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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잠언

잠언 11장과 고린도전서 11장 묵상 (6월 11일, 사천에서의 잠언 묵상)

작성자담대한 민경태|작성시간26.06.11|조회수39 목록 댓글 0

잠언 11:17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11: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 비유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이 '공정'이라는 가치가 거의 절대적 선으로 여겨지는 시대에서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마 20:14)는 주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 없지만
현대인들은 이상한 말씀하신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비유로 하시기 이 전에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은 이미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본인의 의사 결정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 유명한 시글락 사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블레셋 군대에 합류했다가 돌아와 보니, 
아말렉 성읍이 시글락을 습격하여 불태우고 여인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간 상태... 
심지어, 블레셋 뒤통수까지... 
역시 뒷통수치는 민족성은 어디 안간다... 
(그때 그 시절에만 그런 족속이 있었던 거인가??)
백성들의 분노: 다윗과 온 백성은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대성통곡했다. 
급기야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찬 자들은 
갈 곳 없던 자신들의 신세를 불쌍히 여겨 거둬준 지도자 다윗을 돌로 치려고까지 한다. 

이 정도였다면
"야, 니네들을 좋아해주시는 사울 왕 폐하에게로 돌아가라!"
이렇게 이야기해도 할 말 없지 않았을까?
그래도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고, 리더십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삼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개역개정판)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께 여쭈었고
하나님께로부터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고 응답을 받는다.  

아말렉을 추격하던 중, 다윗 일행은 길가에 버려진 병든 애굽 소년(아말렉인의 종)을 발견하는데,
가장 약한 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 끈기 있는 섬김을 통해 복을 받았던 다윗... 
이번에도 다윗이 그를 먹이고 살려주자, 소년은 아말렉 군대의 은신처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길잡이가 된다.
아말렉 진영에 기습을 감행한 다윗은 빼앗겼던 가족들과 재물을 단 하나도 잃지 않고 모두 되찾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장정이라기 불려도 될 법한 도망자 신세의 도망자 세월...
잔고는 떨어져 갔을 테고
사기도 떨어져 갔을 터...
가족들까지 빼앗겨서
다윗을 돌로 치려했던 그 사람들...
그 와중에 겨우겨우 진정시켰는데...
못가겠다고 브솔 시내에서 퍼져버린 200명...
나머지 600명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200명은 왜 못갔을까?
두려웠나? 아팠나?
어쨌던 저 쳐진 병사들의 모습은
포도원에서 일자리를 구하나 구하지 못하여 어슬렁대던 절망에 빠진 자들과 닮아보이지 않았을까 

목숨 걸고 싸웠던 자들은 싸우지 않은 자들에게는 전리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을 악한 자들이라고 평가한다.
삼상 30: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개역개정판)

맞는 말 아닌가?
군대의 보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지 말자.
군대의 사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의 판결은 다르다.  
다윗은 이 승리가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음을 믿었다. 
'전쟁에 나간 자나 소유물 곁에 머문 자나 똑같이 분배'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 공평임을 오히려 드러낸다. 

더 나아가 다윗은 자신이 얻은 전리품을 유다 지역의 여러 장로들과 유력 지파들에게 선물로 보낸다.
지극히 (정치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결정이었다. 
사울 왕 이후,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추대받는 중요한 발판이 될 줄도 알았겠지만... 

잠언 11:17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개역개정판)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는 다윗의 결정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이로웠던 일이었으리라... 

바울 당시에도 이 문제, 저 문제로 시끄러웠던 고린도교회에는 
애찬과 성찬이 있었는데, 
이미 계파간의 문제와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문제로 갈라져 있던 교회가 
빈부 격차와 사회적 지위 등으로 인해 
계층 간의 분화는 매우 심화되었던 것 같다. 

주일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
성도들이 주일에 함께 떡을 떼기 위해 모을 때 
부자들은 자기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먼저 먹고 마시고 
심지어 취하기까지 했던 모양이다... 

피곤하고 굶주린 가운데 왔던 가난한 사람들은 
준비해 온 음식이 별로 없이 일하다가 늦게 와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부자들의 취한 모습을 봐야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나 노동자였기에 
음식을 잘 준비해올 수도 없었다. 

공평하게 해야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교회가 그나마 이 정도로도 유지되는 건 저 어르신네들 덕분입니다.
본인들이 본인들 것들을 가져오는게 뭐가 문제죠?
저 분들을 내쫓기라도 할 겁니까? 저 분들껀데???"

사도 바울은 
이 '맞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성경에서 자주 보이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에 따른 성경적 공평(..)의 패턴을 드러냈다.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개역개정판)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고전 11:29) 

그리고 주의 몸을 분별하고
주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주님이 직접 보여주신 공평과 공정이 무엇인지
다시금 살펴 보아야 한다. 

 

나부터 그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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