억울하게 소송을 당해도
아니 억울한 일이 있어 송사로까지 가야할 일을 당하더라도 (고전 6:1-2)
인내할 수 있고
잠잠할 수 있다.
나는
미련한 여인처럼 내 어리석은 생각을 떠들어대는 자인가?
자비(自費)를 들여서까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며 겸손히 전하는 자인가?
몰래 먹는 떡맛은 몰라도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