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월, 세계는 걸프전의 포성으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 때마다 전투기와 미사일, 검은 연기가 등장했고 사람들은 전쟁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흔치 않던 시절, 처음으로 떠나는 유럽 여행을 앞둔 저 역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아들이 다가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사고 비행기는 타지 말고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지금 생각하면 천진한 아이의 인사말이었지만, 당시의 제게는 그 어떤 부적보다 든든한 말이었습니다. 전쟁 소식으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마음 속에 작은 등불 하나가 켜지는 듯했습니다.
그 시절의 하늘길마저 전쟁의 그림자를 피해 가야 했습니다. 비행기는 홍콩을 경유하여 흰 눈으로 뒤덮인 티베트 상공을 지나갔고, 원래대로라면 중동의 아라비아반도를 통과했어야 했지만 걸프전의 화염 때문에 아프리카 쪽으로 크게 우회했습니다. 창밖의 구름은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아래 세상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들어선 듯 불안과 긴장으로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런던을 거쳐 무려 26시간 만에 첫 목적지인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몸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습니다. 어린 시절 운동회 전날 밤, 설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기억처럼 눈앞의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연신 카메라를 눌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히 풍경을 찍은 것이 아니라, 처음 마주한 넓은 세상을 기억 속에 오래도록 붙잡아 두려는 몸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여행지인 베를린은 거대한 역사의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불과 두 달 전인 1990년 10월, 동독과 서독은 마침내 하나의 나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섰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랜 세월 냉전의 상징으로 서 있던 그 문은 이제 통일과 화해의 문으로 다시 열리고 있었습니다. 체크포인트 찰리와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저는 인간이 만든 벽의 허망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장벽 앞에 놓인 희생자 추모 꽃다발은 총과 철조망이 결코 인간의 자유를 영원히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연방의회 의사당과 알렉산더 광장, 그리고 베를린 대성당을 둘러보며 저는 독일인들의 저력을 실감하였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선 그들의 모습은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가 봄이 되자 새순을 틔우는 모습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베를린 대성당의 높은 돔 천장을 올려다보며 저는 인간이 때로는 무모하게 세상을 파괴하지만, 결국에는 그 폐허 위에 다시 문명을 세우고 희망을 꽃피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로마는 베를린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거대한 시간의 도시였습니다.
콜로세움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침묵이었습니다. 한때 검투사들의 함성과 군중의 열광이 가득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닳고 마모된 돌기둥만이 남아 인간의 영광과 욕망, 그리고 몰락을 묵묵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낸 그 거대한 유적 앞에서 인간의 삶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짧게 느껴졌습니다.
카타콤베에서는 더욱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차가운 지하 통로를 걸으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냈던 초기 기독교인들을 떠올렸습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믿음과 신념은 때로 죽음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트레비 분수에서는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되기를 바라며 동전을 던졌고,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며 잠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광장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삶에는 목적지만큼이나 여유 또한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티칸 미술관과 성 베드로 대성당은 인간의 예술과 신앙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는 거대한 건축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하나의 기도 속에 안겨 있는 듯한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공간이 이토록 사람의 영혼을 숙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관람할 때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 젊은 여대생이 우리 일행 뒤를 계속 따라오기에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가이드가 없어 설명을 엿듣고 있다며 웃었습니다. 잠시 함께 걸으며 나눈 짧은 대화는 사람의 호기심과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성당을 나온 뒤에는 관광 일행과 잠시 떨어져 이선생과 같이 극장 쇼도 구경하고 쇼핑도 하며 로마역까지 걸어가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플랫폼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얼굴을 지녔지만 모두 저마다의 목적지와 사연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역이란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짐을 짊어진 채 잠시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인지도 모릅니다. 한동안 로마역 주변을 거닐다가 아쉬움을 남긴 채 늦은 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복귀했습니다.
세 번째 여행지인 파리는 도시 전체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밤하늘 아래 황금빛으로 빛나는 에펠탑은 거대한 철의 시였고, 개선문은 프랑스인의 자존심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인간의 손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 질 무렵 세느강 유람선에 올라 바라본 파리는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강물 위에 부서지는 불빛들은 마치 지나간 청춘의 기억 같았습니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지나온 세월 또한 저 불빛처럼 아련하고 눈부시게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문지인 루이 고등학교에서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교정을 오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누구에게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 하나쯤은 마음 속에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잠시 학창 시절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 있었습니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런던은 화려함보다는 차분한 품격이 먼저 느껴지는 도시였습니다.
빅벤과 국회의사당은 영국 민주주의의 긴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고,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에서는 오랜 전통을 지켜온 왕실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런던탑, 타워브리지를 둘러보며 저는 역사는 박물관 속에 잠든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곁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또 다른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지의 유물이 한곳에 모여 있는 모습은 인류 문명의 연결성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의 수탈과 약탈이라는 역사적 그림자 또한 떠올리게 했습니다. 화려한 전시품 뒤에는 고향을 떠나온 문화재들의 사연이 숨어 있다는 생각에 마냥 감탄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해로우 스쿨의 오래된 교정을 걸을 때는 세계를 움직인 수많은 지도자들이 왜 그곳에서 배출되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했습니다. 낡은 벽돌과 오래된 교실에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시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배어 있는 듯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해 겨울의 유럽 여행은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의미를 지닌 여정이었습니다. 전쟁의 불안 속에서 출발하여 통일의 현장을 목격했고, 고대 문명과 예술, 민주주의와 신앙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뜰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물 안에서 좁은 하늘만 바라보던 개구리가 처음으로 끝없는 바다를 마주한 경험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그 모든 기억의 출발점에는 아들의 짧은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습니다.
“사고 비행기는 타지 말고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빛이 바랜 종이를 다시 펼쳐볼 때마다 저는 미소를 짓습니다. 여행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세상이 처음 열리던 순간의 설렘과 가족이 건네준 따뜻한 사랑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여행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 추억이 남긴 울림만큼은 지금도 제 삶을 조용히 밝혀주는 등불처럼 남아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는 그 편지를 볼 때마다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