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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잠언

잠언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 묵상 (6월 12일, 순천에서의 잠언 묵상)

작성자담대한 민경태|작성시간26.06.13|조회수72 목록 댓글 0

잠언 12:17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개역개정판)

 

고린도전서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개역개정판)

 

은사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2장을 대할 때

나부터가

은사 각각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과 특징들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과

그 하나됨을 위해 도구로서 사용되는 은사를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큰 은사인 사랑에 대한 13장으로 넘어간다고 이해하고 있다.

 

성령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세례를 주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우리 각 지체가 몸의 각 부분을 맡아 제 기능을 하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끊임없이 공급하신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개역개정판)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고

아름다운 (그러나 벌써부터 심하게 더운) 순천, (곧 우주의 중심...)에서

그리고 

변요한 선교사님(John Fairman Preston, 1875~1975) 이후100년 넘게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 산하의 학교들의 아름다운 교정에서  

이렇게 잠시나마 말씀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많이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못한 특권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변요한 선교사님(John Fairman Preston, 1875~1975) 

우리는

우리의 주권적 결정으로,

우리의 주도적인 행동을 통해

저 멀리 계신 주님께 구해서

뭘 잘 안 주시고, 잘 안들어주시는 주님께 기필코 무언가를 얻어내어

많은 것을 행했다는 착각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도 알듯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행하신 주권적인 사역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요란하게 드러내기보다

은은하고 잠잠하면서도 분명하게

그 사역을

은사의 각양 각색을 통해 드러내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 성령 세례는 거듭날 때 신자 안에 일어나는 초자연적 역사로,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주셔서 더러운 마음을 제거하고 거룩한 새 마음을 가진 자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 1:33).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외치시면서 그분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을 약속하셨다.

성경은 그 생수의 강이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했다(요 7:37-39).

성령은 믿는 자들 안에서 신령한 일을 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은사를 공급하신다.

거듭났다면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고,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은사를 받게된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각각 받은 은사로 교회와 서로를 섬기면서 하나가 된다.

 

그런데

지 혼자 잘났다면서 설치고 다닌다면

그리고

(나처럼...)

지혜의 말씀을 나만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산다면

그러면서 하나됨을 저해한다면

저 과정 중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봐야 하나?

 

우월감과 자만심은

의를 선포하는 와중에서도

엄청난 영적 함정을 파게 한다.

 

의로움을 말하면서도

진리로 인도하지 못하면

거짓 증인이요,

그 말하는 바도 속임과 궤휼(잠 12:17)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성령께 받은 은사로 각각 제 역할을 하여 한 몸을 이루려 할 때,

자만심만큼 위험한 것이

열등감이라는 말도 들었다.

 

교회의 각 지체라면

영광스러운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기 역할(또는 자기 신세, 자기 섬김 등)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역할을 맡기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무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저것을 가지지 못하며

왜 나는 저것을 하지 못하는가

 

거기에 대한 출발은 보통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귀결은 대개

그것들을 허락하시지 않으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터...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마 20:14) ???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거룩한 지체로 삼으시고

또 그 역할을 하도록 필요한 능력을 성령으로 공급하신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더워도)

열등감까지 느껴도

나의 열등감이 나를 지배한다면

그 역할을 맡기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반발하는 것이고,

사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역할보다 내가 더 자기 역할이 뭔지 더 잘 알고 있으며, 더 잘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까지 갖게 된다.

 

민수기 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형편을 힘들게 했던

그래서 모세에게

당신만 하나님하고 이야기하느냐고 말했던 그 마음

그 마음 가지던 말던 자기 마음이지만...

그리고 광야 생활이 힘든 것 이해가 되지만

그런 마음까지 이해받을 수는 없다.

그 악한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게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여전히...

교회를 나누고

나를 병들게 한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말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고린도전서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개역개정판)

 

아, 그리고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마 20:14)는 그 말씀은

더 먼저 와서

더 많이 수고하고

더 많은 능력을 가졌던

더 많은 경험을 지녔던

아마도 포도원에 아침부터 와서

더 많은 경험치와 능력치를 보유하면서

불러주는 이 없이

그저 포도원 바깥에서 서글픈 시간만 보내고 있던 사람들이

잠깐 와서 어리바리하고 있을 때

어쩌면 일잘러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그래서 나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게 했을

그 양반들한테 하신 말씀 아니었나?

 

감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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